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한_목격자@제2의_천년.여성인간ⓒ_앙코마우스TM를_만나다 - 페미니즘과 기술과학 아우또노미아총서 14
다나 J. 해러웨이 지음, 민경숙 옮김 / 갈무리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1.이 책은 문학비평, 페미니즘 이론, 생물학에 대한 어느정도의 배경지식을 요하는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의 번역자는 발터 벤야민과 flanuer를 '벤자민과 게으름뱅이', sexuality는 무조건 모조리 '성욕'이라고 번역하고, 생태학의 기본용어인 '포식자 predator'는 '약탈자'라고 번역하는 수준.

2. 중학이상수준 영어수업을 받았다면 번역서를 읽느니 원서를 직접 읽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목적어 명사와 수식구 사이에 삽입구가 많은 문장은 놀랍게도 단 하나도 제대로 번역한 것이 없고, 기본적인 from~to 용법조차 '빈번히' 틀리며, it이나 the로 앞부분 내용을 지시하는 것도 하나같이 오역. 이 서평의 뒷부분에 가면 그 예를 보실 수 있다.

덧붙이자면, 원저자가 흔히 쓰는 반어법을 이해하지 못해, 반어법적인 문장이 나오는 거의 모든 경우에서 의미가 완전히 반대로 바뀌게 번역해놓았다. 농담과 말장난은 당연히 모두 오역.

3. 제목부터 오역. "제2의 천년"이라고 번역한 "Second_Millenium"은 사실 본문을 읽어보면 "제2의 천년왕국"이라고 번역해야 한다. 이것은 해러웨이가 기독교의 구원서사를 비꼬면서 만들어낸 말로, 책제목일 뿐 아니라 이 책 전체를 꿰뚫는 아주 중요한 표현이다. 표지의 가시면류관을 쓴 생쥐(원서의 뒷표지이기도 한데)는 바로 신대신 자리잡은 과학기술이 "제2의 천년왕국"을 지상에 실현시킬 속죄양으로서, 그리스도의 패러디인 것이다. 나는 이 책이 나왔을 때 '제 2의 천년'이라고 번역한 걸 보고 '천년왕국'이란 말이 한국사람들한테 낯설어서 출판사측에서 고려한 것인가 했다. 하지만 본문번역을 보니 단순히, 번역자의 몰이해 때문인 듯. 

이 책의 본문에서 저자 해러웨이가 에리히 아우얼바하의 논의를 인용하며 어떻게 기독교의 천년왕국설이 세속화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millenium에 '천년왕국설'이라는  뜻이 있다는 것을 전혀 떠올리지 못하는 이 번역자는 그걸 설명하는 대목(52~54쪽, 원서로는 8~11쪽)에서 한문장도 빼놓지않고 모든 페이지를 통째로 아예 의미가 통하지 않고 괜히 심오해보이기만 하는 선문답으로 만들었다. '천년왕국의 실현'이라고 번역해야 할 것을 '천년의 이행'이라고 번역해 놓았으니, 번역서만 보고 무슨 말인지 누가 알겠는가.

4. 번역자가 이해를 못해서 원작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엉뚱하게 개작한 부분들도 빈번히 등장. 이를테면, 저자가 자신의 글을 푸가fugue를 작곡하는 것에 비유하며 책의 중심이 되는(분량상 전체본문의 1/3) 챕터에 붙인 부제인 "두 부분(혹은 성부)로 이루어진 기술과학 푸가"라는 제목을, "두 부분으로 나뉘어진 기술과학 기억상실증"이라고 번역해놓았다. 음악에서의 "푸가fugue"를 모조리 "기억상실증"이라고 멋대로 번역해놓은 것. 덕분에, 해러웨이가 "나의 이 민족지학적 푸가에서"(나의 이 민족지학적 글에서는 정도의 뜻)라고 써놓은 곳이 번역서에서는 "나의 이 민족지학적 기억상실증에서"가 되어버린다. 번역자는 원저자를 순식간에 기억상실증의 세계로 보냈다. 그런데, 이런 엽기 코메디가 이 책에서는 거의 단 한페이지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언급의 가치가 없는 상태의 번역에 대해 굳이 긴 글을 쓰는 이유는,

 이런 번역이 계속 나올까 무서워서이다. 번역자는 이전에도 해러웨이의 책 <유인원,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를 번역했는데, 그때 아무도 오역을 지적한 사람이 없다보니 번역자가 근거없는 자신감을 가지게 된 듯 하다. 이런 번역을 여러번 반복한다는 것은, 번역자로서 자기가 번역할 수 있는 책인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전혀없거나, 양심불량이라고 밖엔 생각할 수 없다.  

