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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결혼 시키기
앤 패디먼 지음, 정영목 옮김 / 지호 / 2002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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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너무나 즐거웠다. 주저없이 올해 읽은 최고의 책으로 선정해버렸을 만큼 즐거웠다.

나도 앤 패디먼 못지않은 책벌레, 문자중독이다. 어디에서건 혼자 있는데 읽을 거리가 없으면 불안하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러닝 머신과 스테퍼 위에서, 화장실에서, 어디서든 무엇이라도 읽어야 한다. 카탈로그도 정말 훌륭한 읽을거리이다. 어디론가 이동할 일이 있으면 일단 이동 시간과 거리, 체류 기간을 고려하여 가지고갈 책의 두께와 부피를 결정한다. 새로운 도시로 여행을 가게 되면 일단 나와있는 대부분의 여행 가이드를 섭렵하며 상상 여행을 미리 하고 그 도시에서 태어난 작가의 책, 그 도시에서 집필된 책을 조사하여 가방에 먼저 자리를 잡아두어야 한다.

괴팍하고 까다로운 면도 뒤지지 않아서 처음 읽을 때에는 줄거리와 문체를 음미하는데 집중하지만 두번째, 세번째가 될수록 이 잡듯 오자, 탈자, 띄어쓰기, 문법적 오류, 역사적 오류, 과학적 오류 등을 잡아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앤 보다는 책을 덜 육체적으로 사랑한다는 점이다. 화장실에서도 책을 읽곤 하니 책에 물이 좀 묻거나 하는 정도는 괜찮지만 이 다음에 내 아이가 나의 책을 입과 침으로 음미하는 것을 보면서 그저 웃을 수 있을만큼은 못 된다. 면지에 책을 살 때의 느낌과 짧은 소감을 적는 것을 즐기지만 까탈스럽게도 책의 겉표지와 띠를 버리지 못한다.- 이것은 아마 우리나라책에서만 특징적으로 많이 보이는 현상같다. 튼튼한 하드커버 표지가 있음에도 조잡한 디자인의 겉표지가 다시 씌워져있고 모모 문학상 수상, 올해 가장 읽을 만한 책, 따위의 쓸데없는 문구가 요란하게 써있는 띠가 다시 한 겹 둘러져있다. 이것들이 책의 품위를 떨어뜨린다고 생각하면서도 누군가 빌려가서 이걸 벗긴 채 돌려주면 불같이 화를 내곤 한다. 책장 귀퉁이를 살짝 접어놓는 것은 애교로 봐줄 수 있지만 침을 발라 책장을 넘기는 것은 - 오늘도 나는 엄마와 싸운다. 엄마는 주장한다. 50년 습관을 어찌 하루아침에 바꾸라고 하느냐- 죄악으로 간주한다.

나도 더 세월이 흘러 내 아이가 열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가 내 나이 그 때에 면지에 '우리 딸, 치약 뚜껑 잘 닫고 다니면 더 예쁠텐데'라고 써서 선물해주신 <해저나라>를 읽어주며 목욕탕 용품의 깨끗하고 올바른 사용법에 대해 이야기해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제 마음에 드는 번역본을 만났을 때 늘 그러했듯 - 읽을 확신이 없더라도 멋진 작품은 원작을 함께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또 다른 병이다 - 이미 느껴지는 단어와 문장의 수준이 완독에의 확신을 더욱 떨어뜨리긴 하지만 이 책의 원작 'Ex libris'을 사러 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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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해보자. 어떻게 되는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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