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날이었다. 
어제가 쉬는 날이었다.
빡빡해진 근무에 쉬는 날은 거의 야근이 끼어있어 근 2~3주를 제대로 쉬질 못 했다.
다시 말해 하루종일 풀로 약속 없이 오롯이 집에 있는 날이 어제였다는 말이다.

일어나니 8시.
모처럼 오롯이 쉬는 날이라면서 오롯이 쉬지 않은 날보다 더 빨리 일어나는 참사가 일어나버렸다.
일단 깼는데 다시 자기엔 하루가 아깝고,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는다 해도 씻고 화장하며 약속을 기다리는 동안 아깝게 시간이 가버릴 것 같다. 그래서 집에 콕 박혀 차곡차곡 쌓인 초콜릿 단지를 껴 안고 하루를 지내기로 했다. 이것도 나름 계획이라면 계획인데 오롯이 쉬지 않는 날도 이와 별다른 차이가 없는 참으로 이상한 계획이다.

  
 <미지와의 조우> 1977년 스티븐 스필버그 작품.

내가 태어나기 전에 나온 영화이다. <미지와의 조우>는 굳이 영화의 제목이란걸 모른다 치더라도 귀에 익은 단어다.
그냥 귀에만 익은 단어다.
그랬으니 영화들 사이에서 제목만 보고 리뷰는 읽지 않은 채 (심지어 어떤 영화인지 검색도 안했다) 다운 받았겠지. 영화를 보고 난 뒤 검색을 하니 꽤나 유명한 영화인데 난 당연하게도(?) 영화에 대해 무지.

이 영화 이후의 <ET>만 기억을 한다. 부모님이랑 보러 갔고, 자리가 없어 가족이 따로따로 떨어져서 봐야했는데 한 줄에 한명씩 빈자리에 삼 남매가 떨어져 않았었다. 부모님은 뒤에 서서 당신 어린자식들이 자리에 잘 앉아 있나 살피느라 영화는 뒷전이었던 것도 기억한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어린이들에게만 나눠준 <ET>지우개를 몇 년간 소중히 간직하다 단 한번 지우개질로 머리가 끊어져버린 허무한 기억도.

영화는 생각보다 촌스럽지 않아 좋았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어서 좋았고, <미지와의 조우>란 제목에 더 좋았다.

제일 좋았던 것은 외계인에 대한 스필버그식 접근.
영화에서 제일 큰 공포는 외계 생물체에 대한 것이 아니다.
가족간의 그리고 사회간의 소통 부재. 그리고 붕괴. 그것이 제일 큰 공포이다.
지금까지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를 많이 봐왔지만 왜 이제야 <미지와의 조우>를 보게 된건지.
그가 만든 어떤 영화보다도 완성도가 높은데 난 이 영화에 대한 정보 자체도 없었다.
단지 <미지와의 조우>란 너무나 호감스러운 단어들의 조합에 궁금증만 있었을 뿐.

내용이나 배경을 떠나서 보고 난 뒤 <미지와의 조우>와 비슷한 여운을 주는 SF영화 들이 있는데

 <맨프럼어스> 와 <케이 펙스> 

<맨프럼어스>는 제한 된 공간에서 이루어진 대화식 영화인데 남동생의 추천이 아니었다면 영화 존재 자체도 모를뻔했다.
처음 영화의 내용을 남동생에겐 들었을 땐 미먀베 미유키의 <괴이>에서 본 단편 <바지락 무덤>이 떠올랐다.
영화는 <바지락 무덤>이 주는 섬뜩함은 없었지만 나름은 잔잔한 충격은 준다.

<케이펙스>는 순전히 케빈 스페이시 때문에 본 영화.
케빈 스페이시 영화 치고 좋지 않은 영화가 없다.
내가 그의 팬이라는 고정된 시각이 있기는 하지만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어느정도 동조를 할지도. 아닌가?
케이팩스에서 프롯 (케빈스페이시)이 말한다.

이 번에 당신이 어떤 실수를 한다면, 당신은 계속해서 그 실수 속에서 살아갈 거에요.
당신이 저지른 모든 잘못의 연속선상에서 당신은 살아가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잘못을 계속해서 영원히 반복하게 됩니다.
그래서 충고를 한다면, 이번에 그 실수를 바로 잡으라고 당신에게 말하고 싶어요.
왜냐하면 바로 지금 이 순간이 당신이 가진 모든 것이니까요. 

영화 내용도 훌륭하지만 케빈 스페이스란 걸쭉한 배우가 출연을 해서 더 마음이 뜨거워졌던 영화.

책장을 뒤져 "새벽 3시" 를 찾았다. 마저 볼 생각을 했으니 찾아야 하는데 어디다 둔 지를 모르겠다. 
들쑥 날쑥한 책들을 꺼내고, 제자리에 다시 끼워넣고, 그리고 찾았다.
율리시스와 모던 타임즈 옆에서

너 뭐하고 있니?
너는 도대체 거기서 뭐하고 있니?
놀려면 저기 미들 마치나 냉정과 열정사이에 있을 것이지 빅마마들 옆에서 티도 안나게. 너 일부러 그런거니?

<미지와의 조우>로 시작된 훈훈한 마음에 "새벽 3시"와 초콜릿으로 달달해짐이 더 해진다. 
이런 마음이라면 나중에 나이 먹어 초콜릿 단지를 옆에 낀 뚱뚱하고 다소 신경질적인 할머니가 되어도 괜찮지..... 않겠지. 
기회가 되면 케빈 스페이시 출연 영화에 대해 페이퍼를 써 봐야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1-03-20 1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21 0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