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의 배신
라파엘 M. 보넬리 지음, 남기철 옮김 / 와이즈베리 / 2016년 6월
평점 :
절판


 

내가 처음으로 했던 격투게임은 스트리터파이터였다. 주로 선택했던 캐릭터는 '류'와 '켄'이였다. 아도겐을 날리고 아따따뚜겐으로 발차기를 하면서 상대방과 격투를 했다.

상대방의 기술을 피하면서(장풍이나 필살기도 맞으면 안 된다) 나의 현란한 조이스틱 테크닉으로 상대방에게 데미지를 입히면 게임기는 'You Win'을 날려주며 'PERFECT'이란 찬사를 보냈다. 상대방을 '완벽'하게 이겼다는 것이다.

이 '완벽'한 게임의 승리는 결국 나도 개고생을 했다는 의미다.

 

이 '완벽'을 사람간의 관계에서 적용해 보면, 과연 '완벽'이 될까 싶다. 가족, 직장, 사회적인 관계에서 상대방을 '완벽'하게 제압할 수 있을까?

 

상대방이 내던지는 말, 기분, 일처리 등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내가 던지는 펀치에 의해 상대방이 점점 전의를 잃어가게 만들고, 이윽고 결정타를 날리면서 상대를 'KO'시킬 수 있을까?

이런 게 가능하다면, 나는 상대방에게 나 자신을 강요한 것은 아닐까? 나를 건드린다면 세상 떠나가도록 울겠다는 어린아이처럼 말이다.

 

그럼 완벽이란 뜻을 책에서 좀 찾아보자.

“'완벽한perfekt'이라는 단어는 '완성', '완료'를 뜻하는 라티어 '페르펙투스perfectus'에서 파생되었다. 합성어로 '페르per'는 '처음부터 끝까지', '속속들이', '완전한'이라는 뜻이고, '파르세facere'는 '만들다'는 듯이다. 이 단어는 원래 '완벽한 과정'을 의미했다.” p 53

 

책에서는 완벽하게 일하고 싶어 하는 것이 정신병적 문제는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왜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이상하게 보는 것일까? 아마도 그건 '집착' 때문이 아닐까? 어떤 사안을 처리함에 있어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고, 자신이 모든 것을 처리해야만 한다는 집착.

이런 집착으로 인해 자신의 생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인지적 오류가 문제가 아닐까?

 

회사에서 인정받아야 하고, 가족구성원에게는 내가 절대적인 영향을 미쳐야 하고, 인성적으로도 훌륭한 모습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 결국 이런 모습에서 '나'는 없다. 타인에게 인정받는 '나'만 있을 뿐이다.

 

요즘 사회관계망에서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그런데 내가 올바로 서지 않으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인간은 타인에게 인정받음으로써 가치가 매겨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금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인간의 불완전성을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완벽한 것이 아닐까?

 

책에서는 정신치료의 목표가 아레테Arete라고 했다. 상처 입은 마음을 치료하고 인간이 도달할 궁극의 목표, 그것이 아레테라는 것이다.

 

결국 정신이 바로 서야 한다. 얼마 전? 좀 됐지 싶다. 이렇게 ‘너의 정신에 문제가 있어’라고 말하는 의학권력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잠시 논의를 했었다.

우리는 그러지 않나? 현대인은 누구나 정신병을 앓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정신병의 강도의 차이에 따라 병명이 붙고 안 붙고 하는 것인가? 그리고 상대방에게 정신병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정상인가?

 

책에서 나름 줄을 치고 읽은 문장인데, 이를 바꾸면 이렇게 해석도 가능하지 않을까?

 

“정신과 치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례는 중독과 폭식 혹은 병적인 게으름이다” 263

=> 알콜, 니코틴, 카페인 중독 그리고 먹방과 쿡방 등 요리에 빠진 모습은 폭식을 부르지 않나? 병적인 게으름? 그런 너는(저자) 출근하고 싶냐??

 

“두려움이란 사실은 별 내용 없는 것이기에 금세 없어지는 것이다. 두려움은 인간이 두려움을 갖게 된 원인을 생각하지 않고 두려움에 대해 극도의 경외심을 갖기 때문에 생긴다.” 266

=> 위 문장을 보면 정신을 진단하는 건 당위적인 말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완벽의 배신. 책의 내용으로 보자면, 역설적인 제목이다.

“불완전한 미래에 확실한 점은 불확실하다는 사실이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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