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 - 2009년 제33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김연수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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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연수 씨의 글이라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반은 먹고 들어가는데,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이라는 제목조차도 어찌나 나의 취향인것인지.
  코끼리가 있다. 가슴을 짓누르고 있는 코끼리가 말이다. 그의 코끼리는 자신이 가늠할 수 없었던 외로움 속에 갇혀 있던 그녀이며, 그녀를 잃은 그의 상실감이었다. 
  걷는다 는 행위 자체가 주는 위로를 아는 뚜벅이라면, 두 뺨에 엉기는 공기와 풍경을 만끽할 수 있는 이라면 당신은 산책의 다섯 가지 즐거움을 모두 아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다시 걷고 싶어졌다. 화가 나 씩씩거리며 울며 걸었던, 이른 새벽 누군가의 손을 잡고 탄천길을 따라 우리집까지 걸어왔던 그 길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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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른 틈새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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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타인의 발음을 통해서만 귀에 익은 내 이름을 직접 내 입으로 말하고 소개하는 것은 낯설고 계면쩍은 경험이었다. '자기소개'는 인생의 새로운 단계, 새로운 세계로의 진입을 암시했다. 다들 자연스럽게 나를 알고 있으려니 하는 유년의 수동성을 넘어 당당히 내가 바로 아무개라고 자기를 주장해야 하는 세계, 서로의 존재를 매번 정겨운 방식으로 일깨우는 공동체가 아니라 각지고 독립된 개체의 삶을 책임져야 하는 사회, 그런 어른들의 세계로 진입하기 위해 우리는 자기소개를 해야 했다. 자기소개라는 절차는 일종의 폭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소개자는 자기 이름을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명료히 발음해야 했고, 듣는 청증은 소개자가 임의로 요약한 그 혹은 그녀의 존재성을 강제로 받아들여야했다. 자기소개는 소극적인 자들이 도태되고 적극적이고 용감한 자들만이 살아남는 세계로의 입사식이었다. 불리기를 기다려서는 안 되고 어떻게든 적극적으로 부르심을 유도하는 방식, 다른 사람들이 자기 이름을 한시바삐 소비하도록 이름을 세일하는 방식이었다. "(22~23쪽)
 

"될 수 있는 한 양껏 모든 일반명사가 되고자 하는 내 욕망은, 허무를 견디기위한 혹은 허무를 견디지 못하는 백과사전적 발버둥이다. 나는 내 꿈의 문법을 원하기도 하고 거부하기도 한다. 나는 양(量)에 들려있다. 나는 내 꿈이고, 내 과거이고, 내 현재이고, 내 모든 것이 되고자한다. 그러나 정작 그 와중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은 고유한 내 자신이다. 혹시 내게 고유한 것이 있기나 했다면. 설혹 없었다면 그 고유한 없음조차도 이 와중에 흔적 없이 사라진다. 나는 '내 모든 것'이 되고자 하지만 남은 것은 '내'가 떨어져나간 것, 즉 아무것도 아닌 '모든 것'일 뿐이다.

  곰보유리문이 희뿌옇게 밝아오는 새벽, 젖은 방에는 닥치는 대로 짓이겨진 이름들만이 가득하다."(152~153쪽)

 

"나는 방문을 열고 마루로 나갔다. 마루에는 아버지가 채워놓은 씁쓸한 담배연기가 자욱했다. 남자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크고 분명하게 울렸다. 아나운서는 끝 어절을 약간 높여 뒤에 따라오는 어절들에 은근히 의미를 유착시키려는 교묘하게 훈련된 억양을 구사하고 있었다. 저런 목소리의 남자가 주정하는 걸 듣는다면 무척 역겨울까 어떨까, 나는 의미 없이 생각했다. "(160~161쪽)

 

"이야기는 자신의 상처만을 곰곰이 들여다보고 있는 불행한 인간을 임시로 치유하는 장치이다. 그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고, 내 과거의 불행도 그다지 엄청난 것은 아니로군, 암, 그렇지 그렇고 말고, 끄덕이는 순간에 불행했던 왕은 자신의 불행을 이야기 속의 한 불행으로 환치하고는 거리를 두고 그 불행을 바라보는 것이다." (173쪽)

 