제발, 명쾌하고도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있는 원문을 잘못번역해서 의미불명의 무슨 선문답처럼 만들어버리고는, 원문이 워낙 심오해서 그렇다는 둥 하지 좀 말자. 원문이 워낙 어려워 힘들다면, 그냥, 그만 하시면 될 것을. 엉터리 번역으로 독자들을 혼미하게 만드는 건 수돗물에 독극물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출판사분들께서 '역자서문'에 쓰여있는 그대로 정말 해러웨이의 이 책이 꼭 소개되어야할 중요한 책이라고 생각해 이 책을 번역출간하고자 하셨다면, 원작의 논지를 전혀 전달하지 못하는 이번 번역서는 모조리 다시 거둬들여 번역을 다시 해서 출간해야하지 않을지? 

사실, 아래와 같은 파렴치한 역자 서문만 아니었어도 나는 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본 책은 생물학적 이론이나 페미니즘 이론보다 사회비판적 성격이 큰 저서이다. 따라서 해러웨이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전책들보다 수월하게 읽힌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으며, 특히 인문,사회과학을 전공하거나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훨씬 호감이 가는 책일 수 있다. ....독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이 책이 난해한 책이므로 반복하여 읽어달라는 것이다. 번역이 아닌 애초부터 한글로 씌어진 책들 중에도 어려워서 읽히지 않는 책들이 있다. 이 책은 영어 자체로 읽어도 어려운 책이다. 하물며 한글로 번역되었을 때에는 더욱 어렵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더군다나 해러웨이가 글을 쓰는 제일의 모토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명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의심하게 만들거나 뒤집는 일이기 때문에 책을 읽으며 어리둥절해지거나 고개를 갸우뚱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생물학 이론이나 페미니즘 이론보다 사회비판적 성격이 큰" 따위의 말을 하고 있는 것 자체가 이 책의 내용을 이해못했다는 걸 드러내주는 말이다. 페미니즘이 이론이 '사회비판'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또 생물학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경계란 없다는 것이 바로 해러웨이가 주구장창 강조하는 점일진데, 역자서문은 대체.... 게다가 이 책은 샌드라 하딩, 이블린 폭스 켈러로부터 페미니스트 인류학자들의 생명과학기술의료에 대한 인류학적 연구에 이르기까지 '페미니스트 과학학 feminist science studies'이라 총칭될 수 있는 연구들에 관한 해러웨이의 비평서라고 할 수 있는 책이다. 원서에 빈번히 등장하는 feminist science studies를 이 번역서는 '페미니즘 학문'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도대체 번역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 지 궁금할 밖에.

 이 책을 읽다가 "어리둥절해지거나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면 원작의 난해함 때문이 아니라 번역자의 상식을 넘는 난해한 정신세계 때문이다.  정말이지 '방대한' 분량의 오역(사실 이 정도가 되면 일부 오역을 지적하는 게 의미가 없다. 책의 내용 전체가 날라간거니까) 중에 일부들을 원문대조하여 지적해둔다.  

1. 책에 너무나 빈번히 등장하는, 기본적인 단어들의 맥락없는 번역

-너무 자주 등장하는 단어들이기에 이 단어들만 알 수 없게 번역해놔도 책 전체가 알수없어지는 효과가 있다.

1)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단어 figure. 다짜고짜 무조건 '비유'라고 번역해놓았다. 물론 figure는 워낙 의미가 풍부해서 만족스러운 한가지 번역어를 찾긴 힘들다. 사실 비유라고만 번역해서는 안되고 맥락에 따라 '형상'이라고 번역해야 한다. 어색한데로 '비유'로 일괄번역하기로 했으면 figure 라는 단어의 함의에 대해 이거야 말로 역자가 공부해서 역자주내지 해제라도 달아줘야 한다. 하지만 이 역자는 자기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모두 위키피디아를 베껴서 역자주를 단다(엎친데 덮친 격으로 위키피디아 번역도 종종 틀리게 한다).

