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펜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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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6펜스는 고갱을 모티브로 한 소설이라고 한다. 꼭 고갱이라고는 말 못한다고 하지만, 서머셋 몸이 타이티를 가면서 고갱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글을 썼으니 고갱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고갱을 말하면 고흐가 따라온다. 둘은 후기 인상주의의 대표적인 화가이다. 고갱과 고흐는 아를에서 함께 지내기도 한다. 고흐의 '아를의 포룸 광장의 카페테라스'를 보면 한적한 아를의 거리를 느낄 수 있다. 


▲ (왼쪽) 반 고흐, 아를의 지누부인, (오른쪽) 고갱, 아를의 밤의 카페 : 지누부인

고갱과 고흐를 이야기하면 '지누부인'을 빼놓을 수 없다. 선술집을 운영하는 지누부인은 고갱의 그림이 더 사실적이다. 허나, 고흐는 지누부인이 원하는 삶을 그려 지누부인이 더 좋아했다고 한다. 사실을 그리냐 대상자의 이상을 그리냐는 온전히 화가의 몫이다. 누가 옳다 그르다의 문제는 아니다. 난 고흐와 고갱을 말하면 '지누부인'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다시 달과 6펜스로 돌아오자. 달과 6펜스의 제목을 예전부터 들어봤다. 그런데 왜 달과 6펜스일까?라는 고민은 그리 하지 않았다. 좀 멋져 보이는 제목이긴했다. 책의 해설에서 달은 영혼과 관능의 세계, 본원적감성의 삶을 의미하고, 6펜스는 돈과 물질의 세계, 천박한 세속적인 삶을 가리키며 사람을 문명과 인습에 묶어두는 견고한 타성적 욕망을 암시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럴까? 뭐 의미가 그렇다면 그렇다고 하자.

찰스 스트릭랜드는 잘나가는 중권 중개인이다. 그런데 어느날 아내에게 이별을 선고한다. 여자가 생긴 것도 빚이 있는 것도 아닌, 요즘 표현대로 하면 졸혼을 이야기한다. 스트릭랜드 부인은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정신이 혼미해진다. 스트릭랜드는 영국을 떠나 프랑스로갔다. 프랑스에서 어렵게 생활하며 그림을 그린다. 스트릭랜드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가족과 이별을 택했다. 

보편적으로 인간이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건 가족이다. 가족을 버린다는 건 자신의 모든 소중한 것을 버리고서도 그림을 향한 욕망이 강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돈잘버는 직업, 가족을 버리면서까지 스트릭랜드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했다.

프랑스에서 건강이 악화된 스트릭랜드. 정이 많은 스트로브는 스트릭랜드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온다. 스트로브의 아내 볼란치는 스트릭랜드를 싫어했다. 하지만 스트로브의 간청으로 셋은 한 집에서 생활하게 된다. 건강을 찾은 스트릭랜드. 스트로브는 스트릭랜드에게 집에서 나가 달라고 한다. 이를 어쩐다. 스트로브의 아내 볼란치가 스트릭랜드와 함께 나간다고 한다. 바보같은 스트로브는 둘이 집에 있으라 하고 자신이 집을 나간다.

스트릭랜드와 볼란치의 미묘한 동거는 오래가지 않았다. 가족까지 버린 스트릭랜드는 볼란치를 그린 후 그녀를 떠난다. 볼란치는 괴로워한 나머지 음독자살을 시도한다. 바보같은 스트로브는 아내를 살리기 위해 노력한다. 허나 볼란치는 약물로 인해 식도가 녹아버렸고, 병원에서 쓸쓸하게 죽는다. 스트로브는 스트릭랜드가 떠난 자신의 집에서 그림을 하나 발견한다. 스트릭랜드가 그린 아내 볼란치다. 그림을 찢어버리려고 했지만 그림에 감탄하고, 모든 짐을 싸서 고향인 네덜란드로 돌아간다.

스트릭랜드는 행방이 묘연했다. 수소문한 결과 타히티로 갔다는 이야기를 전해듣는다. 타히티에서 스트릭랜드는 현지인 소녀 아타와 함께 산다. 문둥병에 걸린 스트릭랜드는 자신의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린다. 죽음이 가까워져 왔을 때 눈까지 먼 스트릭랜드는 그림 그리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스트릭랜드는 죽을 때 아타에게 부탁을 한다. 자신이 그린 그림과 함께 태워달라고. 탁터 쿠트라가 스트릭랜드의 그림을 보고 명작이라고 생각했다. 허나 아타는 스트릭랜드의 유언에 따라 모든 그림을 태워버렸다.

스트릭랜드 사후 그의 그림은 모든 이들에게 찬사를 받는다. 스트릭랜드 부인은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담담하게 맞이한다. 유명화가의 부인의 모습으로. 

고갱과 스트릭랜드는 정확히 매치하지 않는다. 허나 그림을 사랑한 두 사람의 일생은 엇비슷하다. 예술은 제정신으로 못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예술인의 삶이 평범하면 작품에 나타나는 심묘함이 떨어진다. 굴곡적인 삶이 있어야 작품도 명성을 얻는다. 삶의 가시가 누군가에겐 일상의 스크래치처럼 깊이 남으니.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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