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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철학하다 - 인생의 사계절에 누리는 행복의 비결
프레데릭 르누아르 지음, 양영란 옮김 / 책담 / 2014년 12월
평점 :
절판
[북리뷰] 행복을 철학하다.
행복. 행복.. 행복… 응?? 행복이라는 글을 자주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행복이라는 글만 보고서도 행복한 기분이 들까? ctrl + c, ctrl +
v 해서 A4 한 면에 행복이라는 글만 쭉~ 붙여봤다. 그런데 행복해지기보단 ‘행복이 뭘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우린 ‘행복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행복하면 당연히 좋다.
삶을 등산에 비유를 많이 한다. 하지만 높은 산 하나 만을 오르는
것이 삶은 아닐 것이다. 한 능선을 넘고, 또 넘고 그러다가
산 정상에 올랐을 때 시원한 바람이 불면 그 순간엔 근심, 걱정이 사라지고 평온한 기분이 든다. 그렇지만 이내 내려가서 또 다른 산을 타야 한다.
‘다음 산 정상에 올라가면 다시 시원한 바람이 불면 그때 행복하겠지?’라는 시간적인 기대감이 행복일까? 그럼 산을 타고 내리는 중간에는
전혀 행복함을 느끼지 못할까? 터벅 터벅 산을 오르는 것은 삶을 오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산을 오르다 중간에 쉬면서 혹은 산을 오르는 과정을 즐길 수는 없을까? (뭐~ 진짜 산을 오를 때는 힘들어서 자주 못 보는 건 인정한다.)
책 제목이 ‘행복을 철학하다.’이다. 행복을 철학적으로 접근하는 책이다. 많고 많은 분야 중에 행복을
왜 철학적인 입장에서 접근을 했을까? 그건 아마 ‘행복은
생각에 따라 다르다.’라는 대전제가 있어서라 생각한다. 행복은
다분히 주관적이고 사유적인 것이니까.
행복의 어원을 살펴보면 그리스어 에우다이모니아 (eudaimonia – 좋은
다이몬을 가지고 있음), 프랑스어 보뇌르 (Bonheur )는
좋은 징조를 뜻하는 라틴어 보눔 아우구스리움 (bonum augurium)에서 유래되었다. (p 11) 행복은 기회 또는 호의적 운명이라는 뜻으로 ‘기회’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렇다면 고대의 철학자들은 행복을 어떻게 보았을까? ‘그리스 철학자들은
쾌락에 대해 성찰하면서 행복의 개념을 정립했다. 행복한 삶은 쾌락을 주는 삶이며, 쾌락은 필요한 욕망을 만족시켜주는 것과 연관이 있는 기분 좋은 감정을 말한다.’
(p 34)
에피쿠로스는 세 가지 부류의 욕망을 구분하는데 자연적이고 반드시 필요한 욕망
(먹고, 마시고..), 자연적이지만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욕망 (아름다운 옷, 안락한 주거..), 자연적이지도 반드시 필요하지도 않은 욕망 (권력, 사치, 행복..) 이
세가지다. (p 41) 이 중 자연적이고 반드시 필요한 욕망이 충족되면 행복이라고 보았다.
그리스 철학자들은 쾌락 즉, 필요한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것이라고 했고
에피쿠로스도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의 욕망, 의식주 해결되면 그것이 행복이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는 더 많이 가질려고 한다. 이런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상대적 박탈감 (relative deprivation)에
빠져서 그런 것은 아닐까?
마트에서 장을 볼 때, 요즘처럼 비싼 패딩이 유행할 때 남이 나보다
좋은 물건과 옷을 입고 있으면 그것을 사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그러면서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남과 나를 자꾸 비교하게 된다. 비교. 이것만큼 나쁜 것도
없다. ‘엄친아’가 대표적인 예라고 본다. 자존감을 없애는 최고의 명약이다.
행복은 삶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이다. 그럼 삶이란 무엇일까?
삶은 두카(dhukka), 곧
고통이다 두카는 원래 갈증을 뜻하는 말로, 욕망이나 집착이라는 의미로서의 갈증으로 알아들어야 한다. (p 186)
불교에서 삶은 두카라고 한다. 고통이다. 그럼 그리스 철학자들의 말과 혼합을 해보자.
“고통스런 삶 속에서
쾌락을 얻는 것이 행복인가?” 나는 이 명제에 반기를 들 수 없다. 며칠
전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었다. ‘삶이 널 축복할 것 같지? 기댕겨봐
널 시험할 테니까.’ 삶에 있어 염세주의자는 아니다. 요즘 Apink의 LUV를 들으면 즐겁다.
미생스러운 삶에 즐거움을 찾는 것이 행복이라면 난 최고의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행복 스트레스에 사는 우리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