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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
목수정 글, 희완 트호뫼흐 사진 / 레디앙 / 2008년 8월
평점 :
이 책에는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사실 제목보다 부제에 더 확 이끌렸다. 책의 내용이 어떨 것이라는 짐작이 더 와닿지 않는가..
처음부터 난 이 책이 좋았다.
널찍하게 편집되어 책장 속의 책들과 잘 어울려주지 않는 점부터 시작해서 책 곳곳의 사진들은 책을 집중해서 읽지 않더라도
촤르르르 넘기다가 시선이 잠시 머무는 곳들이었다.
프롤로그부터 아예 빨간 색연필(빨간 색에 다른 의미는 없다, 다만 집에 있는 색연필이 빨간색 밖에 없으니까.)을 들고 찬찬히 음미하면서 읽기 시작했다.
프롤로그부터 날 사로잡은 말은
"그 어떤 고정관념에도 자신을 내팽개치지 않은 날선 자아를 가진 사람의 얼굴"이라는 대목이었다.
아,, 이 말을 내 맘에 새겨두자. 라고 마음먹었다. 날선 자아라....
또한 불확실한 나의, 혹은 저자인 목수정씨의 상황에 대해 절망하거나 두려워하기보다는 "사방으로 열려있는 부정형의 미래"라며 강렬히 열망한다지 않는가. 그 자신감과 용기와 배짱에 박수를!!
최근들어 나도 목수정씨가 말하는 가부장적이고 경직된 한국사회에 대해서 염증을 느껴가고 있고, 이런 내가 두렵기까지 하다.
나를 위해서든, 언젠가 태어날 내 아이를 위해서든
우리나라에서 건강한 정신으로 살아가게 할 자신이 없다.
아니, 행복하게 해 줄 자신이 없다. 지금 사회가 내가 자라나던 시절의 모습을 반만이라도 닮아있다면 이렇게까지 생각하지 않을텐데. 지금 내가 숨 쉬기 힘들어하는 세상에서 내 아이까지 숨쉬게 만들고 싶지가 않다.
하지만 왜 두려운가? 자문해본다.
떠나는 게 두려운 걸까? 아니, 떠나기 위해 주변 사람들과 불화를 일으키는 게 두렵다. 사실 그거 하나다.
우리나라 교육방식과 사고방식이 너무 싫어서
다른 나라로 떠나고 싶다고 한들,
"너 거기서 얼마나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애? 뭐 해먹고 살건데? 그래도 말 통하고 부모 그늘에 기댈 수라도 있는 모국이 낫지 않니?" 난 그런 말들이 무서운 거다.
"내 영혼이 내 의지에 따라 국경과 시간을 초월해 어디에든 머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우리 인생은 조금쯤 덜 불행할 것이다."
"선택의 기준이 늘 타인의 시선에 맞추어진 한국사회에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
난 아직도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못 찾고 있고, 그런 나를 탓하진 않는다. 다소 비겁하게 들릴지라도, 그건 사회가 날 이렇게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다. 나 뿐만이 아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대부분이 그런 사람들이다. 자기 꿈이 뭔지도 모르는 채, 수능성적에 대충 맞춰 진학하고 그 전공으로 밥벌이까지 쭈욱 이어져야 하는 현실.
삶이 나이 60에서 끝난다하더라도 꿈을 찾아갈 수 있는 삶을 살았으면 한다.
얼마전에 남편한테 "난 자유영혼이고 싶어." 라고 말했더니 놀랍게도 남편이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야." 라고 대답했다.
난 그 대답이 슬펐다. 왜 그렇게 살지 않아?
책임감 때문이란다.
그래서 난, 남편에게 날, 혹은 아이를 부양하라는 책임은 내가 똑같이 질테니 갑자기 그림 공부하겠다고 지금 하는 일을 때려치워도 괜찮다고 말했다. 그건 진심이었다. 마찬가지로 내가 그런 일탈을 하더라도 봐달라는 의미기도 했다.
그 외에도 이 책에서 빨간 색연필이 그어진 부분들.
"까페에서 나란히 손을 잡고 앉아 있되, 시선을 밖으로 열어두는 방식에서처럼, 적절한 통풍과 환기를 허락하여 서로의 삶에 독립된 영역과 자유를 적절히 보장하는 방식은 그 관계를 더 건강하게 유지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상처를 겪거나 결핍을 경험한다. 그런 시련은 누구에게나 찾아오고, 그것을 극복하는 방식이야말로 고유 색깔을 가진 자아의 주체로 설 수 있게 만들어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또 하나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충격에 휩싸인 사실 하나는 문화도 공공서비스가 될 수 있다는 것.
한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
얼마전에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어떤 시(市)의 시향이 시 음악당에서 공연하려고 하자, 그곳에 임시로 수용되어 있었던 이재민들이 이런 말을 한다. "돈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거야."
우리에게 문화생활의 느낌은 그런거다.
시간 있고, 돈 있는 사람들. 나처럼 한창 바빠야 하고, 한창 돈 벌어야 하는 사람에게 CATS 같은 뮤지컬은 어쩌다 한번 누려볼 수 있는 사치라는 거다. 그리고 난 당연히 그 생각에 동의해왔다. 그러면서도 문화생활이란 걸 언제나 갈구해왔고, 언젠가 돈 많이 벌고 부자가 되면 티켓 값에 연연하지 않고 풍족한 문화생활을 즐기리라, 그래왔다.
그런데 프랑스에서는 문화가 공공이 제공하는 서비스라는 거다.
이 얼마나 충격적인지.
프랑스의 방식을 받아들이려면 '문화'에 대한 개념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 사치가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면서 의식주처럼 꼭 필요한 것. 그게 문화라는 것.
마른 땅에 물을 뿌려주듯이 일상에 지치고 힘들어하는 시민들의 감수성을 촉촉히 적셔줄 단비를, 정부가 보조하는 거다.
대선공약에서 문화정책은 정말,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다.
점차 각박해지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가는 사회, 경쟁을 중시하는 정부정책... 나 같은 사람은 산소부족으로 질식할 것 같다.
이 책에 대해서는 적을 말이 정말 많다.
그리고 권해주고 싶은 사람도 아주 많다.
이 책을 읽고 정말 큰 자극을 받았으면서도 난 어쩌면 별 실천없이 또 흐름에 몸을 맡겨버릴지 모른다. 하지만 내 마음은, 벌써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어느 곳을 헤매고 있는 듯하다. 우리나라를 바꿀 힘은 나에겐 없으니까. 30년 동안 느낀 대한민국은 여자로 살아가는 나에겐 큰 짐을 많이 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