아무튼 그나마도 저자 해러웨이 자신이, 이 책에서 자주 쓸  figure 라는 단어가 얼마나 다양하고 풍부한 의미를 띠는가에 대해서 만화까지 동원해 비교적 쉽고 간결하게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이 부분이 번역서에서는 감히 범접키어려운 선문답이 되었다. 앞서 지적한 '천년왕국'과 아우어바흐가 나오는 바로 그 부분이다. 모조리 오역. 그리고 책 전체를 관통하는 인식론이자 방법론의 키워드라고 할 수 있는 figure라는 단어에 대해 설명하는 책의 전반부가 알 수 없어지면서, 당연히 이 책 전체도 알수 없게 된다. 물론, 당신이 시간이 많고, 쓸데없이 지적허영심이 심한 독자라면 '워낙 해러웨이가 어렵다자나'하고 간혹 나오는 그나마 독해가능한 부분들을 조각난 채로 읽어가면서 시간낭비를 할 수도 있겠지만.

2) representation을 '재현'내지 '표상'이라는 널리 쓰이는 번역어를 놔두고 '표현'이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도대체 representaion처럼 중요한 개념어를 expression 이랑 구분안되게 '표현'이라고 번역해서 어쩌자는 건지, representation을 영한사전 펼치면 처음나오는 해석인 '표현'으로 번역해버린 것을 볼때, 역자는 '재현 representation'이라는 개념을 모르는 것은 아닐까.... (설마, 비교문학전공인데?)

3) articulation 과 splicing 을 둘다 무조건 '접합'이라고 번역했다. 접합은 그냥 붙이는 건데, 사실 저 두 단어다 '잘라낸' 후 다시 다른 연결로 붙이는 걸 뜻한다. 잘라내기와 붙이기 둘다 포함되는 단어. 그래서 articulation에 대해서는 '절합'(분절+접합 정도가 된다)이라는 번역어가 유통되고 있건만. 

4) agency 를 거의 일률적으로 '중개행위'라고 옮기고 (행위성, 힘, 작용, 대리와 대행.. 등으로 맥락에 따라 다르게 번역할 수 밖에 없는 단어인데.) 이를테면 "피조물을 창조자로 오해하고 중개행위를 소외된 객체에게 옮기는 것은 겨우 20세기 말에 이르러 생긴 일 같다."(159) 중개행위를 옮기다니 무슨 뜻일까? 물론 agency 겠거니 하고 대충 짐작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짐작하며 읽으려면 뭐하러 번역서를 읽나. 그러고보니 이 책은 object도 모조리 '객체'라고 옮겼다. 

5) 또 reified 나 reification 은 루카치가 논의한 개념의 영어번역으로서, 한국말로는 '물화'로 번역되고 있는데, 별다른 설명도 없이 무조건 '구체화하다'나 '구상화'로 번역하면 도대체 'embody'(이 책에서는 이것도 거의 구체화하다로 번역하고 있든데)나 'concrete' 같은 단어랑 어떻게 구별?  

말할 것도 없이 이 책에서는 이런 식의, 기존 한국에서 유통되던 개념번역어들을 이유도 설명않고 무시하고서(정확히 표현하자면 무시했다기보다는 그냥 몰랐던 것 같지만), 영한사전의 단어 설명중 1번에 나오는 번역어를 택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차라리 일관되게 그렇게라도 했다면!

6) appropriation 은 '전유'라고 많이 번역되어 유통되는 단어이고 심지어 이번엔 네이버 영한사전 1번에도 '전유'라고 나와 있구만, 왜 또 '전용'으로 바꾸시고? 다른 사전 쓰시나?

7) 그리고 decontextualize 는 맥락에서 뚝 떼어낸다는 뜻, 즉 '탈맥락화' 인데 또 왜 전부 '탈텍스트화'라고 번역? 나는 처음에 '탈컨텍스트화'에서 '컨'자가 빠지는 오타가 생긴 실수 인줄 알았는데 책의 다른 곳에서도 계속 탈텍스트화라고 번역을 하고 있는 걸로 봐서는 오탈자 문제가 아닌듯.

