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6.14. 그럼에도 불구하고 / 공지영, 2020. 위즈덤하우스
어느 병원에서도 딱히 나를 치료해내지 못했다.그렇게 의사들을 찾아 병원들을 돌다가 스위스 대체 요법으로 진료하시는 분을 소개받았는데 그분이 내 팔에서 직접 피를 뽑으셨다. 무심히 그분이 뽑는 피를 보고 있었는데 내 왼쪽 정맥에서 검은 피가 쏟아져 나왔다. 그때 피를 뽑다 말고 그분이 움찔하셨다. 의사가 놀라는 것도 놀라왔지만 그 피의 색을 보고 나도 놀랐다. 검은 피...... 가끔 체했을 때 엄지손가락을 따면 나오던 그렇게 검은 피. 검은 피는 경고였다. 설사 현재 신장 수치가 정상 범위에있다고 해도 곧 신장이 망가질 것이라는 경고를 들었다. "어떻게 하면 되나요?" 내가 묻자 의사가 대답했다. "마음을 편히 가지세요." 나는 웃었다. "아 그렇군요. 그런데 어떻게 하면 마음이 편해질 수 있나요? 그런 약이 있나요? 선생님." 내가 비꼬며 말하자, 의사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본인 생각에 고통은 내부의 것인가요? 외부의 것인가요?"
나는 비명을 지르듯이 대답했다. "저는 잘못이 없어요. 모든 것이 외부로부터 왔어요." 당연하지. 난 착하고 올바른데 세상이 악하고 내게 못되게 굴었던 것이었으니까. 그때까지 나는 그랬다. 그러자 의사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그러면 돌파하세요. 그러지 않으면... 정말 큰일납니다." 내가 다시 물었다. "돌파를...... 하라구요?" "네, 돌파. 밀고 넘어가 버리세요." - P8
"그래서, 라고 하지 말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고." - P11
그때나 지금이나 글은 써지는 것이 아니다. 글은 쓰는 것이다. - P23
"신기했어. 상황은 하나도 바뀌지 않는데 모든 것이 바뀌었어." " 살아보니 세상에 나쁘기만 한 일은 없어. 어차피 100퍼센트 좋은 일은 없어. 100퍼센트 좋기만 하다면 거짓일 확률이 많아. 모든 일에 있는 좋은 일과 나쁜 일은 마치 하루 동안 밤과 낮이 있는 듯이 있는 거야. 하지만 결국엔 말이야 둘 다 나쁘지는 않아. 다만 생각을 조금 바꾸면 좋지." - P42
누군가 내게 나직이 말하는 것 같았다. "솔직해지자. 네가 원하는 것은 어쩌면 그냥 남을 탓하고 마치 인생 전체를 바친 희생자의 좌석에 앉아 누군가 네게 구호품 같은 행운 꾸러미를 던져주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것의 속물적 현현인 로또 같은 것도 있지." - P47
그렇게 몇 년이 지난 후, 정말이지 수백 권의 책을 읽고 나서 나는 모든 훌륭한 분들의 행복해지는 비결이 아주 단순한 몇 가지 단어들로 수렴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이런 것들이었다. 지금 여기 그리고 나 자신 기억해 두기 바란다, 이 세 단어를.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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