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정치의 두 얼굴 - 서울대 교수 5인의 한국형 복지국가
안상훈 외 지음 / 21세기북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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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복지정치의 두 얼굴 - 얼굴을 맞대바바

 

복지가 화두가 되었다. 누구에겐 '뜨거운 감자'이고 누구에겐 '뜨거워진 감자'가 되었다. '뜨거운 감자'와 '뜨거워진 감자'의 차이점은 뭘까? 개낑 도낑인것 같지만 내가 의도한 바는 이것이다.

 

'뜨거운 감자'는 논의는 해야 하는데 돈이 되지 않아서 건드리지 않는 언론을 말하는 것이고, '뜨거워진 감자'는 지금의 정당과 시민의 온도차를 말하는 것이다.

 

저널리즘이 상실된 상태에서 언론은 말을 하지 않는다. 1인 미디어가 성장한 이유도 있겠지만 언론은 더 이상 언론이 아니게 되었다. 기레기가 판을 치고 서로의 기사를 답습하는 배끼기 식의 ctrl + c, ctrl + v의 기사는 신뢰도를 얻지 못하고 있다. 지상파 뉴스는 뉴스가 아닌 생활정보지 수준이 되어 버렸다.

 

정당들은 저마다 복지를 이야기했다. 복지를 계속 말하니 자연스럽게 복지는 '뜨거워진 감자'가 되고 말았다. 이전에는 생계형 복지가 곧 복지를 대변하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전세계적인 저성장으로 인해 일자리 부족으로 느끼는 고용 불안, 고령화로 인한 노인의 생계형 복지, 아이들에게 제공되는 무상급식 등 복지가 다양해졌다.

 

엄밀히보면 다양해진게 아니라 복지라는 솥에 들어가는 것들인데, 정치인들이 하나 둘씩 거내어 '이게 복지 맞나? 이거 말고 다른거 해야 하는거 아닌가?' 등 들쑤셔 놓고 제자리에 갖다 놓지 않아서 문제겠지만

 

이 책에서는 복지에 대해 스웨덴과 그리스의 모델을 이야기한다.

 

스웨덴과 그리스의 복지정책의 차이점, 역사적인 경로, 현재 우리나라의 연령대별 투표행태, 언론의 무책임 등 많은 부분에서 복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결론은 합의제 민주주의를 말한다.

 

"복지국가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현금복지를 더 많이 하는 나라들과 사회서비스복지를 더 많이 하는 나라가 그것이다. 현금복지를 많이 하는 대표적인 나라가 그리스이고, 서비스복지를 더 많이 하는 대표적인 나라 스웨덴이다. 그리스의 경우 서비스의 대부분도 노인의 수요가 큰 보건의료인 데 비해, 스웨덴은 아동, 여성, 가족을 위한 보육, 교육,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등 노동 세대를 위한 지출이 상대적으로 크다. 흥미로운 사실은 사회서비스를 중심으로 복지국가를 확대한 나라에서의 각종 경제지표가 휠씬 좋게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 p 63 )

 

스웨덴에서의 복지가 성공했다면 우린 그리스가 아니라 스웨덴의 방식을 잘 살펴봐야 한다.

 

이런 정책이 나오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우린 이런 사회적 합의를 성실히 이루어내는 기관, 회사, 정당이 없다. 사회적인 공론화를 이루어내야 할 언론은 더 이상 제 기능을 수행하지 않고 있다.

 

"뉴스도 시청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하나의 방송 장르일 뿐이다." ( p 191 )

 

이 문장을 보니 내가 왜 언론사에 기대를 했나? 라는 자조섞인 웃음이 나왔다. 어차피 돈 벌고 광고로 먹고 사는 방송사, 신문사일 뿐인데 말이다. 이제 방송은 공공재가 아니잖아.

 

저출산 고령화가 투표행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나이게 더 도움이 되는 정책을 말하는 이들을 찍어준다. 앞으론 더 심하겠지. 노령층은 자신들이 원하는 정책을 펼치는 이들을 뽑아줄 것이다. 인구 구조는 이미 역전되었다. 청년층이 진보적인 소리를 낸다고 해서 청년층의 진보적 정책을 내는 정당은 선거에서 이기기 힘들게 되었다. 정당들의 정책에서도 차별성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고.

 

"복지제도의 개혁이 시급하지만 이미 복지 수혜층이 되었고 인구 측면에서도 다수를 차지한 노인층은 변화에 둔감하거나 혹은 저항한다.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는 젊은층은 모든 현실로부터 스스로를 차단한 '히키코모리'가 되거나 가상현실에 몰입하는 '오타쿠'가 되거나, 경력을 포기하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프리터'가 된다." ( p 139 )

 

일본은 우리보다 고령화가 먼저왔다. 현재 일본의 극장정치를 보면 우리나라와 그리 다르지 않아 보인다. 좌우의 구분없는 우경화. 우리도 이렇다.

 

대안은 무엇일까? '합의제 민주주의'를 대안으로 말한다. 합의제 민주주의. 좋다. 그런데 이런 합의를 이끌어내고 중재할 사람과 기관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합의를 할려면 대표가 많아야 한다. 뭐 책에서는 선거구제의 문제도 지적하고 있지만. 한 의원이 발의한 국회의원을 늘리고, 대신 국회의원의 지원금을 줄여 의원이 많아진다고 해도 세수를 늘르지 말자고는 했다.

 

큰 두 놈이 박터지게 싸우고 있는 지금. 어떤 놈이 더 힘이 쎄냐를 겨루고 있는 요즘. 합의제 민주주의는 요원한 이야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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