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친구를 만났다. 결혼을 앞두고 있던 친구였고 이날은 신랑 될 사람을 정식으로 소개 시키기 위한 자리였다. 자리는 단촐했다. 그녀와 그녀의 예비 신랑 그리고 나. 씨푸드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간단히 맥주를 먹자고 한다. 술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한쪽 벽면을 크게 차지 하고 있던 TV에선 기아 타이거즈의 마무리 세일러유(유동훈)가 블론 세이브를 향해 내달리고있었다. 간단한 한잔이 두잔이 되고, 세잔이되고, 연장전 패배에 알딸딸한 정신으로 친구와 난 외쳤다. 

"안돼. 이렇게 지면 안돼! 내일 목동가자. 가서 목이 쉬도록 응원하자. 그러면 이길꺼야"  

쉬는 날이었지만 다음날 근무를 나가야 하는 나에겐 반 장난, 일이 없어 잠깐 쉬고 있던 그녀에게는 취중진담이었다.
다음날 아침 술과 잠으로 사지가 묶인 나에게 그녀가 밤새 칼칼해진 목소리로
버스표를 예매했다며 약속 확인 전화를 한다. 우리는 버스로 세시간 반이 걸리는광주에 산다. 맙소사.
봄 이었다.  
정확히는 늦은봄과 초여름의 사이였다. 
햇빛은 강해 덧 입은 가디건이 더웠지만 바람은 쌀쌀해 무릎 담요를 덮여야 하는 그런 이상한 날 우리는 목동에 있었다. 도착 시간이 늦어 경기 초반과 자리를 놓쳤다. 계단에 앉아 피켓을 만들려 했던 스케치북은 엉덩이에 깔린 채로 어 떻게든 제 몫을 했지만 목이 쉬지는 않을 정도의 응원으로 제 몫을 다하지 못한 우리 때문인지 버스 시간때문에 보지 못 해 뒤늦게 확인 한 경기 결과는 기아의 패배였다.    

잠깐의 서울 나들이(?)에 만족감 대신 서운함과 함께 각자의 손에 책을 한권씩 들고서 우리는 돌아왔다. 목동을 가는 길에 들른 서점에서 그녀가 자신을 위한 책, 그리고 나를 위해 사 준 책이었다. 종종 책을 추천해달라는 그녀를 위해 난 오프라인 서점을 간다. 과부하가 걸린 머리가 쉽게 책 제목을 뱉어내지 못하는 까닭이다. 서점에 가서 책장 사이를 지나칠 때 마다 그녀가 좋아할 만한 책을 눈에 보이는대로 자리에서 가볍게 뽑아낸다. 한 권이 되든 열 권이 되든 몇 권이 되든 상관없다. 그러면 그녀가 뒤 따라오면서 책을 고르는 것이다. 어쩔땐 멈춰서서 책에 대한 짧은 소개를 하기도 한다. 그날도 그랬다. 책을 사주겠다는 그녀에게 가지고 싶지만 이상하게 망설이다가 결국 결제 버튼이 눌러지지 않았던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을 안겨주었다. 자리에서 튀어나와 있던 몇 권의 책 속에서 그녀가 고른 온다 리쿠의 <삼월은 붉은 구렁을> 바로 위에!

 온다리쿠의 책 중 처음으로 접한 것이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다. 인터넷 리뷰나 댓글과 댓글들 사이에서 발견하는 것이 대부분인 내 책들 중에서 특이하게(?) 오프라인 서점에서 직접 골라낸 얼마 안되는 책 중 하나였다. 서점에 꽂혀 있는 붉은 색이 끌려 책을 뽑아들었고, 뒤를 돌려보니 소개 글 사이로 "수수께끼의 책"이란 단어가 마음에 든다.(갑자기 바람의 그림자가 떠오르는 건 뭐지?) 책장을 넘기자 찰리와 초콜렛 공장의 윌리윙커의 성명서가 쓰여있다. "집은 언덕위에 있었다"라는 첫 문장을 읽으며 난 책을 사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책은 미스테리하다. 미스테리한 책을 찾는 미스테리한 책이다.   

작가는 미스테리와 환상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지면서도 독자들에게 들려줄 재미있는 줄거리가 뭔줄 아는, 쉽게 읽히는 글을 쓰는 온다 리쿠다. 옮긴이의 말을 빌려 "잘 쓰는 작가" 온다 리쿠다. 그러니까 <삼월의 붉은 구렁을>은 "잘 쓰는 작가"가 쓴 재미있는 미스테리 책이다. 하지만 쉽게 읽히는 대신 쉽게 이해는 되지 않아 모든 사람이 입을 모아 하나의 결론을 말하지 않는 이상한 책이면서 이 책과 연작이 되는 다른 책도 궁금하게 만들어버리는 은근한 매력을 가진 책이다.   

독서가 취미인 회사원 사메시마 고이치가 회장의 저택에 초대받아 <삼월>에 대한 미스테리를 푸는  
제 1 장  기다리는 사람들  

여성 두명이 여행을 하면서 <삼월> 작가에 대한 추리를 하는
제 2 장 이즈모 야상곡

이복 자매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을 풀어나가는
제 3 장 무지개와 구름과 새와

<회전목마>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여러개의 구상을 쓰는
제 4 장 회전목마

읽을 당시에도 줄거리를 떠올리며 다시 한번 읽었던 어제 저녁에도 도대체가 같은 <삼월>에 대한 이야기인건가? 사람들이 찾고 있는 <삼월>의 내용이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삼월>을 말하는건가? 명확한 답이 나오질 않았다. 추천 할 때도 계산하는 친구에게  "재미있어. 일단 재미는 있어"라는 말 이외엔 그녀가 보이지 않게 물음표만 눈으로 그렸다. 

같은 제목을 가진 수수께끼의 책 <삼월은 붉은 구렁을>의 각자 다른 4편의 이야기라는 결론은 블로그를 쓰기 위해 다시 읽었던 어제 저녁 겨우 내린 창피한 결론이다. (이해력이 높은 사람이 제일 부럽다) 

몇 달이 훌쩍 지난 작년 말 그녀가 문자를 보내왔다. 
정신이 없어 당시에는 못 읽고, 이제서야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읽고 있다며 너무 재미있고, 신선해서 추천해준 네가 생각이 났다고 했다. 그리고 "너무 고맙다" 라고 한다. 아직 다 읽지는 못 했는데 친척 언니가 빌려달라고 해서 잠시 멈춤상태에 있단다. 읽지도 않았는데 빌려줬단 말이니??? 

추천을 해서 만족한 책이 불어날수록 그녀는 나에게 책에 대해선 깊은 신뢰를 가진다.   

  

 

 

 

 

 

  

 
몇 년 전에 추천해 준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보고 난 뒤 그녀가 너무 좋았다고 그때도 고맙다고 했었다. 
그 뒤로 그 책을 친척 언니에게 빌려준 모양인데 친척 언니가 전화해서
"고마워. 나 너무 재미있고, 감동적으로 읽었어. 정말 이런 책 빌려줘서 너무 고맙다." 라고 했단다.

연신 고맙다는 말을 하는 그녀에게 나 역시 고마운 마음이었다.
난 네가 그 말을 나에게 전해줘서 좋다. 정말 굉장히 좋은 느낌이야. 그래서 너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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