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에게 빌려줬던 책들. 추천을 연발하며 빌려줘놓고는 정작 내 책장에서 없어졌다  생각도 못 했던 책들. 육아에 지친 후배 달래려 피자 사들고 방문했다가 우연히 그녀의 책장을 보지 않았다면 그녀가 말하지 않는 한 아마도 평생 발견하지 못 했을수도 있는 책들. 이모를 찾아대는 후배 아들내미 방해를 이겨내며 쇼핑백에 담아 온 책들. 잊고 있었던 게 너무 미안해서 책장에 넣지 않고 베개 옆에 놔둔 책들. 한동안 베개 옆을 지킬 내 책들.

후배가 나에게 빌려 준 책도 있다. 나는 기억하는데 그녀는 기억 하지 못 하는  나쓰메 소메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후배에게 따로 말 하지 않고 내가 갖기로 했다. 그냥 내가 그렇게 결정했다.

 

 

 

 

 

 

조너선 캐럴의 "벌집에 키스하기" "웃음의 나라"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
라우라 에스키벨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폴 오스터의 "달의 궁전"

폴 오스터 "달의 궁전"  

아마도 이 작가의 머릿속의 절반은 단어이고 절반은 잘난척일 것이다. 이십대 초반 폴 오스터에 굉장히 열광했었을 때가 있었다. "나 글 좀쓰지 않아?" 라고 느껴지는 그의 문장에 (순전히 내 생각) 굉장하다! 감탄하며 읽었었다. 몰입해서 읽으면 뚝딱이지만 중간에 손을 놓으면 좀처럼 다시 펴기가 힘든 그의 책들. 게다가 그 몰입이라는 것도 쉽지 않은 그의 글.

(읽고 나면 백년을 가지만 중간에 중단하면 다시 읽기가 백년이 걸린다는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나는 그의 글을 읽으면  "내가 지금 어느 부분을 읽고 있지?" "이 전의 상황이 뭐였는데 이렇게 전개된건지?" 등의 궁금증을 항상 머릿 속에 떠올렸다. 신간이 나올때마다 구입은 하지만 사둔지 몇년이 지난 후에야 겨우 읽기 시작하는 그의 책들. 좀 더 유명한 "뉴옥 3부작"을 비롯 그의 책은 항상 나에게 숙제이다. "달의 궁전" 은 구입한 지 5년이 지나 근 3년 만에 읽어 냈다. 완독 후 그 뿌듯함은 말로 표현을 못한다. 재미도 있다. 제길! 그런데 읽기가 너무 힘들다. 현재도 "환상의 책"을 3년? 5년째? (맙소사 이제 생각도 안나) 읽는  참 자격 없는 책 읽는사람이다.  
                                                                                                                                                                                      

 

 재미가 있던 없던 끝까지 읽기가 너무 힘들어 (몰입이 힘들다든지, 다른 책에 
 더 눈이 간다든지 하는 기타등등 이유로) 나에게 숙제 같은 글은 폴 오스터 말고
 도 더 있다. 그 중 최고는 리차드 브라우티건의 "미국의 송어낚시" 인데 이 책은
재미가 없다던가 몰입이 힘들다던가 하는 책이 아니다. 실제로 너무 재미있다. 정말 너무 재미있어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1984년으로 돌아가 스스로 총을 겨누고 있는 그에게 "전 당신의 팬입니다" 라고 말하고 싶다. 죽지마라고 제발 그러지 마라고 울며 매달리진 않을테다. 내가 그러든 그러지 않던 결과는 같을테니까. "미국의 송어낚시"는 완독하기가 힘든게 아니라 완독하기 싫은 책으로 개인적으로 계속 <독서중>이길 바라는 책 중 하나이다. 그리고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도 늘 <독서중> 이길 바라는 책이다.

-> 지나가는 말하나 : 유아인의 파워? "워터멜론슈가에서"는 품절이다. 그 때문인지, 아니면 그 전부터 품절인지는 모르겠다.

헤르만 헤세의 "황야의 이리"는 "데미안" 보다 더 읽기가 힘든 책. 다른 이들은 "데미안"을 어떻게 읽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데미안"을 읽으면서도 이러니까 노벨상을 받는거다. 참 노벨상스러운 책이다. 보는 내내 인상을 썼다. "데미안" 은 총 4번을 읽었는데 처음 읽었던 학창시절엔 왜 읽어야 되는지도 모르고, 단지 선생님이 시켰기 때문에 읽었다. 두번째는 대학에서 남들이 좋다니까 내용도 생각 안나는데 한번 읽어보지 하고 시험기간에 유독 학점도 짜게 주는 과여서 코피 흘리며 친구들이 도서관 날새기를 할때 같이 날새기 하며 새벽 별 보면서 읽었다. 순전히 공부하기 싫어 선택한 책인데 시험 결과야 말 안해도 뻔 한 사실이니 졸업 후 취직하는 내내 학점이 따라다니는 걸 그때 알았다면 절대 보지 않았을 걸. 아니... 그래도 봤을까?   

