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집 살인사건 변호사 고진 시리즈 1
도진기 지음 / 황금가지 / 2016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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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일단, 미스테리아와,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5 에서 단편을,

순서의 문제라는 단편집을 한권. 즐겁게 읽었던 도진기 작가님이라 믿고 골랐고.

재미도 있었다.


그런데 읽는 내내 불편한 건, 너무 예민했던 걸까?


인종이나 지역, 성별이나 체형, 나이나 직업 이런 특징들에 대한 고정 관념들.

이건 많은 사람들이 이미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유머의 소재로 삼거나, 문학에서 인물을 묘사할 때 사용하기 좋고,

아마도 사용하지 않기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비하의 의도가 없다고 하여도, 그런 서술을 사용함으로써,

그러한 고정관념이 더 일반화되고 강화 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별로 좋게 보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그런 표현을 의식 없이 사용하는 사람은,

자신의 편견을 편견이라 의식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안타깝다.


이 책에서 계속 언급되는 것도,

추리의 기반으로 삼는 것도,

'악의 유전자', '사악한 피', '악의 대물림' 이런 것이다.


그래서 남성룡이 범죄예비군 서형일을 유언으로 조종한 것이 아닐까 하고
두 사실을 연결하기에 이르렀을 겁니다.

즉 형님은 남괘전의 이야기(모친이 범죄자라는)로 남성룡의 가계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 이분희에게서 이어받은 사악한 피

이 모든 것이 그런 행동의 개연성을 높여주고 있었어요. 

... 악의 유전자가 발호하여 가짜라고 오해했던 남진희의 살해에 나섰어요.

형님은 그의 피에 흐르고 있는 악의 에너지를 자극해 

살인을 유도하는 극단적인 방법을 취한겁니다.


이 작품이 작가님의 첫 작품이었다는 것 같다.

..그러니까.. 첫 작품 이니까..

쓰고싶은 트릭들이 있긴 한데, 범죄의 개연성을 만들기가 어려워서

이런 식의 편견을 사용했다고 생각하려고 했다.


그런데, 조금 더 슬펐던 것은.. 이 소설을 집필할 때, 작가님이 현직 판사였다는 점이다.

사법 및 수사에서 얼마나 일반적인 편견이길래.

이렇게 당당하게 소설에서 범죄의 이유이자 추리의 이유로 선택 되었을까,

..생각해보면, 정말 무서운 일이다.


(범인의 모친이 범죄자였다는 사실을 알려준)

남괘전 영감님이 아니었다면 아직까지 미명에서 헤매고 있었을거야.

사건 해결의 진정한 공로는 그 할아버지야.

결국, 주인공이(이 분도 변호사다) 용의자의 범위를 설정하는 근거는

조상의 범죄 이력이고, 그게 없어서 진짜 범인은 의심하지도 않았었다는 말이다.




사건의 해결부에 이런 식의 '범죄자의 자손은 범죄 예비군'이라는 편견이 많아 무섭다면,

도입부에서는 인물을 설명하는 부분에는 나이와 성별, 직업에 대한 고정관념이

한 페이지를 넘기기가 무서울 정도로 많았다.


일단, 여성 인물에게는 '사람'이라는 명사를 쓰지 않는다.


12) -남광자에 대한 묘사(여인네)

60세 정도 되어 보이는 여인네가 송구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나이가 무색하게 허리가 잘록하게 들어간 세랸된 물빛 시스루 블라우스를 걸친 그녀는...


96) -서해리에 대한 묘사(여자)

개성만은 확실한 여자라고 고진은 생각했다. ...

서해리는 굉장히 강한 자의식과 극단적인 개인주의로 무장한 여자였다.


103) -김청희에 대한 묘사(여자)

"김청희란 여자는 어떤 여자야?"

"당시엔 36세였고, 남편이 있는 여자예요.

능력 있는 커리어우먼으로 인정받고 잘나가는 여자랍니다...."


오직, 남자만 그냥 '사람'이다.

58) -서형일에 대한 묘사(사람)

흰색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의 서형일은 

역삼각형의 얼굴에 팔자눈썹, 입가에 깊이 팬 법령이 사람 좋은 인상을 풍겼는데,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당당한 체격이 인상적이었다.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답게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고 손님을 맞이해 

상대편에게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또, 앞의 묘사와 같이, 

남성 인물에 대한 묘사는 외면을 통해 그 사람의 성격과 내면을 추측하지만,

여성 인물에 대한 묘사는 외면에 대한 묘사와 미모에 대한 평가로 마친다.

