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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
이스마엘 베아 지음, 송은주 옮김 / 북스코프(아카넷)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유니세프에 돈을 기부하고 있다.
밝히기도 쑥스러운 소액이지만 한달에 한번씩
내 통장에서 자동이체가 되고 있고
벌써 3년쯤 된 것 같다.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액수를 늘리겠노라 맹세하지만
언제나 그 '나중'이 미뤄지고 있는 현실..켁)
유니세프에 돈을 기부하게 된 계기는 확실히 기억이 안 난다.
다만 아직까지도 기부할 맛이 나게 만드는 건,
우리 돈 2만원이면 어린이 몇명이 뭘 할 수 있고,
5만원이면 몇 만명에게 뭘 먹일 수 있고, 등등을 안내해놓은 문구와
정기적으로 날아오는 뉴스레터에서 내가 낸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 뭐하는데 쓰는지를 소상히 밝혀놓았다는 점이다.
(그 뉴스레터는 아마도 부산대학교 연구실로
지금도 꼬박꼬박 날아오고 있을 듯..)
선행을 해야한다면 굶고 있는 우리나라 아이들도 많지만,
최소한 우리나라 아이들은 한 나라안에 걔네들을 도울 어른이라도 존재한다는 점이 그나마 안심이랄까.
하지만 이 책을 쓴 이스마엘처럼,
한 나라 전체가 내전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형편에서는
어떤 어른도 어린이들의 안전을 보장해줄 수가 없다.
먹고 입히는 건 고사하고,
어린이들 스스로가 굶어죽지 않기 위해 총을 잡아야한다는 거다.
이스마엘이 태어난 곳은 시에라리온이다.
얼핏 이름만 들어봤을 뿐,
아프리카의 어느 가난한 나라라고만 알고 있다.
이스마엘은 랩을 좋아하는 평범한 소년이었고
친구들과 이웃마을에 장기자랑을 하러 나간 것이
가족들과의 영원한 이별이 되고 말았다.
시에라리온 반군들의 횡포는 읽기 힘들 정도로 잔인했다.
가족과 친구들을 잃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내전과 배고픔에 시달리면서 이스마엘 역시 시에라리온의 다른 어린이들처럼 소년병이 되기로 한다.
결심이었다기 보다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정말 끔찍한 건 정부군이든 반군이든
어린이를 보호해야 할 어른들이 어린이들에게 마약을 먹여가며
총을 쥐어줬다는 사실이다.
이스마엘을 비롯한 아이들은 사람을 죽이는 데 대해 무감각해지고
어른과 소년병들이 뒤섞인 군대 안에서
소속감과 안정을 느끼게 된다.
표지에 소년병의 사진이 나와 있다.
비스듬히 총을 메고, 어깨에도 무기를 짊어지고 있다.
다 떨어지고 해진 슬리퍼가 보기에 짠하다.
이런 소년병들은 먹기 위해 총질을 하고
마약에 취해 잔인하게 사람을 죽인다.
아직 윤리의식이 채 정립되지도 않은 아이들에게
그건 너무도 잔인한 일이다.
유니세프에 의해 구조(?)된 이스마엘은
처음에는 강하게 저항한다.
소년병 시절이 더 행복하다고 느낀다.
가족들의 복수를 하고,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으며
총만 갖고 있다면 두려울 게 없었다.
그리고 도처에 널려있던 마약.
유니세프 시설에서 재활기간을 거치는 동안
이스마엘은 마약금단증상과 함께
자신이 죽인 사람들과 가족들이 나오는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거칠고 제멋대로인 소년병들을 다루는 시설 직원들의 노력은
눈물겹다.
(이 대목에서 내 돈이 이런 곳에 쓰인다는 생각을 하니
뭔가 뿌듯해지고 고마워졌다.)
시에라리온에서 벌어진 97년 내전에서 탈출한 이스마엘은
지금은 뉴욕에 거주하면서
국제 인권감시기구와 유니세프에서 활동하고 있단다.
아직도 세계의 어떤 곳에는 소년병이 있을까?
아직도 어떤 곳에서는 아이들이 굶주리고 있다.
살기 위해 무슨 짓이라도 해야 하는 어린이들이
그 시기에 꿔야 할 꿈과 받아야 할 사랑과 관심에서 소외된 채
밥 한끼를 해결하기 위해 사람을 죽여야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정말 적은 돈이나마 유니세프에 보내는 돈을
끊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