나머지 두번은 직장 들어와서였는데 내내 이해가 힘들었던 내용이 4번째 와서야 비로소 이해가 됐다. (정말 딸리는 이해력이다) 10대, 20대, 그리고 30대 시간이 갈 수록 이해의 폭이 더 깊어지니 아마 40~50대가 되면 좀 더 좋은 말로 리뷰를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궁금한건 사람들은 헤르만 헤세의 작품이 이해가 쉬운가? 난 이렇게 어려운데 어떻게 다들 읽고 추천을 하는거지? 난 이해가 안돼 읽고, 또 읽어 내용이 그마나 조금의 이해가 되는 지금에도 추천을 못 하겠다.

"황야의 이리"는 그 "데미안" 보다 몇 배는 읽기가 더 힘든 책이다. 이해는 둘째 문제. 이건 아예 스무장 넘기기가 힘들다. 책 구입 후 3~4년을 지났음에도 주인공이 마술 극장 문을 열기 위해 애쓰는 장면만 반복이다. (글을 쓰는 지금 생각나서 책을 넘겨보니 74페이지에 책 갈피가 꽂혀있다. 정정 20장은 넘길 수 있다. 하지만 그럼 뭘 하나? 어차피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 하는데)

얼핏 보면 사람들이 내 글에 오해를 할 수도 있겠는데 확실히 말해 두자면 헤르만 헤세는 글을 잘 쓴다. 너무 잘쓴다. 문장력은 최고인데 문제는 내가 (바로 내가) 읽기가 힘들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 아주 신경질 나는데 대책도 안서는 취향의 문제 일 뿐이다. 인터넷 검색으로 리뷰를 보면 칭찬 투성이에 추천 왕왕이니. 읽는 것은 자유. 하지만 나는 힘들다는 것. "데미안"은 4번 만에 좋은 책임을 알았으니 "황야의 이리"는  빠르면 한 40세 정도에 완독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때도 이해를 다 할지는 의문이다.(망할 머리. 대책 안 서는 망할 취향)

덧 붙이면 비슷한 소설로 비교적 이해는 쉬우나 결심하고 읽지 않으면 참 책장 넘기기 힘든. 감상이고 추천이고, 리뷰는 고사하고 읽어냈다는 것에 폭풍 감동을 받았던 앙드레 지드의 "좁은문" 도 있다.  

 난 흔히 말하는 세계문학을 "1984"으로 시작해 "백년의 고독"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영혼의 집"으로 이어와서 엄청난 재미를 느끼고 있었는데 (언제나 저 책들의 리뷰를 쓸 수 있을까?) 앙드레 지드에 와서 딱! 막혔다. 이어서 헤르만 헤세는 쉽게 접근 조차 못 하게 만들어 버렸다. 좋아 하는 호러와 스릴러를 구입함에도 의무적으로 5권에 1~2권은 세계문학(고전)을 끼워넣어서 쌓인 책들이 읽어달라며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고 있다. 제발~ 진도 좀 나가자!
 
고전이란 누구나 읽은 것으로 자부하려 들지만 실은 누구나 읽고 싶어하지 않는다  - 마크 트웨인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세상종말전쟁" 은 "나는 훌리아 아줌마와 결혼했다"를 보고 문장에 반해 당장 구입한 책이다. 개정판이 표지가 더 예쁘다. 내가 가진 것은 표지만 봐서는 절대 보고 싶은 욕망이 일지 않은 표지로 구판의 마이리뷰에 <마녀물고기>라는 분의 리뷰가 아니었다면 결코 읽지 않았을 것이다. 잠깐 그분의 리뷰를 옮겨보면 

2년 만에 만난 친구들과 이런저런 쓰잘데기 없는 수다들로 맥주잔을 비우던 게 꼭 보름 전이다. 뭉치자 빠샤! 구호를 외치며 강화도 행을 결정한 것이 새벽 1시쯤이었고, 일어나? 말어? 이불 속에서 한 시간 남짓 뼈를 옭죄는 고뇌 끝에 자는 게 남는 거다 결심을 굳힌 건 아침 8시였으며, 겨우 겨우 침대에서 몸을 빼낸 건 해가 중천을 넘어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오후 무렵이었다. 핸드폰을 확인했지만 부재중 전화는커녕 메시지 한 줄 남겨있지 않은 터라 은근히 부아가 솟았다.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모닝콜을 하지는 못할지언정, 갈 거냐 아니냐 가타부타 말 한 마디 없는 녀석들이 괘씸하기만 했다. 그렇게 5분을 괘씸해하다가 난 눈 뿌옇게 친구들이 고마워졌다. 우린 서로를 너무도 잘 알았던 것이다! 가지 않기로 결정했을 놈에게 괜히 전화 걸어서 겸연쩍음과 미안함으로 몰기 싫었던 게지, 기특한 녀석들. 아무튼 요즈음의 귀찮음병은 대책이 없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다는 말은 실로 명언이다. 이런 와중에 그래도 근근이 책읽기가 이어진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나는 무위를 견딜 수 없는 것일까? 귀찮음병으로 시작된 일상의 무미건조와 나태와 방종에 대한 책임을 책읽기에 전가하려는 것일까?

