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먹고싶은 게 많아져 고민이었습니다.

 노릇노릇한 외피에 새빨간 속살을 감춘 스테이크. 거무스름한 그릴 자국이 눈 앞에 둥둥 떠 다녔죠.

 언뜻 보면 담배연기 같지만 그 안에 달콤함과 고소함과 담백함 까지 담은 양념 장어 굽는 연기를 생각하며 코를 벌름거리기도 했습니다.

 육회 비빔밥, 바닷가제, 엄마표 산채 비빔밥 등 먹고 싶은 게 넘쳐났습니다.

 집에서 요리해 먹는 걸 좋아해서 (밖에서 먹으면 비싸고 맛이 없는 경우도 있을 뿐더러 재료와 조리과정에 문제가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이 많아서요 ^^) 일단 까르푸에서 스테이크용 쇠고기를 샀습니다. 장어는 없더군요. 중국산 장어 파동 이후 찾는 이가 없어 안 판다던데, 안타깝습니다.

 토스트용 오븐은 있지만, 본격 스테이크 용으로는 부족할 것 같아 올리브유를 두른 웍(깊은 후라이팬)에 쇠고기를 살짝 구워냈습니다. 예전에도 이렇게 해서 먹어봤는데 괜찮더라구요. 이번에는 전보다 약간 느끼하기는 했지만, 대체로 만족스러웠습니다. 상큼한 샐러드와 과일, 담백한 스테이크, 그리고 좋은 사람들. 훌륭한 저녁식사였습니다.

 그런데, 만족감은 금새 사라지고 또 다른 식욕이 둥실 떠오르더군요. 쇠고기가 십이지장을 건너지도 못했을 시각에요. 장어가 왜 그렇게 먹고 싶은지. 다른 온갖 요리들이 왜 그렇게 번쩍이며 떠오르는 건지.

 

 요즘 주체 못할 식욕에 허둥댔는데,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어렴풋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요.

그러던 중 친구랑 얘기하다 '감각의 오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배고픈 줄 알았는데 외로운 거드라. 위장 벽이 또 헐어버린 줄 알았는데 외로운 거드라. 이런 말을요.

 제 식욕도 그런 것 같습니다. 식욕과 성욕이 맞닿아 있다는 얘기도 있지요. 제가 요즘 고민하는 일이 있는데, 그게 안 풀려 괜한 식욕 탓만 했던 것 같습니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공포를 이겨내는 유일한 방법은 그 수수께끼 같은 공포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정확한 문장은 아닐 겁니다. 대충 이런 의미였습니다.) 공포의 가장 큰 힘은 그 '수수께끼 같음'이라는 걸 알면서, 제 문제가 뭔지 정확히 알면서도 애써 외면한 채로 애꿎은 식욕만을 원망했었네요. 몸을 추스릴랍니다.

 그래도 장어는 꼭 먹을 생각입니다. 한 번 불 붙은 식욕이 사그라들지 않네요.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