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인수업 - 나를 넘어 나를 만나다
박찬국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북리뷰] 살면서 태어나길 잘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얼마나 있을까?

인생은 욕망과 권태를 오락가락하는 시계추와 같다.’라는 이 문장을 읽고 있자니, 사람이 느끼는 소유의 비루함을 정확하게 지적하는 느낌이 들었다.

니체는 초인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니체가 말하는 초인은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니체의 인생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교수가 된지 10년도 되지 않아 병이 생기고, 45세의 나이부터는 식물인간처럼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 이런 삶을 산다면 긍정적인 삶이 가능할까? 정상인라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픈 사람들을 보고 삶이 불행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안다고 한다. 아픈 사람이나 평범한 사람이나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주관적인 평가는 비슷하다고 한다. (어느 책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니체는 운명에 대해서 취할 수 있는 세 가지 삶의 태도를 말한다. 첫 번째는 운명의 존재를 부정하면서 인간이 노력하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고 보는 태도. 니체는 이를 단죄의 철학이라 불렀습니다. 두 번째는 숙명론입니다. 일종의 패배주의로서 모든 것을 운명 탓으로 돌리는 태도에 해당합니다. 세 번째는 운명을 긍정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역경을 오히려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생각하면서 험난한 운명에게 감사하는 것입니다.

어느 운명에 대한 태도를 갖던 이것은 나의 선택입니다. 위의 세 가지가 아니더라도 상관은 없겠죠. 선택은 나의 몫이고 책임도 나의 몫이니까.

니체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말은 신은 죽었다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문장은 역설적인 문장입니다. 신은 죽을 수 없는데 신은 죽었다뇨. 하긴 영화를 보면 신도 죽긴하더군요. 이 문장은 상징적으로 해서하라고 합니다. 우리가 겪는 문제는 대부분 인간관계와 사회에서 오는 현상이기에 신을 끌어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며, 과학이 발전하면서 거의 모든 부분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기에 이제는 신이 필요하지 않다는 의미겠죠.

그러고 보면 은 나약한 인간이 의지하기 위해서 만든 존재일 수도 있겠네요. 물론 종교가 없기에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니체는 종교를 두 가지로 구분했습니다. 하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죄책감을 강요하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의 힘을 강화시키고 고양시키는 종교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종교입니다. 다른 하나는 바울이 만들어낸 그리스도교처럼 지상의 힘이나 쾌락을 죄악시하고 끊임없는 회계를 강요하는 종교입니다. 회계라이 단어를 들으면 떠오르는 영화대사가 있습니다. “너나 잘하세요.”

인간은 아름다운 것을 경탄하고 숭배하지만 이때 사실 경탄하고 숭배하는 것은 자식 자신이라 합니다. 니체가 허무주의라 하는 말이 있긴 하지만, 삶에 대해 가장 애착이 강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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