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미술의 이단자들 - 호크니, 프로이트, 베이컨 그리고 런던의 화가들
마틴 게이퍼드 지음, 주은정 옮김 / 을유문화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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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올해는 미술관련 책들을 읽어보려 한다. 몇권을 읽었지만 목표 대비 한참 모자란다. 마침 을유문화사에서 현대미술의 호크니, 프로이드, 베이컨과 런던의 화가들에 관한 책이 나와서 읽어봤다.

 

대부분의 책은 한 사건 또는 한 사람에 대해 서술하는 편이다. 아르테에서 나온 '뭉크'의 경우는 뭉크의 그림과 그의 삶에 대해 기술했다. 민음사의 '시대를 훔친 미술'은 그림이 그려진 시대상을 읽기 쉽게 풀었다. 허나 현대미술의 이단자들은 chapter간의 개연성을 느낄 수 없었다. 각 chapter가 따로 존재하는 것 같고, 한 chapter안에서도 문단의 단절이 느껴진다. 이 책은 현대 미술에 대해 어느 정도의 지식이 있는 사람이 읽어야 하는 수준이다. 나처럼 미술 전시만 보던 사람은 읽기 매우 어려운 책이었다.

 

대표적인 호크니, 프로이드, 베이컨에 대해 책에서 언급한 부분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베이컨

 

"전후 영국 회화는 1945년 4월 런던 르페브르 갤러리Lefevre Gallery에서 열린 단체전을 기점으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베이컨은 이 전시에 두 점을 출품"했다고 한다. 베이컨이 영향을 받은 대상은 피카소였다고 한다. 책에 있는 '십자가 책형 발치에 있는 형상을 위한 세 개의 습작'을 보면 베이컨의 성향을 대략적으로나마 짐작할 수 있다. 그림을 보면' 피카소의 영향을 받았구나'라고 짐작할만하다.
 

베이컨은 "진정한 그림은 우연과의 불가사의한 끝없는 고투"라고 했다. 1946년 본인 스스로 환결됐다고 한 최초의 완성작을 제시했는데 '회화1946'이 그것이다. '회화1946'은 무척 난해하다. 그림은 보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니 해석은 그림을 보는 사람의 입장에 맡기는 게 맞다.

 

책에는 '회화1946'에 대한 이런 설명은 없다. 허나 내 주관적으로 보면 1946년은 세계 2차 대전이 끝났을 때이다. 전후 세계는 살육의 연장선위에 있다. "삶의 총체적인 공포, 다른 생명체를 뜯어먹고 사는 생의 공포"를 상기시켰다는 대목은 나의 삶은 너를 잡아 먹고 살아야 하는 전쟁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프로이트

 

 

"프로이트는 먼저 자기 자신을 '삶 자체'를 주제로 다루는, 삶을 '거의 문자 그대로' 미술로 옮기는 미술가로 규정했다"고 한다. "프로이트는 대상의 '오라aura'를 포함했다. 그에게 '오라'란 대상이 주변 공간에 미치는 영향을 의미했다."

 

프로이트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작가들 존스, 호크니, 스미스 등은 화려하고 자유로운 미국을 동경했는데, 프로이트는 런던 서쪽의 작은 동네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그를 낡고 몰락해 가는 장소로 이동하게 만든 것은 역설적이게도 현대성이라고 한다. 프로이트가 거주한 곳은 정부에서 철거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고독한 미술가로 뚜렷한 경제적, 사회적 가치가 없는 존재였던 프로이트는 철저가 예정된 건물에 자리 잡는 경향이 있었다."고 한다.

 

책에서 "프로이트는 이후 세상에서 잊히는 것이 자신에게 적절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잊힌 채 거의 지하에 묻혀 작업하는 것에는 아주 즐거운 측면도 있었습니다. 나는 결코 관심을 바란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조금도 불안해하지 않았습니다.""라고 한 인터뷰 대목은 프로트드를 잘 설명해주는 대목이 아닐까 한다.

 

프로이트의 '벌거벗은 소녀'를 보면 프로이트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거 같다. "프로이트는 늘 고전 전통에 대한 본능적인 혐오감을 갖고 있었다. 그가 이탈리아 미술보다 프랑스 미술을 좋아한 것도 이 이유였다."고 한다.

 

"나는 내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누드라기보다 벌거벗은 것이라고생각한다. '누드'라는 개념은 어떤 측면에서는 자의식적인 예술적 느낌을 갖고 있고, '벌거벗은' 것은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와 보다 관계가 깊다. 옷을 입고 있지 않은 사람을 그릴 때 나는 초상화법에 대해, 개인의 특유한 형태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라고 했다.

 
호크니

 

 

서울시립미술관에서 3월 22일부터 8월 4일까지 '데이비드 호크니' 전이 열렸다. 누적관람객 30만명이라고 하니 성공적인 전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호크니가 왕립예술학교에 다닐 때, 교수들은 유별난 입학생들이 오랜 경험 중 최악이라고 했다고 한다.

 

호크니는 학교에 적응하면서 추상표현주의 양식으로 크고 느스한 그림을 그렸다. 자칭 "데이비 겸 풀록 겸 힐턴"양식이라고 했다. 무슨 양식인지는 이해가 가지 않지만, 호크니가 그랬다고 한다.

 

호크니가 앞으로 나갈 수 없을 때, "정치, 채식 등 다양한 것들에 관심을 갖고 있는데, 왜 그것을 그리자 않냐고 지적"을 받았고, 호크니는 "'옳은 지적이야. 그게 바로 내가 불만을 느끼는 바야. 나는 결코 나 자신으로부터 비롯되는 그림을 그리지 않고 있어.' 호크니는 자신에게 중요한 것을 다루는 그림을 그려야 했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미술은 전시 위주로 봤고, 미술사를 읽은 것도 현대 미술은 읽지 않아 책을 접하는데 아주 큰 어려움이 있었다. 책 또한 한 사건의 서술이 아닌, 서사적 구조라 현대 미술과 영국의 미술을 아는 분이 읽어야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책이었다. 쉽게 덤비는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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