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대략 나의 크리스마스 이브는 이랬다 

만나기로 했던 친구는 갑자기 화순에 가야한단다.
그래서 약속을 연말로 미뤘다.
그날 같이 스타워즈를 보고, 그녀의 집에 가기로 한다.
맛있는 음식을 하고 와인과 맥주를 마시고 진탕 취해서 새해를 맞이하자. 
그런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이날. 
크리스마스 이브.
난 퇴근을 하고서 동네 마트에 들렀다
장바구니에 맥주와 과자 두 봉지, 삼겹살 몇 줄과 치즈, 크레미, 전자렌즈용 크림 스파게티를 넣었다.
집에 남아 있는 와인이 있고, 견과류도 있으니 이정도면 충분할거다.

집에 도착해서 삼겹살을 구웠다.
밥통에서 밥을 퍼서 그릇에 담고, 김치를 꺼냈다. 
스파게티를 데울까? 아니 그냥 저녁에 먹자. 생각을 고치고 식탁 의자에 앉았다.

삼겹살 몇 점 먹겠다고 엄마가 잠시 탁자에 앉았고, 나는 밥을 먹으며 삼겹살을 먹었고, 
엄마가 커피를 타 달라고 해서 커피를 탔고, 남은 뜨거운 물로 보온병에 차를 우렸다.

방에 들어가 티브이와 컴퓨터를 켰다. 
접속한 아제로스엔 사람들이 드글드글 하다
크리스마스 주말과 연말 주말은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하라고 하니 
그냥 여느때와 다름없는 토요일이라서 접속한다는 겜돌이 겜순이들.

맥주를 손에들고, 티브이는 켜둔 채로 컴퓨터는 종료한다.


 













고민하다가 스티븐 킹을 선택했다.

크리스마스는 스티븐 킹이다.

하지만 맥주 한 캔을 다 마실때까지 책 읽기는 도통 진도가 나가질 않는다.

맥주 한캔을 더 마셨고, 결국 책을 덮었다.

오후 4시가 막 넘어가고 있었다.


공기가 답답해서 환기를 시키려다가 바람이 너무 차서 열었던 창문을 닫는다. 

미뤄둔 드라마를 보기로 한다.



3편쯤 보기 시작할때 과자때문에 입 천장과 혀 밑이 까지기 시작했다.

아직 통증이기 전 까슬한 느낌이 들때 그만 먹었어야 했다.

반 사회적이지만 특출난 능력을 가진 주인공의 어눌한 말에 너무 집중했다 싶다.

책 볼때 이런 집중력이었으면 오죽이나......


슬슬 자세가 불편해지고 술이 올라온다

티브이에선 김성주가 뭐라뭐라 열심히 이야기 중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엌에서 뜨거운 물을 받아 보온병을 다시 채웠다


이번에는 이부자리에 누워 노트북으로 넷플릭스를 접속했다.



어우야........ 이런 ㅁ;ㅣ나어 ';미ㅏㄹ'ㅣㅁ나'리;만ㅇ';ㅣㅏㅇㄴ'미ㅏㅎ';ㅣ낳'


생각 없이 봤다가 시작하고 10분도 안되어 심장이 쿵 떨어져서 진정이 안된다.

술이 확 깼다. 실은 그렇게 취하지도 않았다 (과연?)

무서운 것도 있지만 대비를 안하다가 순간 너무 놀랜탓이다.

무섭게 인기몰이를 한 드라마라 들었는데 정말 그럴만도 하다. 라는 생각을 잠시 한다.

그나저나 어찌됐든 술이 깨버렸다.

술이 깬 김에 좀 더 마시기로 했다.(응?)  개이득~


전자렌즈에 크림 스파게티를 데우고, 크래미를 가져왔다.

와인을 따려다가 도구를 찾지 못해 포기하고 맥주를 더 가져온다.

남은 맥주를 모두 다!


중간에 엄마가 몇번 들어왔다.

한번은 낮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잠이 더이상 안 온다며 

말려 올라간 내복 때문에 드러난 배를 긁으며 들어왔었다.

드라마를 보고 있던 내가 그래서? 여기 누울래? 티브이 틀어줄까? (이땐 티브이를 꺼놨었다)

라고 묻는다. 지금 생각하면 참 딱딱하게도 말했다.

아니 티브이는 거실에서 봐야지. 엄마는 방을 나갔고, 곧 이어 티브이 소리가 크게 들린다.

엄마는 나랑 이야기 혹은 놀려고 했던게 아니었을까? 한다.

크리스마스였는데 남편은 방에서 자고 있고, 큰딸은 집에 있었고,

나에게 크리스마스 이브는 엄아에게도 크리스마스 이브일텐데.


아제로스 사람들 말처럼 여느때와 다름 없는 토요일이지만 똑같은 토요일은 아닐테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여느때와 다름 없는 토요일이라기엔 웬지 흥분되어야 할 것 같고, 기뻐야할 듯 한 날이다.

취소된 약속에 평소보다 더 서운하고, 쓸쓸했고, (아닌척 했지만)

맥주도 더 마셨고, 케이크를 먹어야 할 것 같아서 살까 말까를 고민을 했고,

특별한 날이나 너무나도 정녕 할 게 없으면 보려고 남겨뒀던 드라마도 봤다.

그렇다고 늘 크리스마스에 약속이 있어 즐겁게 놀았던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미뤄둔 드라마를 보면서 혼술 하는 오늘 크리스마스 이브가 생각보다 나쁘지도 않다.

이것도 나름 흥분되고, 기뼜고, 술도 있고, 심장이 쿵 떨어지게 놀래기도 했고...


돌이켜보면 크리스마스 이브에 식구들과 보낸 것은 까마득한 예전일인 것 같다.

케이크 사와서 부모님과 같이 먹고, 아빠와 같이 무언갈 할 때면 늘 그랬듯이

같은 내용의 쉼 없는 잔소리에 나는 버럭하고, 싸우고, 그냥 그럴 걸 그랬나?

엄마도 외로울텐데 같이 티브이 보면서 밥 먹을걸 그랬다.


아 왜 갑자기 눈물이.........


아빠가 문을 두들기며 그만 자라고 소리를 친다.

날이 바뀌었다.


내년엔 내 옆에 누가 있든 없든 부모님과 케이크를 먹으리라 다짐을 한다.

음...  그러니까 다짐을 두번 한다.



바람을 맞았고, 술로 시작해서, 효녀 감성으로 후회를 남기고, 계획을 세우고 다짐을 한,

그러니까,아무튼, 그래서, 내 크리스마스 이브는 이러했다.

여느때와 다름없는 토요일이지만 같지 않았던 토요일이 지나갔다




덧붙임 1.


청문회가 내일이던가? 날이 바뀌어 오늘이던가?




덧붙임 2.

  


보고 있는 책










드디어 또는 결국 구입해서 곧 도착할 책











덧붙임 3.


장 봐온 음식들은 삼겹살 조금을 빼곤 다 먹었다.

그런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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