"치킨수프를 한술 뜨면서 나는 가난한 부부처럼 냄비를 믿기로 했다. 말을 할 수 있다면 아마 그 밖의 다른 것들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설령 모든 것이 한층 더 나빠진다 하더라도 나는 말을 믿고, 기억을 믿고, 그 밖의 다른 것들을 믿을 것이다. 닫히지 않는 이야기, 닫히지 않은 믿음, 닫히지 않은 시간은 아름답다. 영원히 끝나지 않는 미완의『아라비안나이트』처럼, 북극을 넘어 경계를 넘어 스스로 공간을 열며 뛰어가는 냄비처럼, 상처로 열린 우리의 몸처럼, 기억의 빛살이 그 틈새, 그 푸르른 틈새를 비출 때 비소소 의미의 날개를 달고 찬란히 비상하는 우리의 현재처럼……" (280~281쪽)

 

*

 

  읽는 내내 키득키득, 음흉하게 웃었다. 다른 사람에게 들킬까봐 잔뜩 숨을 죽이고 웃는 내 모습은, 밤 늦게 방 안에서 혼자 야한 비디오를 보는 사춘기 소년·소녀의 모습과 비슷했다. 

  신경숙은 섬세한 감정을 말도 안되게 사소한 것에서 시작해서 감성을 건드린다면 권여선은 직설적으로, 하지만 모든 것을 다 담아서 적나라하게 말해서 부끄러울 정도였다.

  솔직한 감성을 있는 그대로 적는 것, 이것이 권여선의 글이 아닐까. 이런 여성적인 책을 신강사님이 추천했다는 것만으로도 괜히 난 즐겁다. (신강사님♥)

  그녀의 글을 양껏 느낄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 아주 많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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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이 고인다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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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은 2년 정도 다녔다. 그사이 나는 바이엘 두 권을 떼고, 체르니와 하농에 입문했다. 체르니란 말은 이국에서 불어오는 바람 같아서, 돼지비계나 단무지란 말과는 다른 울림을 주었다. 나는 체르니를 배우고 싶기보단 체르니란 말이 갖고 싶었다. " (15쪽)
 

  "열차는 눈먼 물고기처럼 인천을 빠져나와 북쪽으로 달려갔다. 나는 노선도를 올려다보며 역사(驛舍)의 수를 꼽아보았다. 인천에서 의정부까지 50여 개의 역이 있고, 영등포와 신길, 종로를 지나면 서울 북쪽 어딘가에 내 방이 있다. 노선표의 불빛이 깜빡거렸다. 자그마한 플라스틱 전구 위로 종착역까지는 녹색 불이, 이미 지나간 역 위로는 빨간 불이 켜졌다. 도시의 이름을 가진 점과 그 사이를 잇는 직선. 나는 그것이 카시오페이아나 페르세우스, 안드로메다라 불리는 이국 말로 된 성좌처럼 어렵고 낯설었다. 내가 모르는 도시의 별자리. 서울의 손금. 서울에 온 지 7년이 다 돼가는데, 그중에는 내가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동네가 많다. 땅속에서 바람을 맞으며 방송을 들을 때마다 나는 구파발에도, 수색에도 한번 가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한 것은 서울의 크키가 컸던 탓이 아니라, 내 삶의 크기가 작았던 탓이리라. 하지만 모든 별자리에 깃든 이야기처럼, 그 이름처럼, 내 좁은 동선 안에도――나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118쪽)

 

  "오랫동안 나는 그런 곳에 가본 적이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살았다. 그러다 어느 날, 내가 그렇게 힘들게 찾아간 곳이, 애쓰며 보고자 했던 곳이, 고작 어느 작은 방, 어두운 '빈방'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기 꼭대기에 떠 있는 빈 곳. 사각의 텅 빔을 찾아 그렇게 길고 굽이진 길을 헤매 올라갔구나 하고. 나는 그 '네모난 부재'가 지금도 섬처럼 떠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곤 한다. 혹은 내 머리 위를 따라다니며 먹지처럼 출렁이고 있지 않을까 하고. 셋방에서 때가 되면 터진 곤 하던 펑―― 소리. 그 깜짝 놀랄 만큼 맛있는 소리 역시 거기서 아직 저 혼자만 살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고 보니 문득 펑――이라는 말은 뻥――이라는 말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바람 '풍(風)'들이, 골목 같은 내 핏속을 돌아다니다 어느 순간 툭―― 하고 들어가 또 다른 말을 튀우는 소리처럼 말이다. 그러니 어쩌면 나는―― 사라진 말과 사라진 기억, 끝끝내 알 수 없거나 애초에 가져본 적 없는 장면, 그러면서도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것같이 느껴지는 풍경과 함께, 무언가 실종된 것들 사이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먹고 자란 것을 아니었을까."(219~220쪽)

 

*

 

  이미 운명을 달리한 이들이 아닌, 지금을 살고 있는 이들과 감성을 나누는 독서란 이렇게 행복할 수 있구나. 내가 타고, 걷고 있던 도시의 지하철과 꾸불꾸불 골목길 사이로 김애란의 이야기가 있다.