8) 그리고 이 책에서는 접두어 trans-(초월, 너머, 등등의 뜻)가 붙는 단어들이 상당히 중요한데, 이를테면 transspecific. 번역자는 이걸 모조리 '초특유의'라는 전대미문의 번역어로 번역했다. 이런 번역어가 나온다는 것은 이 단어가 나오는 챕터의 내용자체를 조금도 이해못했다는 뜻이다.

  trans+specific. 여기서 specific은 species의 형용사형으로 '생물학적 종의'라는 뜻이다. 그리하여 transspecific은 책의 맥락에서 (생물학적) 종을 넘어선, 이라는 뜻이다. 책에서 다른 종의 유전자를 이식해 종간 경계를 넘은 유전자조작 생물들, 이를테면 넙치의 유전자를 이식한 토마토 같은 애들을 수식할때 계속 쓰이는 형용사이다.  

그런데 번역서는 이 단어를 모조리  '초특유의'라고 번역하고 있는 것이다. '초특유의 이전된 생물'(143) 이걸 읽고 무슨 말인지 알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이 번역서를 읽다보면 알타비스타 번역기라도 돌린 후 윤문을 한 것이 아닌가 진지하게 의문이 가는 대목이 아주 많다.


9) Sexuality 를 '성욕'이라고 번역했다. 섹슈얼리티는 '성'내지 '성성'이라고 번역되기도 하다가 역시 만족스러운 번역어가 없어서 대체로 섹슈얼리티라고 그냥 표기한다. <섹슈얼리티 강의>같은 책도 나와있구만. 암튼 이 역자, reproduction은 무조건 '생식'이라고 번역하고 섹슈얼리티는 '성욕'이라고 번역한 덕에, 만약 재생산과 섹슈얼리티의 관계, 같은 구절이 나온다면 이걸 '생식과 성욕의 관계'라고 번역하게 생겼다. 당연히 원문의 뜻을 180도 바꾸는 오역이 된다.

 이 모든 어이없는 번역어 선택은 <유인원,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도 마찬가지이다. 그 외에도 physical이 나오면 무조건 '물리적'으로 번역한다든지...그 결과 physical anthropology는 '체질 인류학'임에도 물리인류학이라고 번역을 해놓는등. 번역어 선택을 제대로 한 경우가 거의 없으니, 여기까지 예로 든 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2.  문장오역- 원저자여 이 번역자를 용서하소서!

 문장상의 오역은 이제 셀 수도 없다. 다시한번, 이 번역자는 자기도 무슨 소린지 모르는 책을 무슨 초인적인 끈기로 번역한 것인지 궁금하다. 이걸 다 지적하다가는 책 한권도 너끈히 쓸 수 있다.  여기서는 전형적인 것 몇 개만 지적해둔다.


1) 일단 사소한? 실수 중 하나,

"그 ⓒ를 저자나 저자에게서 그 작품을 양도한 양수인으로 옮기는 작은 수정은, 18세기 영국의 텍스트 및 코드의 상품화 제도를 20세기 말 미국의 상품화 제도로 옮기는 겸손한 발걸음이다."(165)

이건 사소한 실수같지만 이 문장이 속한 소단원 전체의 내용을 180도 뒤바꾸는 실수이다;; 원래는 저작권, copyright 표기인 'ⓒ'표기가 18세기에는 저자의 이름에 붙어있다가 20세기 들어서는 만들어진 작품쪽으로 옮겨 붙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번역문에서는 그 표기가 저자에게서 '작품을 양도받은 양수인'으로 옮겨갔다고 해놓았다. 원서 p74, 13번째 줄이다. 중학생이면 읽을 수 있는 from~to용법으로, to가 어디 붙어있는지 확인해보시길. 문제는 이 번역서에서 이런 초보적인 실수가 한두번이 아니라는 것.

 
2) 아아, 이책을 번역한 분!

I hope the original author will forgive you!!!!