페루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궁둥이인지 궁뎅이인지 하는 책이 요사스럽기 그지 없다는 평에 혹해 인터넷 서점을 뒤졌으나 절판이란다. 롤랑바르트의 <카메라 루시다>를 친구에게 줘버리고 절판 당한 이후 최고로 갑갑하다. 읽고 싶은 때에 읽지 못하게 하는 건 얄미운 당신이다. 어쩔 수 없지, 훌리아 아주머니와 결혼한 사연이라도 읽는 수밖에.

일단, 이 책은 무진장 재미있다. 구성도 탄탄한데다 요사의 장난질이 어찌나 깜찍한지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다. 책 읽는 간간이 요사의 요사스런 눈빛(정말이다!)을 넘겨다 보며 잔잔한 소름 쓸어내리는 일도 즐겁다. 갈 수록 서사에 주목하게 된다. 물론 문체의 매혹을 떨칠 수는 없다. 하지만 일군의 우리나라 여성작가들에게 식상해진 건 사실이다. 그들에겐 비틂이 없다. 발가벗겨진 살덩어리만 보일 뿐 움직일 때마다 살짝 살짝 드러나는 은밀한 유혹이 없다. 지루할 정도로 심각하고 짜증날 정도로 아름답다. 너무 촘촘해서 좀체로 뇌의 한 부분을 툭 끊어놓고 흐느적거릴 짬이 없다. 변화가 필요하다.

이 책은 실제와 허구가 샌드위치식으로 정렬되어 있다. 그러니까 요사가 훌리아 아주머니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기까지의 자전적 이야기와 라디오 방송작가인 페드로 카마초가 쓴 드라마 대본을 윤색한 허구가 하나의 챕터를 건너 뛰면서 진행된다. 하지만 이 미련 곰탱이는 그것을 1권의 끄트머리 쯤에야 눈치를 챘다는 것인데, 이쯤이면 정말 날라리 독자라 자부해도 될만하지 뭔가. 요사의 장난 놀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카마초의 드라마 대본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뒤섞기도 하고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내기도 하면서 카마초가 혼동하는 부분이란 친절한 설명 하에 주석을 달거나 방점을 찍어두기도 한다. 깜찍하기도 하여라. 읽는 중간중간 작가의 재기발랄함에 코가 막힌다. 덕분에 휴지를 한 다라이 정도 풀어냈다. 고 하면 거짓말이고, 아무튼 유쾌한 작가인 건 분명하다. 요사의 다른 소설들도 챙겨봐야겠다는 다짐으로 불끈!

그런데 그 날, 친구들은 강화도에 다녀왔을까?

애초에 책 구입을 위해 들여다 본 리뷰가 아니다. 그냥 어떻게 하다보니 건너 건너 들어가게 된 리뷰인데 이 분의 리뷰를 읽자마자 당장에 책 구입을 결정했고, 품절이라 구하지 못했다는 궁뎅이? 궁둥이? 이 책도 몇 년간 계속 찾아 다녔다. (아마도 궁둥이? 궁뎅이? 저 책은 비교적 최근에 다시 나온 "새엄마 찬양" 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녀 물고기>님 정말 감사합니다. 님 때문에 참으로 좋은 책을 알았어요. 너무 늦게야 인사를 드리네요. ^^ 

2010년 노벨상 수상자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로 발표 된 후
또 다시 고배를 마신 고은 시인님의 안타까움도 있었지만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팬으로서 굉장한 기쁨도 있었다.
하지만 출판 된 그의 대부분의 책을 가지고 있고, 대부분의 책을 읽었음에도 좀처럼 "세상종말전쟁"은 진도가 나가질 않는다.
작년 말 싸이월드에 올라간 일기를 정리하면서 웃음을 참지 못했는데 이유가 "세상종말전쟁" 이 많은 부분 등장하는데 하나같이 읽기가 힘들다. 참 재미있다. 글은 재미있는데 끝까지 읽기가 힘들다. 라는 푸념 투성이었기 때문이다. 책을 살펴보면 1권은 3분의 2정도는 새카만데 나머지 부분은 새하얀. 야심차게 결심을 하고 구입하지만 비슷한 부류의 동지들과 같이 쌓여있는  참고서들과 같은 운명이 되어있다. 아... 이를 어쩌나.      

