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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과 다의 환상 - 상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사진찍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학창시절부터 여행을 가게되면 절대 빠뜨리지 않는 물건이 있다. 바로 카메라. 몇년 전부터 싸이나 블로그가 활성화되면서 디카,필카 할 것없이 대대적인 사진붐이 불고 있는데 꼭 그런이유 때문이 아니고서라도 여행준비를 할때마다 매번 "사진 많이 찍어와라. 결국 남는건 사진밖에 없다,얘- " 하시던 어머니의 말씀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생각에 여행지에서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사회적인 행위다. 동행한 사람과 사회적 유대를 확인하는 행위. 그것이야말로 증거 만들기, 알리바이 만들기다.
그래서 아키히코의 독백에 깊게 공감하게 된다. 물론 정말 좋은 멤버들과 즐거운 여행을 기념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 경우도 있지만 아키히코의 말마따나 사회적인 이유로 흔적을 남기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걸 안다해도 계속해서 같은 이유로 우리의 초상권은 팔리겠지만.
여행하면서도 사진찍을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하는 이 네사람의 여행은 뭔가 특별하다. 분명 대학동기, 옛 연인, 고등학교동창인 멤버가 중년이 되어 여행할 기회는 흔치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 주제가 '비일상'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다.
여행. 우리는 왜 여행을 하는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고, 아름다운 경치도 보고 싶고, 술 마시고 그 자리에 큰 대자로 뻗어 쿨쿨 자고 싶다. 그것은 당연한 욕구다. 하지만 그뿐일까? 우리는 무엇보다도 '비일상'을 원하는 것이다.
우연하게 기획한 Y섬으로의 여행. 등산을 하면서, 각자 생각한 '아름다운 수수께끼'들은 해결해가면서, 알게모르게 얽혀있던 과거의 비밀들이 서서히 드러난다. 사소했던, 사소한, 심각했던, 심각한 수수께끼들. 네 사람의 관점이 차례로 번갈아가며 서술되기에 소설 속 인물은 모르는 '아름다운 수수께끼'의 답을 독자들은 알 수 있다.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네 사람의 대담이 너무 재밌고 즐거웠는데 혼자 생각해보던 문제를 평소 생각하기 힘든 관점에서 다가가는 것이 유쾌했다. 그런가하면 아-맞아! 하고 나지막한 탄성을 지르며 끄덕이기고 있기도 했고. 별것도 아닌 줄 알았는데 어느새 별것으로 만들어버리는 대화들. 온다리쿠의 작품은 이 소설이 처음이기에 단언하기 힘들지만 이 작가, 꾸준히 찾게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