 이 책 번역서 160쪽(원서 71쪽)에는 "I hope the original author forgive me." 라는 문장이 있다. 번역서는 이걸 직역하여 뜬금없이 "나는 원본의 저자가 나를 용서해주길 바란다."(마치 번역자의 고백같다)라고 번역해 놓았다. 어쨌든 이상하지 않은가? 해러웨이가 글을 쓰다가 갑자기 용서를 빌어야할 '원본의 저자'란 누구일까? 해러웨이는 남의 글을 베끼고 있었던 걸까?    

 '저자'라는 개념의 역사에 관해 설명을 시작하며 등장하는 이 문장에서 the original author 란 바로, 17세기에 문학작품의 창조자로서 '저자author'개념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유일하게 '창조자의 권위 the Author'를 가지고 있었던 분, 바로 '하느님아버지 God'를 뜻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영어에서 흔히쓰는 god forgive me 라는 말에서 god 대신 'the original author'을 살짝 갈아끼워넣은 농담조의 말장난이다. 그러니까 저 문장은 "저자중의 저자, 신이여 나를 용서하시길!" 정도로 번역되어야 했다. 그런데 이 문장을 오역한 것은 재치가 부족한 탓이 아니라, 이 문장 뒹뒤에 나오는 저자 개념의 역사에 관한 본문내용을 이해못했기 때문이다.

3) "살아있는 존재들을 다루는 조잡하게 맞춰진 혼합된 고대 역사는 곧 다른 역사와 교대될 것이다. 유전적 교환의 긴 전통이 앞으로 다가 올 오랜 시간 동안 산업적 선망의 대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142)

 무슨 소린지 하나도 알 수 없지만 뭔가 대단히 심오해보이지 않는가? 이 심오함은 원작탓이 아니라 바로 오역으로부터 왔다. 원문은

"The ancient, cobbled-together,mixed-up history of living beings, whose long tradition of genetic exchange wil be envy of industry for a long time to come, gets short shrift."

역자는 아마도 shrift(참회, 속죄, get short shrift 라고 하면 숙어가 되어 가차없이 해치운다 정도의 뜻이된다)를 shift(아마도 '교대'로 번역?)쯤으로 읽은 모양이다. 그러나 그런 단순한 착각때문에 오역을 한 것은 아니다. 실은 이 문장의 바로 앞 문장도 오역인데, 제레미 리프킨 등의 종족순수주의적 주장과 행태를 비꼬는 조로 반어법적으로 서술해준 문장인데, 역자는 아마도 그 문장이 해러웨이 자신의 견해를 펼치는 문장이라고 여긴 것 같다. 앞문장을 오역하면서, 번역자는 그 다음에 오는 이 문장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 문장은 실질적인 주어(제레미 리프킨등의 주장. 이 사실상의 주어이다)가 생략되어 있어서 앞문장에 기대어 추측해서 읽어야 하는 문장이었다. 이런 식으로 앞문장에 기대 간결하게 쓰인 문장들은 이 책에서 모두 오역이 되어있다.

이 문장은 정체도 모호한 '조잡하게 맞춰진 혼합된 고대역사'(역자자신은 무슨 뜻인지 알까?)가 한술 더 떠 "다른 역사와 교대"될 것이라는 둥 하는 얘기가 아니라,  

"오랜 옛날부터 ancient, 여러가지 방식으로 한데 모이고 cobbled-together,  뒤섞여온 mixed-up, 생명체의 역사는, 생명공학산업이 앞으로 오래동안 질투할 만큼의 전통-유전자를 서로 뒤섞고 교환해온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역사는 가차없이 제거된다.(유전자조작을 반대한다는 리프킨 같은 사람들의 논리 속에서는)"

정도의 얘기이다. 나는 지금 번역의 오류를 지적하려고 거의 직역했지만 당연히 정식으로 번역한다면 앞뒤 문맥을 고려하여 이보다 훨씬 풀어서 번역해주어야 한다. 무슨 얘긴고 하니, 제레미 리프킨등의 사람들은 유전공학이나 생명공학산업이 각 생물종들간의 경계를 넘어 유전자를 뒤섞어 놓기 때문에 위험하고 나쁘다는 식의 논리로 유전자조작에 반대를 하는데, 원래 생명체라는 애들은 태곳적부터 서로 유전자를 막 교환하면서 종을 넘어 유전자를 뒤섞어온 잡종들이므로 리프킨 같은 논리로 유전자조작에 반대하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번역자가 이런 논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덕에 이 문장이 있는 142페이지가 통째로 이런 식의 엉뚱한 오역이다.

