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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소묘 - 서울애니메이션센터 만화애니메이션총서 31 ㅣ 서울애니메이션센터 만화애니메이션총서 31
김인 지음 / 새만화책 / 2004년 12월
평점 :
품절
사진을 보면 그것을 찍은 자의 마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강아지를 찍었으면 그 강아지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꽃을 찍었으면 그 꽃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리고 나를 찍었다면,, 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이 책의 미술 선생님도 주희의 그림만 보고도 알아맞혔다. 주희가 해바라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렇게 우리는 말이 아닌 모든 것으로 우리의 마음을 들키고 다니나 보다.
이 책을 봤을때, 정말 만화책인가 싶었다. 단편 두 편이 실려 있는데, 개성있는 등장인물들의 얼굴 표정에 놀랐고, 특히 뒤편 '그림자 소묘'에 나오는 붓선의 그림들은 액자에 넣어 벽에 걸고 싶기도 했다. 주인공 소녀가 자신의 그림자가 없는 것을 알고 깜짝 놀라 휙, 돌아서는 역동적인 붓선의 그림 컷과, 뒤에 사과를 손에 어색하게 쥐고 어색하게 앉아 있는 그림. 그림 그리는 친구 앞에 모델로 앉아 있는 그 모습이 어색하면서도 자연스러울려고 애 쓰는 흔적이 보이는 듯 해 재밌는 느낌이었다. 마치 미술관에서 그림 감상하듯 만화책을 감상한 건 처음이다.
그리고 또하나. 여기에는 소녀들의 마음맞춤이라는 게 있다. 흔히 그려지는, 치고박고 싸우며 툴툴 터는 남자들의 우정과는 다르게, 흔히 그려지는 여자애들끼리의 시기와 질투, 혹은 말다툼 속에 자라는 우정과는 다르게, '소녀'들만의 아름다운 마음맞춤이 있다. 빛이 이미 그림자를 포함하고 있다는 미술 선생님의 말처럼, 사과와 그 그림자의 경계를 알 수 없이, 두 소녀도 언제부터 친구가 된 지도 모르게 그렇게 자연스레 어우러지게 된 게 특히 인상깊었다. 퍽퍽 치고받는 싸움을 통해, 혹은 말다툼을 통해 '키워나가는' 우정과는 조금 다른 느낌의 우정이랄까. 그래서 나는 두 소녀의 우정을 그냥 '마음맞춤'이라고 하고 싶다. 그리고 이것이 또한 두 편의 단편이 하나의 이야기로 맞아 떨어지는 지점이다. 그냥 그렇게 자연스럽게 단편 두 개가 하나의 이야기로 돼 버렸다.
중간중간 철학적인 냄새를 풍기는 문구들도 있어, 이거 더 깊이 생각에 빠져 봐야 하나, 그냥 가볍게 넘어가야 하나, 망설이기도 했지만, 책을 덮고 보니 마음에 약간의 무게를 남겨 줘 기분이 좋았다. 그래, 역시 조금만 생각에 빠져 보자.
만화책은 재밌으라고만 있는 줄 알았던 나의 좁은 시각을 깨 부순, 감동의 만화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