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실천하는 인문학 - 꽉 막힌 세상, 문사철에서 길을 찾다
최효찬 지음 / 와이즈베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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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지금 실천하는 인문학

인문학 책 참 많이 나온다. 사람에 대해서 묻고 사람에 대해서 생각하는 분야가 인문학이라고 들었다.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 많은 생각과 고민이 있다면 성숙한 사회가 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어쩌면 더 척박한 세상으로 변해가는지도 모르겠다.

저자의 말처럼 책을 읽고 사색하기는 가장 필요한 부분이라고 본다. 책을 읽고 요약하고 내가 궁금했던 부분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 책은 그냥 읽은 책일 뿐이다. .. 읽었었나 기억도 나지 않는 그런 책 말이다.

올림픽공원에는 나 홀로 나무가 있다. 가서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조경을 위해서 또는 사람들이 인위적인 멋을 위해서 저렇게 나무 하나만 심었겠지조경을 한 입장을 그대로 시민은 받아들였다. 누구든지 올림픽공원에 가면 나 홀로 나무의 사진을 찍으니까.

여기서 저자가 인용한 데미안과 나 홀로 나무와 비슷한 면을 발견했다. 요즘 데미안이 하도 인기다보니 누구나 알고 있는 이 문장.

새는 알에서 깨어나려 한다. 알은 곧 세계다. 새로 탄생하기를 원한다면 한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이 문장을 곱씹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알은 전체 세계의 일부분이다. 알에서 깨어나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알 그 자체로 이미 이 세상에 있는 것이었다. 단지 알의 껍질로 안과 밖을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지 않을까?

가령 집 안에 있는 사람이 문을 열고 야외로 나왔을 때, 그 사람이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고 하지 않는다. 비유적으로 껍질을 다른 세상과 만나는 통로로 인식했던 것 같지만 글쎄

나 홀로 나무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큰 나무는 넓은 그늘을 제공해준다. 하지만 너무 크다보면 주변에 새로운 나무가 자랄 수 없다. 사람 관계에서도 비슷한 것 같다. 옆에 있는 사람이 박학다식하거나 어느 분야에 권위자이라면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의지하지 홀로 성장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 홀로 나무처럼 다른 나무들이 자라지 않는 곳에서 홀로 자란 나무는 튼튼한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

데미안과 나 홀로 나무는 곧 세상과 인간이 아닐까? 저자가 말하는 사색이 있듯 우리는 각자의 방식대로 생각한다. 생각에 옳고 그르다는 없을 것이다. 단지 저자가 여러 이야기를 하듯이 여러 방향의 생각이 있고 거기서 나에게 영감을 주는 부분이 있다면 사색의 깊이는 깊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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