 
 그리고 이 번역자가 흥미롭게도 '오랜 옛날부터의' 정도의 뜻으로 쓰인 'ancient'를 무려 '고대'라고 번역해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번역자는 예전 <유인원,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에서도, "modern"이 '최근의'정도의 뜻으로 쓰인 것을 "근대적" 이라고 무조건 번역해버리는 바람에 원래는 구체적이고 간단한 이야기를 담고있는 문장을 엄청나게 '심오'하게 만들어주신 적이 있다. 같은 단어도 맥락에 따라 다르게 번역할 수 밖에 없는 데 기계적으로 한 단어에 한 번역어를 대응시키니까 생기발랄하고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있는 문장이 장난아니게 현학적이고 절대 아무도 알 수 없는 말씀이 되어 버린다. 말할 것도 없이 이 책에 이런 오역은 한 둘이 아니다.

대체 이런 식으로 번역을 해놓고도 역자서문에 당당하게 "어리둥절하거나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부분"은 해러웨이 때문이니 포기하지 말고 반복해서 읽으라고 독자에게 당부를 한단 말인가? 오, 이 번역자를 용서하소서!

4) 이번에는 이런 선문답 번역도 있다.

"문자 그대로 크로노토프chronotope는 화제의 시간 혹은 시간성이 조직되는 토포스topos를 뜻한다. 화두topic는 진부한 말이며, 수사학적 소재지이다. 장소와 공간처럼 시간은 결코 "문자적"이지 않으며, 단지 그 곳에 있을 뿐이다. 크로노스chronos 는 언제나 토포스와 서로 얽혀 있으며, 이 점에 대해서는 바흐친(1981)이 시간성을 조직하는 비유로 규정한 크로노토프 개념 속에서 풍요롭게 이론화하였다."(108)

 이 지경이 되면 아예 의미전달이 안되기때문에 뭐, 오역때문에 원문을 정반대로 착각할 걱정은 없으니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아예 의미전달이 안되는 부분이 이 번역서에는 지나치게 많다.

여기서 제일 알 수 없는 문장을 먼저 살펴보자.

"화두는 진부한 말이며, 수사학적 소재지이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일까?

"화두는 진부한 말이며"의 원문은 "A topic is commonplace"이다. 
무슨 말인가? 이 문장은 무척 짧게 압축적으로 topic이라는 단어의 어원, 유래를 설명하고 있는 문장이다. 번역자가 이해를 못했음이 분명하다. 해러웨이는 topic이라는 단어의 어원을 가지고 이 책 여기저기서 말장난을 하는데, 번역자는 책의 모든 부분에서 topic을 무조건 모조리 '화두'라고 옮겨놓았다. 그러니 책에서 무수히 등장하는 이 topic이라는 단어가 등장할 떄마다 거의 모조리 오역이 되는 건 당연. 그럼 다음과 같은 국내 일간지의 한 시사평론을 참고해보자. 

"'상식'(common sense)이란 고대 파피루스의 같은 페이지를 뜻하는 ‘같은 장소(locis communis-common place)’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여기서 ‘장소’를 뜻하는 그리스 말은 ‘topos’로서, 훗날 ‘topic’의 어원이 되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학생들은 토론의 논제를 적어 둘둘 말아놓은 파피루스를 펴면서 같은 논제가 적힌 장소를 찾아내어 토론했다고 한다. 같은 페이지의 논제에 대해서만 토론이 가능했고, 그래야 논쟁도 생산적이다.
‘같은 장소’라는 말은 훗날 ‘장소에 대한 믿음’으로 의미가 확장되어 여러 사람의 신념과 상식을 담은 ‘이데올로기’라는 의미로 새로이 자리매김을 한다. 이데올로기에 도전하는 것이 ‘이슈’이며, 상식에 기초해 이를 발굴하고 유통하는 것이 언론 활동이다."