책장을 뒤져서 읽지 못한 책들을 골라내야 겠다. 당분간 새 책 구입은...... 아마도 계속 하겠지만 기존의 책도 읽어내야지. 무언가 계획이 필요하다. 저에게 힘을 주세요!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

주인공이지만 이름도 등장하지 않는 가정교사. 음울하고 수상한 저택과 사랑스러운(?)남매, 그리고 그로스 부인. 그녀가 느끼는 공포의 존재가 실제인지 아닌지, 그 의문 자체가 더 공포스러운. 모호한 공포. 이 글을 쓰면서 옆에 놓여있는 "나사의 회전"을 펼쳐보지만 지금도 결말에 대해 고개만 갸웃.

"나사의 회전"은 재미보다 여러 꼭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평가하는 책이다. 흔히 심리 소설의 선구작이라 불리우는데 역시나 읽는 데는 조금의 노력이 필요하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소개를 보면 미국 문학 사상 "가장 결실이 풍부하고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헨리 제임스의 손꼽히는 유령소설. 하지만 이런 저런 이유를 떠나서 꼭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내가) 읽히는 게 힘들어도 감상이 생각보다 오래 간다는 것, 재미가 없는 것 같으면서도 쉽게 책을 놓을 수 없다는 것, 결말이 확실치 않아 읽는 이로 하여금 여러 생각을 하게 하는 정말 심리 소설답다는 것,(그 시대에) 다른 책 속에서 유독 많이 등장한다는 것, 비슷하게 비교적 최근 소설에 나사의 회전이 연상되는 부분이 많다는 것. 쓰고 보니 생각난다.  

다이안 세터필드의 "열 세번째 이야기"

책이 등장하는 내용의 책은 리뷰를 보지 않고 사기 때문에 처음 책 소개를 읽자마자 구입했다.
한데 읽고 나서 웬지 이상한 기분을 느끼게 했던 "열 세번째 이야기".
재미 문제가 아니다. 재미야 사람 취향 문제니 그닥 재미를 느끼지 못 했음에도 그냥 그렇다 생각하면 될 일. 재미가 있으면 더 좋았을 테지만 그게 아니어도 책은 책이다.
이상한 기분은 "열 세번째 이야기"를 읽는 내내 작가의 생각 그러니까 뒤의 줄거리가 궁금한 대신 다른 책들이 연상 되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인용한다던가 하는 내용이 아니다. 비슷하다고 생각 할 수도 있지만 읽는 내내 연상이 되는 책들

  

 

조이스 리어든의 "로즈레드" (로즈레드의 작가는 스티븐킹이라고도 소문이 났었다. 나 역시 스티븐킹이 필명으로 발표했다고 들어서 구입한 책이니. 실제 저자는 따로 있고, 조이스 리어든은 엮은이라고 한다.)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회전"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 그 중 헨리 제임스는 아무리 봐도 너무 비슷하니 작가도 콕 집어 책 속에 써 놓았다. 이것 말고도 다른 책이 연상 될수도 있을테지만 읽은 책은 저 세권이라 내가 아는 한도내에 저 세권이다. 책이나 드라마, 영화를 보면서 다른 것이 연상 되는건 흔한 일이다. 최근에 시크릿 가든을 보며 현빈이 기억을 잃어 하지원을 기억 못하는 부분에 두 동생들이 "꽃보다 남자"다 라고 외쳤으니까. 하지만 남은 것은 "꽃보다 남자"가 아니라 "시크릿 가든"이다. 그런데 "열 세번째 이야기"를 읽은 후 남는 것은 "열 세번째 이야기"가 아니다.

동생이 꽤나 두툼한 게 표지만 봐도 읽고 싶은 욕구가 이는 책을 보고 나에게 "열 세번째 이야기" 어때? 라고 물었었다. 
"읽어봐" 라고 대답하며 로즈레드와 나사의 회전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을 차례로 꺼내 책상에 올려놨다.
그리고 덧 붙였다.
"그 전에 이거 부터 읽어라" 
다음 날 퇴근 후 돌아오니 책상 위 세권은 그대로 이고 "열세번째 이야기"만 없어졌다.
하긴 세 권보단 한 권이 나을테지. 

방금 카톡으로 여동생에게 물었다. 

"전에 읽었던 <열 세번째 이야기> 어땠어"
"뭐?"
"열 세번째 이야기"
"......."
"읽기는 한거냐...." 

오해 말기를. 내 동생의 경우는 재미 보단 게을러서 안 읽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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