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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굴레에서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평점 :
중학교 2학년 때 내 인생을 확 바꿔놓은
중대한 사건이 있었다.
그 때가 나에겐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기 때문에
다시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학교 쓰레기 소각장에서 일기장을 태워버렸다.
그래서 그 시간은 이러이러한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과
희미한 인상들밖에는 내 기억에 남아있는 게 없다.
그게 잘한걸까?
그 큰 사건 이후의 삶이 다시 자잘한 아픔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나는 다시 일기를 쓰기 시작했고, 지금도 쓰고 있다.
이 두 권짜리 두툼한 책(민음사)은
한 소년이 어른이 될때까지의 일기를 엿본 느낌이다.
지루하고 불쾌한 순간도 많았다.
시대적 공간적 배경이 어떻든
사람이 사람되어가는 과정은 모두 비슷한 모양이다.
내가 자라면서 느꼈던 별것 아니지만 그 당시엔 아팠던 사건들,
작은 행복, 반항, 분노, 사랑, 복수심, 부끄러움, 배신감.....
그래서 난 책을 덮었을 때 조금은 홀가분해진 느낌이 들었다.
어느 누구의 인생에도 돌을 던질 수 없겠구나,
따라서 나도 못났다고 느낀 나의 삶을 너무 쓰게 삼키지는 말자고.
도대체 인생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은
내가 죽을 때까지 풀리지 않겠지만
죽음의 순간까지 그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
주인공은 양탄자에서 깨달음을 얻는다.
"살면서 만나는 행복이나 고통은 모두 삶의 다른 세부적인 사건들과 함께 디자인을 정교하게 만들어줄 뿐이다."
내 양탄자를 생각해본다.
그리고 내 주변의 어떤 사람의 양탄자와도 비교해본다.
내 양탄자는 굵직굵직한 무늬에 디테일한 장식이 들어간
화려한 무늬를 갖고 있다.
내가 살아온 시간의 씨실과 날실이 내 양탄자를 그렇게 만들었다.
다 짜고 난 후에 "아름답다"라고 말할 수 있길 바란다.
사실 난 지금도 내 양탄자가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남에게 피해를 준 일도 많고
마음으로 지은 죄도 수두룩하지만 감히 이렇게 말할 수 있는건
그게 인생인 것 같다고 어렴풋이 느끼기 때문이다.
삶을 아름답게 하라....
그게 고통이든 행복이든, 아름다움의 관점에선 똑같다.
..라고 생각한다.
서머싯 몸의 소설을 세권이나 읽었다.
이 소설은 서머싯 몸의 인생과 조금은 닮았다.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숙부 밑에서 자란 점, 소년시절에 다녔던 학교, 독일, 프랑스 등지에서의 회계사와 의학도의 경험 등등..
서머싯 몸이야말로 자기 양탄자를 세상에 보여준 셈이다.
그런 삶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