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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달 작은달 달력의 비밀 ㅣ 저학년 공부그림책
이케가미 준이치 글, 세키구치 요시미 그림, 이수경 옮김 / 한솔수북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1. 서평단 발표가 한 달이 되어 간다. 나는 이제야 서평을 쓴다. 할 말이 없다. 이 걸 쓰고 나면 가슴이 좀 뚫릴까? 가벼워지겠지! 숙제 하나를 마치는 거니까. 미안해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고, 죄송해하면서 쓴다.
2. 나는 종이와 연필, 색연필이 좋다. 지금도 공책을 반 접어 수학문제 푸는 게 좋다. 샤프말고 연필로. 연필심이 닳는 것을 즐기고, 칼로 혹은 연필깍기로 깍아가면서 사각사각 슥슥슥 소리에 희열을 느낀다. 이 늦은 나이에 입에 달고 살았던 ‘문장을 식으로’에 재미가 들려 중2 아들보다 수학공부를 더 열심히 한다. 아! 지금의 아들은 수학 팽개쳤다. 어찟던 내게 생긴 바람 하나-이대로 가면서 미적분을 정말 내 힘으로 풀기.
내 이야긴 시작부터 삼천포다. 그런데, 그림책 시작은 색연필에 ‘저학년공부그림책’이란다. 애 키우는 엄마들의 열망과 로망-그림책을 보면서 공부를 한다(이 때의 공부는 교과학습의 의미일 것이다)! 평소에 교육 운운하는 많은 이들이 혀를 끌끌 찰 그림책이다. 세상에 그림책에 ‘공부’를 붙이다니 하며 한탄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그러나, 침이 튀어나오기 전에 나는 이미 녹아 있다. 에이~ 연필을 들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달력도 있다. 거기다, 서평단 모집 때 ‘따뜻한 그림’이라는 표현을 봤던 기억이 있다. 그림이 이쁘다. 그래서 ‘공부’도 본래의 의미로 해석해 버린다. ‘세상을 배우는 노력, 앎의 행위, 삶의 여정에서 갖는 호기심에서 비롯된 의문을 해결하며 세계를 넓히고 나를 키우는 일, 그래서 평생해야 하는 기쁜 숙제’.
이렇게 시작해 매일 속에서 ‘책’을 통해 사람들의 약속과 천체의 움직임과 우주의 비밀까지 알아 가면서 클 수 있다면 하는 허황된 꿈을 꾸어본다.
3. 앞표지를 펼쳐 한참을 들여다 봤다. 비록 일본 집이지만 개집과 울타리, 빨랫줄과 작은 화분, 놀이터의 아이들과 담장위의 고양이까지. 아기자기한 동네의 그림. 장를 넘겨 속표지를 보고선 다시 앞으로 가서 이삿짐트럭을 확인했다.
‘유나네 가족은 오늘 새집으로 이사를 왔습니다.’-하야시 아키코였다. ‘우리 친구하자’를 떠올리게 하는 시작과 그림. 그녀보다는 더 짙은 잔선들을 쓰고 있지만, 자꾸 겹쳐보이는 그림들. 순이와 유나... 꽃도 피어있고 초록도 짙은데 새로 이사간 동네는 좀 쌀랑한가? 옷이 두툼해 보인다. 나비 그림이 심상치 않다.
엄마가 유나방으로 달력을 들고 오셨다. ‘똑똑 카이사르 달력’이란다. 역시 범상치 않은 제목의 달력이다. 억! ‘제주밀감’이 달고 맛있단다. 그림책은 ‘간접광고’와는 무관한가보다. 그렇다면 기업들은 드라마제작 뿐만 아니라 그림책 출판에도 눈독을 들여야 한다.
유나는 ‘학교가는 날’부터 표시하는 구나. 아! 4월이구나. 그렇지, 그 정도면 좀 쌀쌀할 수 있지. 서평단 모집 미션이 여기서 나왔구나! 달력에 표시하고 싶은 날. 음. 아이와 다르게 나는 새 달력을 받으면 아이들의 학사일정을 먼저 표시한다. 내게 확정된 스케줄과 함께.
장을 넘기니 유나의 얼굴이 먼저 내 눈을 잡는다. 예쁘장한데 장난기가 남실거리는 눈동자! 유나가 들여다 보는 이는 표지에 나왔던 고대 귀족이다. ‘카이사르’였다. 이 사람, 달력에서 튀어나왔다! ‘똑똑 카이사르 달력’이란 제목이 이해된다. 가만, 유나가 똑똑하고 달력을 두드렸던가? 아고, 아니나다를까 유나왈, 카이사르를 ‘카스테라’라고 한다. ㅋㅋ.
