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산 지 십 년 - 레즈비언 부부, 커밍아웃에서 결혼까지
천쉐 지음, 채안나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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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한 삶을 꿈꾼다. 직접 요리한 소박한 음식들, 평생의 반려, 꾸준한 일. 그리고 외부 현실에 좌우되지 않는 단단한 내면. 무엇 하나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단정한 일상을 그려본다. <같이 산 지 십 년>을 읽으면서 저자인 천쉐가 꼭 그런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생각했다. 천쉐와 그의 반려 짜오찬런은 서로에 대한 믿음과 애정을 바탕으로 일상을 함께 꾸려나간다. ‘지옥을 몇 번이나 드나들며 얻은‘ 잔잔한 사랑을 소중하게 지키면서. 그들이 겪어낸 지옥은 끊임없이 조율을 요하는 사랑의 속성 탓도 있지만, 상당부분은 그들이 레즈비언 부부라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이 책은 레즈비언 부부인 천쉐와 짜오찬런이 2009년 그들만의 결혼식을 올린 뒤 2019년 타이완 동성혼 법제화까지 지나온 10년 간의 기록을 담고 있다.



천쉐에게 사랑은 일상이다. 평화다. 숨이다. 마음을 표현하는데 서툴러 ‘로맨틱이란 모르는‘ 사람이었던 천쉐는 짜오찬런을 만나 ‘혼자 있어도 좋고 함께 있어도 좋은‘, 자기 자신의 고독마저 포용하게 만드는 보다 폭넓은 의미의 사랑을 배운다. 그러니까 이 책은 점차 넓어지는 사랑의 외연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절망에 빠진 자기 자신에게 다시 한 번 손을 내미는 사랑, 상대에게 매 순간 진심을 다하는 사랑, 부당한 차별과 혐오에 맞서는 사랑. 저자는 수많은 좌절 속에서도 사랑을 선택할 용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성소수자이기에 가족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쉽게 털어놓을 수 없어 생기는 거리감,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 자학, 동성혼 법제화 과정에서의 수많은 좌절 속에서도 우리는 사랑을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랑을 선택함으로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구할 수 있다고.



‘이성애자가 합법적으로 결혼할 수 있는 것은 더 우월적이고 정상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법률적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라는 천쉐의 말이 정곡을 찌른다. 동성애자 부부는 서로 평생의 반려가 될 것을 약속하고서도 법적 부부가 아니기 때문에 서로의 법적 보호자가 될 수 없다. 이들은 ‘계속 함께할 수 있을지 모르는 불확실성‘속에서 함께하며 자기 자신됨을 이유로 고통받는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책의 말미만해도 요원해보였던 타이완에서의 동성혼 법제화가 아시아 최초로 이루어졌듯 한국에서도 어서 그 날이 오기를 바란다. 법이 먼저 소수자를 보호할 때 사람들의 인식도 평등해진다. 저자가 재차 말하듯 사랑은 그 무엇보다 강하며,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은 없다. 항상 사랑이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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