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백성실록 - 우리 역사의 맨얼굴을 만나다
정명섭 지음 / 북로드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조선백성실록의 부제는 역사에 기록된 가장 하찮은 순간들이다.

역사를 바라보는 것을 우리는 사관(史觀)이라한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대로 그대로 본다면 왕족과 양반네들이 볼 때는 평민들이 하찮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농경사회였고 국경의 개념이 모호했던 당시 정말 평민들이 하찮았을까? 그렇지 않다. 세종도 그랬지만 여행을 자유롭게 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 하찮은 존재는 아니었다. 백성을 단순히 경작과 부역을 하는 자산으로 여긴 군주면 또 몰라도. 현재의 시각으로 보면 이런 군주한테는 머거 머거 두 번 머거 하고 싶은 맘뿐이지만.

 

우리나라 역사서에 조선왕조실록이 갖는 의미는 역사서 그 자체보다 더 많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끊임없는 전란으로 문화재도 유실되고 국보와 서적들도 강탈당했다. 우리의 역사를 대변해줄만한 자료가 부재하니 조선왕조실록은 우리의 역사를 탐구하는데 더 큰 가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조선왕조를 좋아하지 않는다. 고구려와 고려시대 때는 현재의 중국에 대항했지 조선처럼 명나라에 사대주의를 펼치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왕조실록에 수록된 우리의 삶을 다시금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그 당시나 지금이나 역사는 반복되는건 어쩔 수 없는 일인거 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국가가 건립된 후 각종 세금과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건 일반 시민이고 민초였을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지금과 똑같이 양반과 일반 백성들이 징집대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이나 조선시대에나 양반네들은 징집을 피할려고 꾀나 애를 썼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소위 지도층이라고 불리는 인사들은 면제를 받았고, 그들의 자식들도 면제가 대다수니 말이다.

 

가게부채가 1,000조원에 육박할꺼란 보도가 많이 나오고 있다. 대출을 조장하는 사회분위기도 있다. 미등록대부업체들도 상당수 있어 서민들의 빠듯한 삶을 옥죄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조선시대라고 다르지 않았다. 유정현이라는 영의정을 지낸 사람은 고리사채로 서민들의 돈을 악착같이 긁어모았다. 지금이라고 다를까 싶다.

 

지금 우리 사회는 커다란 병마와 싸우고 있다. 연쇄살인법이나 아동 성폭력 같은 강력범죄가 끊이지 않으니 말이다. 조선시대에도 이런 흉악범들에게 월족형(刖足刑)이란 형벌을 내렸다고 한다. 발뒤꿈치 아킬레스건을 자르는 형벌이다. 또한 전자발찌처럼 이마에 글씨를 문신로 새겨 넣는 자자형( 刺字刑)이라는 형벌도 가했다. 지금이나 조선이나 척박한 서민들의 생활속에서 각종 범죄가 넘쳐나는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던거 같다.

 

한 가지 흥미를 끈 사실은 조선시대에도 운하를 건설할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 국가의 지도자는 우리나라 하천을 녹조라떼로 만드는 일에 상당히 관심이 많았었나보다.

조선이라는 나라를 생각하면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말이 생각이 날 것이다. 하지만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초기에는 이혼이 자유로웠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억압한다고 될 것이 아니지 않는가?

 

조선백성실록을 읽다보면 선입견으로 갖고 있던 조선이라는 나라의 틀이 한꺼풀 벚겨지는 느낌이었다. 반복되는 역사속에서 민초들의 억압된 삶을 보여주는 책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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