달력에 학교가는 날과 식구들의 생일을 표시하던 유나는 2월이 짧은 걸 발견하고 궁금해 한다. 유나의 궁금증은 카이사를 깨어나게 하고 ‘큰달 작은달 달력의 비밀’이라는 ‘저학년공부그림책’의 목적 달성을 위한 내용을 본격적으로 다룬다. 일곱시쯤 되어 보이는 시간이지만 불을 끈 방은 어둡다. 짜짠! 그래서 지구의와 불빛이란 간단한 도구로 세상이 돌아가는 자연 이치를 보여줄 수 있다. 지구가 자전하는 하루로부터 지동설과 천동설, 달과 태음력, 달력의 유래, 지구의 공전주기인 대략 1년, 태양력과 사계절, 멋대로 아들과 들쑥날쑥 매달 날수가 다른 이유, 윤달, 율리우스에서 온 7월명 July의 유래 등을 알려준다. 마지막으로 카이사르의 명언들 중 하나 ‘알레아 약타 에스트’도 던져주며 ‘카이사르 아저씨는 달력 속으로 쓱 사라’진다. 유나는 은하수가 흐르는 7월 위에 카이사르의 얼굴을 그린다. 역시 그림 솜씨가 남다르다. 9시, 잠자리에서 엄마와 <달력의 비밀>을 보는 유나를 달력 뒤 카이사르는 기특한 얼굴로 내다보며 이 책은 끝난다.
별빛으로 가득해-솔직히 가득까지는 아니다-지는 유나 방이란 우주에서 유나는 앎의 기쁨을 만난다. 고개를 갸웃하던 궁금 소녀 유나는 지구의를 살피면서 호기심 어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드디어는 고개를 끄덕인다. 거울을 통해 보여준 유나의 얼굴은 빛이 반사되어서도 그렇겠지만, 환하다. ‘이번에는 달에 대해 알아볼까’하는 지식의 확장 순간에는 ‘뭘까’싶은 눈으로 카이사르에 집중한다. 유나의 장난 뒤임에도 진지한 카이사르의 말에 따라 지구의 공전을 자신의 몸으로 해보이던 순간의 유나는 거대한 우주 속의 법칙!을 깨닫고 놀라움에 가득찬 얼굴이다. 2월의 특별함에 자신의 탄생이란 더 특별함을 붙인 유나는 자랑스럽고 으쓱한 특별한 얼굴이었고, 역사 속의 인물 카이사르를 인식하는 순간의 유나는 경이로움과 존경스러움을 담고 있는 얼굴이었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달력에 카이사르 얼굴을 그려넣는 유나는 학교에 갈 어린 아이가 잠잘 준비를 하는 평범하고 행복한 얼굴이다.
책 말미에는 달력의 종류, 달력에 관해 궁금해 할 만한 다섯 가지를 뽑아 그림과 함께 설명해두고 있다. 달은 왜 매일 달라보이나요?/시간을 나누는 단위/달력이 권력과 관계가 있다고요?/왜 음력설 양력설이 따로 있나요?/‘절기’가 뭐예요?
이 책은 ‘응, 그건 그냥 사람들이 약속한 거야’라며 날짜와 관계된 곤란한 질문들에 답하며 얼버무렸던 바를 만회할 거리를 준다. 그리고 저학년 뿐만 아니라 어른인 나도 잘 모르는 걸 쉽게 설명해 준다. 이 설명은 어른들이 보고 아이들에게 설명해 주면 좋을 참고자료라고 보는 쪽이 더 정확하다.
나에겐 달력의 비밀보다는 꿀처럼 달고 달처럼 환해지는 ‘지식’을 다루는 매개로서의 그림책으로 왔다. 그래서 젯밥-예를 들면, 멋진 카이사를를 탁자에 대롱대롱 메달리게 만드는 유나의 장난!-에 눈이 잡혀 즐거워했다.
근데, 원본에도 ‘아시아에 있는 한국과 일본은 1800년대 후반부터 태양력을 쓰기 시작했어’라고 되어 있는지 궁금하다. 저, ‘한국과’가 정말 들어있는지.... 나쁜 호기심.
덧붙여. 꾸준히 수북책을 받아 온 딸래미 왈, '엄마! 나비가 그려져 있으면 한솔수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