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나다
조병준 지음 / 디자인하우스 / 1999년 12월
평점 :
절판


[길에서 만나다]라는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조병준이라는 사람을 알지 못했다. 시인, 번역가, 문학평론가라는 그의 직함으로 보건데, 우리 사회에서 꽤 유명한 인사임에 틀림이 없을 텐데도 말이다. 어쩌다 그를 지금껏 모르고 지내왔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이다.

솔직히 [길에서 만나다]를 읽기 전에는 그 의문에 고개를 갸웃거려 보기도 하고, 조병준이란 인물에 대해 사전 지식을 갖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런데 그의 책 [길에서 만나다]를 다 읽고 난 지금은 차라리 이전에 그를 모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조병준이란 사람에 대해서 그 어떤 편견도 없이 책을 읽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길에서 만나다]를 통해 그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그가 길에서 그의 좋은 친구들을 만난 것처럼…….

[길에서 만나다]는 조병준이 세계 곳곳을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면서 만난 친구들의 이야기이다. 이것만 봐서는 시중에 나와 있는 여행을 소재로 한 책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나 역시 어느 정도는 그런 선입견을 갖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길에서 만나다]에는 여느 여행기에서는 결코 쉽게 만나지지 않는 사람들이 숱하게 나온다. 나는 그 만남들 속에서 조병준이라는 인물을 보았고, 내가 미처 알지 못하던 자신과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차마 인정하지 못했던 자아를 다시금 발견할 수가 있었다.

바젤로 가는 기차간에서 만난 딘. 열다섯에 집을 나와 조그만 칵테일바를 차리기 위해 돈을 모으고 있다는 그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왠지 가슴이 아렸다. 스스로를 스물일곱의 순례자라고 칭하는 초로의 배낭여행객 르네. 아비뇽행 기차표를 조병준에게 쥐어주면서 그가 했던 마음 넉넉한 이야기들은 코허리를 찡하게 울렸다. 그리고 보드가야의 어느 이름 없는 아이와 굼 역에서 아침식사를 먹던 한 가족의 이야기에 눈자위가 시큰시큰 아팠다. 이미 그들 모두가 [길에서 만나다]라는 책을 통해서 내 친구들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조병준, 그가 걸었던 길들 중에는 이미 내가 걸어본 길이 있고, 또 내가 꿈꾸는 길이 있고, 아직 내가 가보지 못한 길도 있다. 그 숱한 길들에서 그가 만난 사람들, 그리고 내가 만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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