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문제의식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머리말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작가는 앞서 간 이들의 치열했던 문제의식을 지적하면서, 그렇다면 이 시대 작가(지식인)는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그 자신의 고민을 “은비령”을 통해 무겁지 않으면서도 진지하게, 환상적이면서도 현실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그가 제시하는 우리 시대의 문제는 “상처” 곧 아픔이다. 이는 은비령의 은자가 말하는 바람꽃의 “독”으로 상징되고 있다. 이 상처는 우리 민족의 恨일 수도 있고, 나아가서는 현대인의 비애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럼 그 상처는 무엇에서 기인하는가? 이 소설의 실마리는 바람꽃에 비유되는 두 여인이다. 두 여인에게 다 연민의 감정을 느끼는 “나”는 원인으로 크게 두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그 하나는 첫번째 바람꽃으로 상징되는 분단의 상처, 즉 이데올로기의 상처이다. 그는 이 부분을 뒤에 나오는 친구의 아내보다는 다소 가볍게 처리함으로써 그의 문제의식은 후자에 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두번째 상처는 서해 페리호 사건으로 상징되는 근대화, 서구화의 문제, 더 크게는 현대산업문명이 야기하는 인간성의 상실, 비애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이 상처를 안쓰러워하지만, 결코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하려 하지는 않는다. 아니 해결방법을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마치 대다수의 우리 소시민들처럼… 현실의 상처를 외면하고(어쩌면 그 나름대로의 해결방법일 수도 있는) 그가 찾아간 곳이 바로 은비령이다. 은비령은 바로 대자연의 품, 고향, 우리의 전통을 상징한다.
분단이데올로기로 상처받은 민족, 근대화로 파괴된 우리의 전통, 현대문물로 인해 사라져가는 인간성(人間性), 그리고 아직은 덜 파괴되고 덜 오염된 은비령. 하지만 그 곳에의 동경은 결국 향수이고, 은비령을 통해 위로받을 수는 있을지언정 근본적으로 치료받을 수는 없다. 그와 그 친구의 아내가 하룻밤 밖에 맺어지지 못함도 그에 연유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근본적인 해결책은 뭘까? 솔직히 그가 이 부분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놓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모든 해결의 시작은 정확한 문제인식이듯이 그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상처를 지적함으로서 해결을 모색하고 있다. 또 하나 작가의 표현력 부분에 있어 은비팔경에서 보이듯이 뛰어난 한자어 활용으로 보이는 광경을 글로 묘사한 탁월한 필력을 선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