동아일보,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604240067

다시 말해, 영어에서 commonplace 라는 단어는 처음에는 함께 참조하는 페이지, 즉 여러사람이 공유하는 페이지를 뜻했는데, 나중에는 이 사람 저 사람이 다 흔히 쓰는 구절, 개나 소나 쓰는 구절이라는 뜻으로 점차 변형되어 영한사전에 1번 의미로 나오는 '진부한 말'이라는 뜻까지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박학다식한 저자의 책을 번역하다 보면 어느 정도는 피할 수 없기 마련인, 번역자가 성실히 노력해도 도저히 해독이 불가능한 문장이 있어서 어쩌다가 잘못번역한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해러웨이가 commonplace내지 common이라는 단어를 자신만의 용법으로 자신의 모든 책에서 상당히 자주 쓰고, 또 본인이 종종 의미를 설명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해러웨이의 글에서 commonplace는 영한 사전 해석 1번에 나오는 '진부한 말'이라는 뜻이 아니라, 정말 말그대로, common place 공동의 공간, 그래서 맥락에 따라 공유지 혹은 공동의 언어를 의미한다. 때로 부정적인 의미로는 '어떤 무리가 공유하고 있는 편견'정도를 의미하게 된다.

이런 말장난은 책의 뒤에서 "문자로 쓰여지는 언어의 공유지에 울타리가 쳐졌다.  the literary commons were "enclosed""와 같은 식으로 연결된다. 해러웨이가 굳이 "enclosed"에 따옴표를 넣어 강조한 이유는 언어에서도 "엔클로저" 운동이 있었다는 비유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양을 치려고 공유지에 울타리를 쳐서 사람을 쫓아낸 식으로 토지에만 엔클로저의 역사가 있는 줄 알았니? 언어에서도 엔클로저의 역사가 있었어. 17세기에 '저자', '저작권'개념의 등장과 함께 말이지. 이런 재기발랄한 비유이다. 이런 식으로 한 곳에 사용되던 표현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비유의 방식을 통해 문제설정을 새로이 하는 것이 해러웨이의 주된 방법론이라면 방법론이고, 해러웨이의 책 전반에 이런 비유 말놀이가 그득하므로 이런 부분은 의역하기보다는 오히려 되도록 직역해주는 편이 좋지 않을까.
(번역서 160, "문학의 공동사용권이 사유화되고"라고 번역된 부분. 물론 원래 글의 재기발랄한 빛이 싹 사라지고 비유적으로 표현을 옮기는 놀이도 사라져 훨씬 무미건조, 딱딱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이건 그나마 오역은 아니다.)

또, "장소와 공간처럼 시간은 결코 "문자적"이지 않으며, 단지 그 곳에 있을 뿐이다"라는 문장. 시간이 문자적이지 않다니 이건 또 무슨 선문답인가? 여기서 "문자적"으로 번역된 literal 은 컴퓨터에서는 "상수"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이건 영한사전에도 나오는데...). 어차피 "literal"이 '문자적인'(거의 '고지식한' 정도의 뜻)와 '(변치않는) 상수' 둘 다를 의미하는 영어상의 말장난을 한글로 맛을 살려 옮기기는 불가능한 것 같다. 그러니 두 의미중에 좀 더 한국말로 말이 되는 쪽으로 택해야 하는 문제. 또 원작에서 literal과 figural 을 줄곧 대비시키고 있지만 별개의 역주라도 붙이지 않는다면 이 부분에서는 어차피 원문의 언어유희는 이 부분에서는 조금 훼손할 수 밖에 없다.(어차피 민경숙 번역서에서는 이런 대조가 잘 살아나지도 않았다).   
 
어쨌든 그러므로 글의 저 부분은 다시 의역하자면,

"시간을 의미하는 크로노스와 장소를 의미하는 토포스를 합친 조어인 크로노토프는 문자그대로 공간으로서의 시간, 혹은 시간성이 조직되는 장소 topos를 뜻한다. 우리가 흔히 쓰는'토픽topic'이라는 단어는 토포스를 어원으로 하는데, 어원의 유래를 쫓자면 공유되는 공간 commonplace을 의미한다. 다시말해 '토픽'이란 언어를 통해 구성되고 공유되는 장소를 뜻한다. 장소와 공간처럼 시간도  "변치않고 literal" 그냥 거기 있는 것이 아니다. 시간 chronos은 언제나 공간 topos과 서로 역동적으로 얽혀있는데, 바흐친(1981)은 시간성이 조직되는 모양새 figure 를 뜻하는 크로노토프라는 개념을 통해 이런 점에 대해 풍요롭게 이론화하였다."

