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과 유진 푸른도서관 9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04년 6월
평점 :
절판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작은유진이 듣고싶었던 것은 그저 이 한마디 말이었을 것입니다.

 

 초등학교에 근무하던 시절에 심심치 않게 대출되어가던 노란 하드커버의 작은 책이 있었습니다. 밝은 노랑의 책은 아이들의 손때를 타서 조금씩 더러워지고, 낡아지고, 너덜너덜 해 져 갔습니다. 그  때의 나는 나의 정신을 빼앗는 다른 여러가지 사정때문에 선뜻 그 책의 책장을 넘겨 볼 생각을 하지 못했었습니다. 학부모로부터 대강의 줄거리를 전해듣고는 여느때와 같이 '언젠간 읽어봐야지'라고 독서 예정도서로 마음 한 켠에 기약없이 쌓아두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에서 이 책을 다시 접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선생님께서 독서토론 연수때 이 책을 읽어가야 하니 주문해 달라고 부탁했던 것입니다. 책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기에 나는 아무 망설임 없이 이 책을 주문도서 목록에 넣었습니다. 책은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고 다시 내게 왔고, 마침 시험기간이라 한가하던 차여서 나는 단숨에 이 책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우연히 같은 반이 된 두 유진. 하지만 '작은유진'이라 불리는 소녀는 '큰 유진'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큰 유진과 함께했던 유치원 시절의 기억이 작은유진에겐 없었습니다. 큰 유진에게도 그 때의 기억은 서랍 속 깊은 곳에 숨겨둔 낡은 사진처럼 여태까지의 일상에서는 굳이 꺼낼 필요 없었던 불쾌한 기억이었습니다. 하지만 큰 유진에게는 분명 그 때의 기억이 남아있었고, 작은 유진과 부딪치면서 그 때의 기억을 하나 둘 회상합니다. 그리고 작은 유진 또한 지금까지 어디에 둔 지도 모르고 있었던 잃어버린 기억을 큰 유진과 함께 하나씩 찾아갑니다. 두 아이는 어릴 때 유치원 원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책은 큰 유진으로부터 시작하여 챕터별로 큰 유진과 작은 유진의 시선으로 번갈아 서술됩니다. 상처를 기억하지만 상처를 딛고 밝고 쾌활하게 생활하는 큰 유진의 시선. 반면 그 때의 기억을 잊었음에도 어둠고 움울한 작은 유진의 시선은 문체에서도 대조적으로 드러나 큰 유진과 작은 유진의 감정에 번갈아 몰입할 수 있게 됩니다.

 상처를 덮어두었던 작은 유진의 상처는 결국 곪아 터져 큰 혼란을 불러왔고, 상처를 잘 아물게 두었던 큰 유진의 상처는 굳게 옹이져 큰 유진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나는 최근, 상처에 대해, 그리고 상처의 치유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론내린 나의 견해는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와 일치했습니다. 상처는 덮어둔다고 잊혀지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유진은 자신에게 그런 상처가 있는지조차 모르고 지냈지만 결국 그 상처는 안에서부터 곪아서 작은 유진을 더욱 망치고 있었습니다. 상처를 적극적으로 대면하고, 아파해 보아야 햇빛도 쬐어 줄 수 있고, 치료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상처의 크기에 따라 흉터가 생길수도 있겠지만, 그 흉터를 수치로 여길지 훈장으로 여길지는 전적으로 본인에게 달린 일이라고, 책에서도 작은 유진의 주변사람의 입을 통해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최근에 '기억의 상실'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볼 기회도 있었습니다. 자신의 일임에도 마치 자신의 일이 아닌 양 어떤 것도 기억해 내지 못하는 작은 유진. 책은 소설가를 지망하는 큰 유진의 친구를 통해 작은 유진의 아픔을 극대화 시켜 보여줍니다. 가상의 일을 쓴 소설을 잃은 것만으로도 그렇게나 괴로운데, 자신이 겪은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유진의 아픔은 얼마나 클까. 더군다나 그 기억을 잃어야 했던 이유가 본인의 선택이 아니었다면- 누구나 하나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을 안고 살아가겠지만, 그래도 잊는 것보다는 기억하는 편이- 그래서 그 기억을 딛고 일어서는 편이 좋다는 것을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구성과 주제의식이 탄탄하여 어른이 읽기에도 손상 없는 책입니다만 이 책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성장소설입니다. 청소년 소설이 부재한 우리나라의 출판 현실에 이런 책이 있다는 것이 반가울 뿐입니다. 앞으로 이런 책이 많이 출간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작성일 : 2007.7.3. 

작성자 : saseosa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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