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가와 이에야스 인간경영 - 개정판
도몬 후유지 지음, 이정환 옮김 / 작가정신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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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천성적으로 옛날 현자들의 가르침을 수용할수 있는 성격을 타고났고 거기에 눈칫밥 얻어먹던 고독한 어린시절도 한몫해 성공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한것 같다.

이 책은 그런 도쿠가와가 어떤 처세술로 일본을 얻었는지 분석하는데 현대 기업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용한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자기개발에 실패하면 탈락한다는 얘긴 현대사회에만 적용되는게 아니다. 도쿠가와는 충직하지만 구세대적 사고방식에 얶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한 제거하고 반대로 자기를 배신했더라도 능력있는 부하는 우대했다.

또한 다음 말을 분석해보자. ‘무공을 세우는 일보다 더 어려운 것이 주군에게 진언하는 일이다’ 쉽게 말해 능력보다 언어소통이 더 어렵단 거다. 이 얼마나 핵심을 찌르는 말인가? 이는 비단 아시아 국가 뿐만이 아니라 위아래의 교류가 더 오픈되어있다고 알려져 있는 서양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캐나다에 와 박사학위를 공부하며 일종의 탁아소같은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언니가 얼마전 들려준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한국에서 대기업에 다녔던지라 한국 조직사회의 속사정에도 밝은 언닌 일대일로 만난 탁아소의 매니저가 비판이라도 상관없으니 탁아소 시설에 관한 의견을 얘기해보라고 하길래 여긴 한국이랑 다르구나 감동한채(?) 비평을 쫙 늘어놓았단다. 그 순간 매니저의 얼굴표정이 싹 변하는걸 보고 자신의 실수를 깨닫은 언닌 그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엄청 노력했다고. 그러면서 나보고 하는말이 동양이든 서양이든 사회 처세술은 다 똑같다는걸 가르쳐준 그 매니저가 미치도록 고맙단다.

또한 도쿠가와는 여론에 따라 처신했는데 이는 현대의 민주주의적 의도와는 달리 오직 도쿠가와 정권의 유지를 위해서였다. 동기야 불순하든 어떻든 그는 힘이 어떻게 유지되는지를 알았던 것이다. 근대까지도 수많은 독재자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여론을 탄압하다 결국 추락한데 비하면 얼마나 앞선 생각인가? 이 책이 일본의 경영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끈건 알곤 있지만 망각하기 쉬운 진리를 상기시켜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결국 진리는 세월에 따라 형태만 바꿀뿐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은 몇백년 전 인물의 인간경영법에 대해서임에도 불구하고 현대 직장인들에게 쓸모가 있는지도 모른다.

독자들의 지적대로 중반부에선 작가의 상상력이 과해 아예 인물들의 속마음까지 꿰차고 사건의 동기를 사적인 이유에서 찾음으로서 객관성을 잃지만 이런건 그냥 넘기고 사실적인 것만 봤다. 어차피 이 책은 제목도 밝히듯 도쿠가와의 전기가 아닌 그의 도쿠가와 재단경영법에 관한 책이고 초반부는 거기에 부응하니까. 단순무식한 난 책을 읽고 난후 재밌다, 감동적이다라는 식으로밖에 생각 못하다 의문이나 불만을 제기하는 서평을 읽으면 ‘어떻게 저런 차원의 생각을 할수 있었을까?’ 감탄을 마지 않지만 어차피 난 그런 날카로운 통찰력은 없으니 내 식대로 읽을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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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오의 딸 데이바 소벨 컬렉션
데이바 소벨 지음, 홍현숙 옮김 / 생각의나무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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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내게 벅찼다. 위대한 과학자의 일생을 다룬 책이니만큼 빠질수 없는 과학적인 이론도 그 시대의 사회적 편견과 종교적인 시스템도 이질적인 것들이라 이해하기 힘들었다. 머리속에 둥둥 떠 다니는 책속의 지식중 몇개만이라도 붙잡아 온건히 내것으로 만들수 있으면 좋으련만.

갈릴레오가 살던 시대의 이탤리는 아직 사회 전면에 걸쳐 교회의 권력이 절대적이었다. 신교를 신봉하는 유럽의 국가들은 학문의 자유를 인정했지만 이탤리에선 지구가 태양을 둘례를 돈다고 주장했단 이유만으로 화형당할수 있는 그런 시대였다. 갈릴레오 자신도 독실한 카톡릭 신자였고 자연의 법칙을 과학적으로 해석하는게 하나님의 권한에 도전하는 행위가 아닌 인간에게 허락된 영역내라는 독자적인 믿음아래 연구에 매진했다.