  2호선을 타고가다 한강을 볼때마다 마음이 환해져 늘 웃는, 경기도민적인(유난스럽고 다소 촌스럽다고 지적받는) 나의 행동마저도 그녀와 함께 나누니 퍽 기분이 좋아졌다.

  <아비가 달린다> 이후로 말괄량이 소녀같던 그녀의 글은 이제 어엿한 20대 아가씨가 되었다. 그 사이에 그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굳이 취향을 나누어져보다면 난 <아비가 달린다>의 김애란이 더 좋았다. 아직 어른이 되기 싫은 나의 치기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김애란의 글과 함께 20대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을 작지 않은 행복으로 생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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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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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구부러진 숟가락을 들어 겸연쩍게 콩나물국을 뜬다. 그녀는, 오지 않을 모양이다. 아버지는 점퍼 안에 있는 편지 한구절을 조용히 읊는다. 안녕하세요. 가늠할 수 없는 안부들을 여쭙니다. 잘 지내시는지요. 안녕 하고 물으면, 안녕 하고 대답하는 인사 뒤의 소소한 걱정들과 다시 안녕 하고 돌아선 뒤 묻지 못하는 안부 너머에 있는 안부들까지 모두, 안녕하시길 바랍니다." (180쪽)

 

"그는 침도 별로 없는 입을 열며 우리에게 처음으로 말했다. 그것은 어쩌면 희망 때문일 것이라고. 그는 그것을 읽고 한동안 꺼이꺼이 울었다." (218쪽)

 
4년 전, 그녀의 책을 처음 샀을때 난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내 상식(편견) 속에 작가들은 나보다 10살은 많은 이들이었는데, 김애란은 나보다 5살 밖에 많지 않다는 것이 그녀의 글을 무시했던 이유인 것 같다. 21살의 나에게 26살 그녀는 글을 쓰는 이에 대한 나의 대책없는 무한 동경마저도 받을 수 없을 정도로, 어리다 생각했던 나이였기 때문이다.

  책을 처음 어떻게 사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아마도 알라딘 리뷰글이 꽤 호평이어서 바로 책을 주문 했던 것 같다. 물론 위의 이유로 난 금방 흥미를 잃었고, A에게 이 책 이야기를 하면서, 별로 재미가 없다고 투덜거리니 그녀도 그렇다고 했다. 스물 한살, A에 대한 나의 기억이 얽혀있는 책.

  4년이 넘는 시간동안 잊고 있었던 책이었다. 현대작가론 강사님의 강의를 들으며, 그녀에게 흥미가 생겨서 단숨에 읽은 이 책. 마침내 스물다섯의 나는 김애란의 글을 유쾌하게 읽을 수 있었다.

  시를 이해하는 것은 나이라고 하셨다. 세월의 나이테(라는 진부한 표현이긴 하지만)가 시를 읽을 수 있게 한다고 유교수님이 말하셨다. 소설도 마찬가지 인 것 같다. 책을 처음 냈던 그녀의 나이와 비슷하게 먹은 지금, 그녀의 엉뚱한 상상력과 재치에 감탄하고 있다.

  아비는 어디까지 달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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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나의 집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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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로 받고 싶을 때, 듣고 싶은 말을 해줄 수 있는 것. 이것이 공지영의 글이 가진 최대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왜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도 이때문이지 않을까. 
  오늘 행복할 수 없으면 내일도 행복할 수 없다고 말하는 그녀의 말에 공감했지만, 어쩐지 그녀의 글은 나에게 자기계발서 같은 느낌을 준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씁쓸했다. 뻔한 이야기지만, 여전히 많이 팔리고 있는 자기계발서와 뻔하게 살지 못해 자기계발서로 위로 받고 있는 현대인들의 모습이 떠올라서일까? (라고 뒤에 엄청난 키억 웃음을 찍고 싶은 것을 꾸욱 참았다) 라기보다는, 솔직하게 말하면 단지 그녀의 글이 내 취향이 아니어서 일 뿐이다.

  그녀는 자녀를 사랑하고 자신의 삶을, 글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만큼 독자들의 사랑도 받고 있는 행복한 작가이다. 내 별점의 의미는 하찮기 그지 없지만, 그녀의 삶과 삶을 사랑하는 방식에 준 별점이라는 점을 덧붙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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