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가슴에 벼랑 하나쯤 품고 산다 - 시인 장석주가 고른 삶과 죽음, 인생의 시 30 시인의 시 읽기
장석주 지음 / 21세기북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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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품고 있는 것이 벼랑이라면, 이제는 버리련다.

누구나 가슴에 벼랑 하나쯤 품고 산다는 제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프고 시린 일들 누구나 하나쯤 있으니 이런 기억을 말하는 것일까? 아마 이런 제목이라면 나 역시 하나 이상은 품고 있는 듯하다. 뭐 이런 기억과 상황이 없으면 좋겠지만, 삶이 내 맘대로 되던가.

고은, 정호승 시인을 좋아한다. 압축적인 시보다는 삶의 이야기를 그대로 푸는 시를 좋아하는 것 같다. 두 시인 모두 응축적인 언어보다 풀어서 시를 쓰기 때문이다.

책에서 보니 진공활동 (vacuum activity)가 있다고 한다. 이는 필요나 자극 없이 일어나는 행동이며, 좌절과 체념 상태로 이어진다고 한다. 뇌 안에서 도파민 분비가 적어지면서 뭔가 이루려는 추구 및 추진 시스템과 보상 시스템도 시들해지는 상태라고 한다. ( p 57 ~ 58 )

호르몬은 늘 과거를 향한다.

내일은 죽었고 과거는 자유롭다.

- P는 내일 태어나지 않는다』 중에서 ( P 57 )

위 시를 인용하면서 나온 말이다. 일면 이해할 수 있다. 과거는 이미 일어난 일이기에 두렵지가 않다. 하지만 미래는 무엇이 일어날지 모르기에 두려울 수 밖에 없다. 시인이 내일은 죽었다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 위에서 말한 진공활동을 빗대어 이야기한다면, 물고기 마냥 아가미를 벌리고 꿈뻑꿈뻑 숨만 쉴 수 있는 예측만 가능하기에 그런 것일까?

내일은 왜 죽은 것일까? 개인적인 생각은 이렇다. 죽음은 단절이다. 함께 할 수 없는 것이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러기에 함께 할 수 없다. ‘함께 할 수 없다.’는 의미가 다르겠지만, 내가 이해한 시는 이렇다.

비슷하게 보면, ‘젊음을 노래하는 시는 많지만, 늙음을 노래하는 시는 드물다.’ ( P 116 )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늙음은 아직 오지 않았고, 단절로 가는 중이기에 이야기하기 힘들 수 있다. 하지만, 젊음도 영원하지 않다. 아직 오지 않았고, 아직 시간이 덜 되었을 뿐 누구나 늙음으로 간다. 늙음과 죽음이라는 단절을 이야기하고 싶은 시인은 드물 것이다.

이 주제에 가까이 가는 시가 아마 홍영철 시인의 <저무는 빛>같다. 시인이 다르게 썼더라고 내가 받아들이는 것은 그랬다.

당기지 마라

떠밀지 마라

가만히 내버려두어도

우리가 언제

기울지 않았던 적이 있더냐

홍영철, <저무는 빛> 중에서

어느 한 쪽으로 기울게 된다. 방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젊음과 늙음 중 방향은 늙음이다. 아침과 저녁 중 방향성은 저녁이듯이.

정끝별 시인의 <밀물> 역시 이런 방향성을 내포하고 있다.

두 척의 배가

미끄러지듯 항구에 닻을 내린다.

벗은 두 배가

나란히 누워

서로의 상처에 손을 대며

무사하구나 다행이야

, 바다가 잠잠해서

정끝별, <밀물> 중에서

방향이 있다고 해서 꼭 그리 가라는 법은 없다. 정끝별 시인의 <밀물>을 읽으면 고단한 삶의 종착역이 떠올랐다.

누구나 가슴에 벼랑 하나쯤 품고 산다는 누구에게나 벼랑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 벼랑이 어떤 벼랑일지 모르지만, 품고 있다면 이제는 버리고 싶다.

이 서평은 해당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로 작성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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