이 정도가 된다. 그리고 물론, 정식으로 번역한다면 이보다 훨씬 더 풀어서 번역해줄 수 밖에 없는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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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 책의 일부가 오역일 뿐 그럭저럭 읽을만한 책일 거라고 생각하는 대단한 포용력을 가진 분을 위해. 마지막 지적. 앞에 들은 예들이 오역이 어쩌다가 있어서 그 부분만 적어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실은,

멀리 갈 것도 없이 본문의 첫 페이지부터 오역이 줄을 잇는다. 원작을 읽어봤다면 어렵지않게 모든 페이지에서 오역을 찾아낼 수 있음은 물론이고, 한 페이지 가득히 의미불명의 개작이 되어 있는 부분도 숱하다.
38쪽 "닐리는 그 사이보그를 프로그램하는 동료 에이브럼을 돕는데, 노파 말카의 집에서", 원문에서 에이브럼이 사이보그 프로그램하는 것을 돕는 이는 닐리가 아니라 말카다.
완전히 무신경하게도 이단자(37쪽)라고 번역했다가 이교도(39쪽)라고 번역했다가 하는 heretics는 그냥 통일해서 '이단자'라고 번역해야 한다. 이단과 이교는 엄연히 다르다. 심지어 저자 해러웨이가 이 단어가 등장하는 부분에서 각주 4번에 섬세하게 '이단heretics'과 '이교infidels'를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해놓기까지 했다. 당연히 이 각주조차 이해못한 번역자는 각주를 의미불명으로 번역해놓았다.

그리하여, 39쪽 이후 여러페이지에 걸쳐 계속해서 '무신론자들'이라고 번역된 infidels는 이 글에서는 '무슬림'(글에나오는 팔레스타인 여성들을 포함한)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교도'라고 번역되어야 한다. 번역자 덕에 무슬림이 무신론자가 되었다. Alas! 해러웨이가 붙여놓은 각주에서 그걸 설명하고 있는데 번역자는 이해를 못하고 각주까지 엉망으로 번역해놓았음은 물론이다. 별로 문장이나 내용이 어렵지도 않은 편인 이 첫 세 페이지에만도 위에 지적한 것 말고도 가지가지 오역이 있다.
42페이지에서는 아예 한 문장을 빼먹고 번역을 안해버리기까지 했지만 어차피 40 페이지 이후로는 계속해서 모조리 몽땅 통째로 오역이랄 수 있으니 뭐 그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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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하여 '초특유의' 라든지 '화두는 진부한 말이다' 같은, 굳이 영문을 읽지 않아도 어불성설인 말이 잔뜩 담긴 엉터리 책이 '번역서'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것일까. 여기에는 '해러웨이는 워낙 난해하다'라는 소문이 한 몫을 한 듯 하다. 그리고 그 '난해하다'는 소문을 만들어내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은 다름아닌 바로 이 번역자의 먼저번 해러웨이 번역서이다. from~to 용법도 '자주' 틀리는 것을 보면 간단한 동화책도 번역해서는 안 될 듯한 이런 번역자가, 굳이 특히나 난해하다는 해러웨이를 계속 붙잡고 번역해온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무엇보다 역자의 잘못과 책임이 가장 크기는 하지만, 출판사 내지 편집자는, 이 책에 빈번히 등장하는 '초특유의 생물' 같은 류의 해괴한 단어들이, 굳이 영어를 잘하거나 해러웨이 책을 읽어본 바 없더라도, 그냥 상식적인 선에서 봐도,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셨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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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7-12-25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읽어보려는 책들은 언제나 이 모양이더군요.--; 그나마 손을 안댄 걸 다행으로 여겨야겠습니다...

이온 2008-01-27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서점에서 번역본을 본 뒤 살까말까 너무 고민하다가 안 샀는데, 안 사길 잘했네요! 도서관에서 빌려봐야겠습니다. 꼼꼼한 지적 감사합니다.^^;

todamo20 2008-07-04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이 번역자가 번역한 다른 해러웨이 책들도 엉망... 님같은 분들의 꼼꼼한 지적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