결국 저서 <대화>로 인해 종교재판에서 이단판결을 받음에 따라 공식적으로 지동성을 부인하고 자신의 오만함을 회개했지만 죽을때까지 자신의 결백을 믿었다. 내가 갈릴레오를 천재로 여기는건 이점 때문이다. 의견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장려하는 현대사회와는 달리 어릴때부터 맹신에 길들여져 자유로운 사고를 저당잡힌 그런 시대에 과연 몇할의 사람들이 다른 차원의 사고를 가질수 있었을까. 천재와 범인의 차이는 기존 관념을 뛰어넘는 주관적이고 창조적인 사고인지도 모른다.

책 자체를 평하자면 <갈릴레오의 딸>은 본래 목적과 동떨어진 깨닫음을 유도하는 모순성을 지니고 있다. 자연의 모든 현상을 수학적으로 분석해야 한다고 주장한 기하학의 아버지 갈릴레오였지만 당시의 과학은 상당히 주관적이었다는 느낌이 든다. 단순한 형식상의 문제일지 모르지만 갈릴레오는 다수의 책을 대화채로 썼을뿐 아니라 철학적인 비유에 능해 이를 과학적 이해를 돕는데 자주 사용했다. 그 시대의 과학자들은 모여 논쟁하길 즐겼으며 갈릴레오 또한 달변으로 인기 높았다니 정반대라 생각했던 과학과 철학이 사실은 한 맥락이 아닌지 의문스럽다.

또한 <갈릴레오의 딸>이란 제목에도 불구하고 일상생활속의 애환으로 가득찬 마리아 셀레스트의 편지는 시간적 진행외의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하고, 갈릴레오의 과학적 업적과 마리아 셀레스트의 편지는 서로 조화되지 못한채 평행을 유지하다 끝에 가서 두사람이 한 무덤에 합장되는걸로 억지스럽게 일단락지어져 버린다. 갈릴레오와 그의 딸을 연결해주는건 책의 제목이 아니라 두 사람의 본질적인 유사성, 즉 아버지로부터 딸로 물림된 이성적인 분별력이 아닐까. 맹신속에서 과학적 진실을 추구했던 아버지 갈릴레오처럼 마리아 셀레스트도 수녀원이란 울타리속에 차단되어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신앙심과 상식사이의 균형를 잃지 않았으니까.

위와 같은 결점에도 불구하고 <갈릴레오의 딸>은 갈릴레오란 인물과 그의 배경 그리고 그의 과학적 업적을 흡수하기에 좋은 자료다. 몇번이나 더 읽어야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할수 있을진 모르지만 수박 겉할기 식이든 말든 한 시대의 사상과 한 위대한 과학자의 일생에 대해 알게 된것외에 내 관심밖이던 우주의 구조와 과학적 상식에 흥미가 생긴것만으로도 유용한 책임이 틀림없다. 한번 읽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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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몽 1
미우라 노리코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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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몽’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채 이해의 조각들을 맞추면 여교주가 내다 본 지구의 미래는 멸망인데 비스트란 신인류의 탄생을 주도함으로 예지된 미래를 조작하고 그러기 위해 주인공들을 제물 삼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프리,’ ‘리턴,’ ‘키라이’등 작가의 다른 작품은 사람들의 관계에 촛점을 맞추는 반면 ‘녹몽’은 만물의 영장인 인간들의 관계보다 내면에 깔려있는 자연보호라는 주제에 더 큰 비중을 둔다. 물론 남녀주인공들의 사무치는 사랑과 이별, 그리고 아픔을 그리지만 결국 그들의 사랑도 위대한 자연을 위해 냉큼 희생시켜 버리니까. 대자연과 인간간의 종속관계를 보여주는 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후카이도 태생인 미우라 노리코의 작품속엔 어김없이 동물이 등장하는데 작가의 동물, 크게는 자연사랑을 엿볼수 있는 대목이다. 평소 밝고 유쾌한 만화을 주로 그리는 작가가 ‘녹몽’처럼 심각한 내용을 다룬것을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이 작품이야말로 작가의 견해가 가장 잘 표현된 작품일지도 모른다

