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 / 바다출판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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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읽은 미야모토 테루의 소설들 중 가장 좋아하는 <금수>. 십여 년 전에 이혼한 두 남녀가 우연히 케이블카에서 재회한 이후 주고받은 편지들로 구성된 소설이다. 두 사람의 이혼은 남편이었던 아리마가 여관에서 어떤 여성과 동반자살을 시도한 것이 원인이었는데 시간이 흐른 뒤에야 이들은 편지를 통해 당시에는 털어놓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눈다. 어리둥절하게 갑자기 끝나버린 인연의 끈을 되짚어 조금씩 수놓아나가는 과정이 아름답다.



이 책을 종종 다시 읽는 이유는 ‘모차르트 카페‘ 때문이다. 이혼한 뒤 아키가 매일 찾았던 이 카페는 60대의 부부가 운영하는 곳으로 모차르트의 음악만을 틀어준다. 오직 이곳에서만 들을 수 있는 희귀 레코드 때문에 음악을 들으러 오는 단골손님들도 많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 카페의 정경이 좋아서 가끔 이 대목만을 다시 찾아읽곤 한다.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 이곳에서 아키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며 죽음을 떠올리게 된다다. 가게에 불이 났던 어느 날, 그녀는 모차르트의 기적에 대해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은 어쩌면 같은 일일지도 모른다˝(86p)고 말한다. 어쩌면 이 문장이야말로 <금수>를 관통하는 문장이지 않을까. 비슷한 깨달음을 아키와 아리마 두 사람이 전혀 다른 경험을 통해 얻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다 읽고 나니 이 책 자체가 엉망으로 수놓아진 끝부분을 풀어내 다시 완성한 자수처럼 느껴진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도 충분한 시간이 흐르고 나면 조금은 받아들일 수 있게 될까. 하지만 다시 되짚어본들 이미 지나간 일들은 바꿀 수 없다. 현재와 미래만이 있을 뿐. 이 쓸쓸함이야말로 미야모토 테루의 소설을 읽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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