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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0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미애 옮김 / 민음사 / 2006년 1월
평점 :
버지니아 울프.
또다시 무식을 고백하자면, 난 이 책이 소설인 줄 알고
드디어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을 읽어본답시고 미국까지 들고 왔다.
몇달 전 이 책을 읽으려고 펼쳤다가(두껍기도 해서 뿌듯했었다)
강연문 형식의 글을 보고 이게 아닌데..하고 덮었었다.
이런 형식이 싫어서가 아니라
기대했던 바와 완전 달라서 실망이 너무 컸다고나 할까. ㅋㅋ
얼마전 읽을 책이 없어서 구석에 꽂아놓았던 이 책을 꺼내들었을땐
그 실망감이 다 가셔서 새로운 기대로 읽기 시작할 수 있었다.
이 책에는 두 작품이 실려있는데
하나는 '자기만의 방'이고 다른 하나는 '3기니'이다.
'자기만의 방'을 우선 읽었을 뿐이지만
워낙 리뷰가 길어질 것 같아서 3기니는 다음 기회로 미룬다.
결과적으로 난 이 책 역시도 연필없이 볼 수 없었다.
군데군데 줄을 그어놔서 남한테 빌려줄수도 없게 만들어버렸다.
사진의 감수성 예민해보이고 선이 가늘고 날카로운 여인이
여성과 픽션을 주제로 한 강연의 내용이다.
'여성이 픽션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p.10)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버지니아 울프의 생전에도 -많이 개선되고는 있었지만- 여성의
지위가 그리 높지는 않았었나보다.
'1866년 이래 영국에는 여성을 위한 대학이 적어도 두 곳 존재해
왔으며, 1990년 이후에는 기혼 여성이 자신의 재산을 소유하도록 법적으로 허용되었고 1919년에 여성은 투표권을 얻게 되었다.'(p.170)
남성들에 의해, '어쩌면 우주에서 가장 많이 논의되는 동물'임에도
여성들의 글쓰기는 제한되어 있었다. (글쓰기 뿐이겠는가?)
남성들에 의해 그려지는 여성의 모습은 사실 몇몇 작가들을 제외하고는 '진실의 흰빛이 아니라 감정의 붉은 빛으로 쓰였'고
반면 여성들은 '지금까지 수세기 동안 남성의 모습을 실제 크기의 두 배로 확대 반사하는 유쾌한 마력을 지난 거울 노릇을 해왔'다.
'원하지 않는 일을 늘 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항상
부득이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필요해 보였고
또 모험을 하기에는 너무 큰 이해관계가 걸려 있기에
노예처럼 아부하고 아양을 떨며 그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그것을 드러내지 않으면 죽는 것이나 다름없는
단 하나의 재능-작은 것이지만 소유자에게는 소중한-이 소멸하고 있으며 그와 함께 나 자신, 나의 영혼도 소멸하고 있다는 생각(p.59)'으로 여성들은 두려움과 쓰라림을 느낀다.
또한
'한 성(性)의 안정과 번영, 다른 성의 가난과 불안정을 생각했고'
라는 부분에서는 사실 자살로 일찍 생을 마감한 실비아 플라스 생각도 했다.
거의 동시대거나 약간 더 늦은 시대가 아닌가 싶은데
(지금 책이 없어서 확인을 못하겠다.) 재능있고 아름다운 여류시인
실비아 플라스 역시 똑같은 문제로 고민하고 좌절했었다.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를 읽을 당시 내 마음을 울리던 글귀들
(아름답고 인상적이어서가 아니라 그녀의 절망과 좌절이 너무나
생생하고 현실감있게 느껴지고 나에게도 남 얘기가 아닌 듯해서)이
여기서도 반복되는 듯 했다.
버지니아 울프는 시대를 거슬러 올라오면서
여성들의 지위와 글쓰기에 대한 관련성을 찾아본다.
죽었다 깨나도 여성 셰익스피어는 나올 수 없었다.
'16세기에 시적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여성은 스스로에 대한 투쟁을 벌여야 하는 불행한 여성이었을(p.79)' 것이고,
18세기에 들어서야 중산층 여성들이 글을 쓰기 시작한다.
이 대목에서 버지니아 울프는 제인 오스틴, 조지 엘리엇, 샬럿과 에밀리 브론테의 작품을 비평한다.
그것은 시대와 여성이라는 키워드를 빼놓을 수 없는 작업이다.
즉 예를 들자면 샬럿 브론테의 경우, 픽션에 대한 성실성을 분노가 방해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버지니아 울프가 안타까워하는 것은,
여성에게 닫힌 문과 더불어 그 때문에 실제로 문학이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빈곤해진다는 점이다.
결국 처음으로 돌아와서 그녀가 주장하는 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행하고 빈둥거리며 세계의 미래와 과거를 성찰하고 책을 읽고 공상에 잠기며 길거리를 배회하고
사고의 낚싯줄을 강 속에 깊이 담글 수 있기에 충분한 돈을
여러분 스스로 소유'(p.164)하라는 것이다.
'각자가 연간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을 가진다면, 그리고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용기와 자유의 습성을 가지게 된다면,'(p.171)
연간 500파운드라는 돈은 상징적이라고 볼 수 있다.
고정적인 수입과 방해받지 않을 수 있는 자기만의 방.
비단 버지니아 울프의 시대 뿐만이 아니라
여성의 지위가 놀랍도록 향상된(그렇지만 아직도 부족함을 느끼는)
현대의 여성에게도 꼭 필요한 요소들이다.
현대의 여성이라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불가피하게 아이를 양육하는 동안 '자기만의 방'을 가질 수가 없다.
간혹 할머니들이 아이를 돌봐주시지만
그건 내 일을 또다른 여성한테 미룬 거라고 본다.
그렇다고 독신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시대에는 지금보다 그런 투쟁(?)이 훨씬 더
힘겨웠으리라고 본다.(그래서 자살한 걸까?)
여성으로 태어나서 자아가 '크다'는 건
아직도 저주일지 모르겠다.
버지니아 울프는 100년 후면 더이상 여성이 보호받는 존재가 아닐 거라고 이야기했다. 나 역시도 지금으로부터 100년 후면
뭔가 좋은 대안이 생기리라 믿는다.
그러기 위해 아마 여성들이 노력할 거다.
강연 형식의 글이지만 정말 독특했고,
역사와 문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서술의 구체성에서
지루함을 느낄 수가 없었던 것 같다.
더불어 같은 여자로써 꼭 읽어볼 필요가 있는 글이었다.
또한 '여성'에 대한 글이면서 자칫 페미니스트들이 빠질 수 있는 함정, 즉 같은 여성이나 혹은 남성들을 지나치게 몰아붙이거나 공격하는 면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공정하고 논리적이었다.
아마 그 때문에 더욱 설득력을 갖고 울림이 깊은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