내가 원치 않는 마무리임에도 불구하고 미우라 노리코는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말 정말 재밌게 읽었다. 경쾌한 학원물, ‘녹몽’처럼 심각한 SF, 다소 강도짙은 연애물 ‘키라이’, 어떤 종류의 작품도 그 특유의 시원시원한 전개로 풀어나가는 노리코 미우라를 보면 재능은 타고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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赤淚 1
김대원 그림, 강주현 글 / 시공사(만화)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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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추천을 받아 덜컥 구입했는데 처음엔 한 마디로 기대 이하였습니다. 지저분한 그림체도 상투적인 내용도. 얘가 내 수준을 뭘로보다 싶어 '너 일부로 문안한 작품으로 추천한거지'하고 추긍했더니 '아냐, 재밌단 말야. 아직 미숙해 보이는 그림체가 그 작가의 매력이란 말야'라고 정색을 하더군요.

친구의 안목을 믿다기 보단 순전히 귀가 얇아 음미하며 보기 시작했는데 과연 친구가 한 말의 뜻을 알것 같기도 했습니다. 여전히 저 취향과는 거리가 멀지만 거칠고 난해해 보이는 그림체가 역시 난해한 감이 있는 스토리에는 적격인것도 같았고 또 원수집안 아들딸의 사랑, 남장여인등 흔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감정의 동요가 있었으니 실없는 작품은 아닌듯 합니다

또 처음엔 동양의 어딘지 배경을 확실히 밝히지 않는게 못마땅했는데 그렇게 외적요소를 배제함으로서 인물들의 감정을 부각시켰죠.

<적루>는 저가 썩 아끼는 작품은 아니며 개인적으로 과대평가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이따금씩 생각날때 다시 볼 맘도 생기는 괜찮은 신파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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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의 여인들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7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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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위인전을 무척 좋아하지만 냉소적인 성격이라 그런지 작가의 상상력이(?) 많이 발휘된 책은 피하는 편입니다. 너무 딱딱하고 개관적으로만 쓰여진 책도 싫지만. '르네상스의 여인들'은 곡절많은 여인들의 일생을 사실에 충실하면서도 소설투로 흥미진진하게 풀어 나갑니다. 이사벨라 데스트, 루크레쟈 보르쟈, 카테리나 스포르쟈등 항상 더 자세히 알고 싶었던 이들의 일생을 이 책을 통해 접할수 있어서 기뻤고 인물과 역사에 대한 작가의 애정과 그녀의 뛰어난 통찰력에 내심 감탄했습니다.

같은 시대를 살았어도 많이 달랐던 네명의 르네상스 여인들을 보며 역시 타고난 성격이란게 있구나 새삼 깨닫았습니다.

중간계급의 귀족집안에 태어나고 시집가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자기자신 개발에 매달린 이사벨라. 타고난 영민함으로 르네상스 시대 특유의 예측불허의 정치/외교의 무대에서 자신과 가문을 지켜내고 최고의 지성으로서 인정받았던 이 여자에게선 강인한 어머니상과 운명적인 영광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반대로 교황의 딸이자 이사벨라의 올케이기도 한 루크레지아 보르쟈는 번번히 아버지와 오빠의 야심의 희생물이 되어야 했으면서도 순순히 운명을 받아들였습니다. 결코 정숙하지도 지적이지도 않았지만 타고난 아름다움과 순한 심성으로 남편의 사랑을 받은 특권층 출신 여인의 행운과 불행을 둘다 보여주는 여인이였습니다.

그리고 미모와 정열, 독함과 배짱을 겸비한 시대의 여장부 카테리나 스포르쟈. 이기적이고 속물적이고 여러명의 남자들과 정렬적으로 사랑하고 시대의 풍운아 체쟈레 보르쟈와 맞대결까지 불사할정도로 무분별하고 드셌던 이 여인에게선 현대여성과 유사성을 발견할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정략결혼에 의해 키프러스의 왕비가 되었다 일년도 못되어 남편과 아들을 잃고 키프러스를 둘러싼 외국의 암투속에서 명목상의 왕비자릴 유지하다 결국 나라를 모국 베니스에 인계하고 다시 베니스로 돌아가 나름대로 불만없는 일생을 살다 간 카테리나 코르도바. 무심하고 낙천적인듯한(?) 그녀의 성격이 그녀의 인생엔 오히려 다행이었겠다 싶으면서도 어째 루크레치아처럼 연애도 못했던걸까 경멸감도 드는군요 ^^;;

역사적인 지식습득면에서도 재미면에서도 우수한 '르네상스의 여인들' 한번쯤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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