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트의 세계
듀나 지음 / 창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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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세계관의 추리소설이 가능한지 궁금했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이 책은 우연히, '붉은 집 살인사건'을 빌리려다가 근처에서 본 책등이 예뻐서 자세히 보니,

작가이름이 낯익어서 한번 뽑아 보았다가, 뒷페이지의 추천사를 요즘 찾아 읽던 배명훈 작가님이 쓰셨길래, 빌렸다.


아니 사실 빌릴까말까하며 서서 한두장 읽었는데,

초능력자 소설에 첫 장부터 추리소설 같은 장면으로 시체가 등장해서,

취향이다 하면서 빌렸다.


"~ 뭐든 불가능한 게 없는 만능 전신감응자 부대를 상상하는 건 의미 없음.

  분명 우리가 모르는 더 단순한 방법이 있었겠지."

-- 17: 21층 천장에서 발견된 아이 --


여하튼,

마법사나, 초능력자가 존재하는 세계를 배경으로 재미난 추리소설이 가능한 것인가.

라는 의문이 있었다.


판타지(과학 판타지든 마법 판타지든)는 여기까지 가능해? 라는 놀라움도 매력이지만,

정통 추리소설에서 벽을 통과하는 초능력자나 시간여행을 하는 마법사는 아무래도 반칙이니까.


"'불가능한 일을 제외한 뒤 남은 것은 아무리 있음 직하지 않아도 반드시 진실이다.'"

"셜록 홈스? 잠깐, 말하지마. [녹주석 보관]. 

  하지만 그건 현실 세계에선 별 의미가 없는 소리야.

  우리가 불가능한 일들을 모두 제외했는지 어떻게 알아."

"맞아. 그리고 셜록 홈스 시대엔 그나마 인간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알았어. 

  하지만 우린 모르잖아."

-- 87: 밀실 문제의 해답 --


사실 꼭 추리소설이 아니더라도,

미스터리요소는 자주 있고, 이야기에 집중하게 해주는 힘이다.


미스터리라는 기술은 거의 멱살을 잡아끄는 수준으로 

독자들을 내 이야기에 집중시키고, 또 계속 머무르게 할 수 있다.

적절하게만 들려준다면 미스터리는 그 이야기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독자들을 얼마든지 가둬놓을 수 있다.

-로버트 치알디니, 초전설득, 151-

이 이야기에서도 사실, 진짜 메인 미스터리는 저 시체에 관한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익숙한 지명의 익숙하지 않은 이런 세계에 산다는 것은 어떠한 일인지,

이런 세계에서 주인공들이 무엇을 소중히하고, 무엇을 추구하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행동까지 할 수 있는지가 더 흥미롭게 다가온다.


그런데,

시점을 자주 바꾸고 (사실 좋아하는 기법이다.)

시간도 왔다갔다 하고, (이것도 좋아한다.)

내가 등장인물 이름을 대충 읽는 버릇이 있기도 하고,

책을 한번에 못 읽고 몇 번 끊어서 읽어서 그런지,


마지막 반전을 제대로 음미하지를 못해서 아쉽다.

분명히 깜짝 놀라도록,

앞에서 부터 차근차근 복선을 깔아두었었을텐데,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것 같아서, 한번 더 읽어야 하나 고민중이다.


같은 세계관이라는 '아직은 신이 아니야'를 먼저 읽었었으면, 이해도가 달랐을까 싶기도 하고,

그냥 그 자체로 이 세계의 이야기를 더 읽고 싶기도 해서, 독서 희망 목록에 적어두었다.

(뒷날개에 같이 있던 '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도 함께..)

그 여자는 배터리였다. - P11

우선 단일한 지식과 가치관을 주입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 했다.
지식이란 다른 지식을 흡수하는 통로이다.
지식의 양이 늘어날수록 통로의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다언어 구사자로 키워졌기 때문에 다양한 통로를 통해 스스로 쌓을 수 있는 지식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 P45

그는 못생김이 남자들이 지켜 낸 마지막 권리라고 생각하는 부류가 싫었다.
-- 조일용이 한상우를 보며 -- - P139

그는 민트 갱이 두렵지 않았다.
그들은 목표가 분명했고 논리적이었다.
동료의 시체를 불태운 건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지금까지 행보를 보면 그 뒤에 이성적인 동기가 깔려있는 게 분명했다.
그는 그들을 잡아 이 사무실로 끌고 오면 다소 열불이 터지더라도 이치에 맞는 대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가 진심으로 두려워하는 건 다른 아이들이었다.
어리석고 단순하고 억울하고 생각 없고 자기가 무얼 하는지도 모르는 난폭한 짐승 무리.
머슬 팩들, 정신강간범들, 자폭범들, 그 밖에 이름 붙이기도 귀찮은 오합지졸들. - P141

‘배터리로 작동되는 기계‘라는 진부하고 뻔한 표현이, 진부할 수도 뻔할 수도 없다는 사실이 황당했다. - P157

자신의 사고방식을 따르지 않는 후손들에 대한 증오와 공포의 역사는 깊다.
존재가 죽은 뒤에도 문화적으로나마 삶이 지속된다는 환영을 깨뜨리기 때문이겠지.
그들이 두려워하건 말건 후손들은 배은망덕하기 마련이고 인류의 역사는 죽은 자들의 허망한 꿈이 학살당하는 과정의 기록이다.
나는 이런 두려움을 놀려 대는 버릇이 있다.
그래도 고백해 보자.
이런 비아냥에서 내가 언제까지 예외일가?
아니 예외인적이 있긴 했나?
-- 작가의 말 2018.10.06 -- - P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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