30) -남진희에 대한 묘사(여인,미인)

양 볼의 피부는 하얗다 못해 투명했고,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눈썹아래에서 반짝였다.

그 아래로는 도톰한 코와 작은 입술이 오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더할 수도, 뺄 수도, 고칠 수도 없는 선이었다.

신묘한 붓놀림으로 그린 듯한 얼굴에 웃는 듯 마는 듯 수줍은 미소를 머금은 모습이

신비로움과 포근함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고진은 이 아름다운 여인에 감동하여...

... 세상의 수많은 사진과 명화는 

이런 특별한 미인과 대면하는 순간을 영원으로 포착하기 위한 것이 아니던가.

-- 수많은 사진과 명화의 목적인 저런 것이었는지 몰랐다.


90)

김해련이 집을 나가기 전인 40대에 찍은 사진인 듯했다.

이미 저물어버린 나이였지만, 한때는 인근 남성들의 마음을 울렸을만한 청순한 미모가 엿보였다.


94)

얼굴은 미인축에 든다고 할 만하나 서태황이나 서두리의 잔상이 느껴지는

억센 선과 툭 불거진 광대뼈가 강한 음영을 주어 

완만한 곡선을 선호하는 고진에게는 부담스러웠다.

-- 단지 수사대상이어도 여성은 얼굴이 취향에 맞아야 하는건가.


111)

"아니, 증거는 전혀 없어. 그냥 추측이야.

그래도 남자가 그 정도 돌 일은 그거 하나지.

이분희 얼굴이 엄청 예뻤잖아.

그런 여잔 반드시 얼굴값을 한다고."

-- 이 말을 한 사람은전직 경찰이다.


그리고 남자는 장애가 있고, 돈을 못벌면, 짐만 되기에, 사랑 할 가치가 없단다.

(앞서 나온 남진희도 신체가 불편하고, 돈을 못 번다.)


100)

김병윤은 물론 인물도 좋고, 훤칠한 남자이기는 하다.

하지만 첫인상은 좀 맹해보였고, 변변한 경제활동도 않으며,

신체도 불편하여 같이 살아봤자 짐만 될 남자로 보였다.

서해리가 절세미녀는 아니지만

늘씬한 몸매와 쿨한 성격은 많은 남자들의 시선을 받기에 충분한데

왜 저 남자를 택했을까.


아래는 뭐 이제는 진부한 표현들이다.


39)
남자의 정신영역에는 영원히 철들지 않는 부분이 있다.

60)
서형일이 냉장고에서 캔 음료수를 몇 개 꺼내왔다.
집안에 여자가 없으니 차 대접 따위의 센스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안주인 노릇을 했을 서해리마저 남자친구와 동거한다며 나가버렸으니
더더욱 집안이 썰렁해 보이는 것이다.
-- 남자가 준 캔음료수로는 만족 할 수가 없는건가.

68)
"집안에 여성이 없으니 전원 버튼이 없는 기계 같네요.
성능은 좋은데 돌아가지가 않는...."
...
"남자 세 분이서 이 큰집에 사시는 데 힘드시겠어요.
식사문제 같은게 클 텐데 특히...."

76)
"참 남자로서는 드문 다정다감한 성격이시네요."

293)
바로 곁에서 본 누이동생 남광자의 이야기니까 틀림없어.
여자들은 그런 느낌은 정확하지 않은가.
-- 여자라서 그런 느낌'은' 신뢰한다면, 다른 건....

380)
여성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두툼한 가방
-- 굳이 적자면, 커다란 남성용 가방 정도로 적어도 되지 않았을까.


이번 책에서는 중간에 읽기를 포기할까 고민할 정도로 불편했지만,

(혹시 뒤에서 뒤집으려고 일부러 이런 서술을 고집하셨나 싶어서 끝까지 봤다.)


예전에 읽은 이야기들(집필 시점은 더 최신임)은 이렇게까지 불편하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이런 불편함은 이 소설에서 끝난 거라고 믿고 싶다.

찾아 읽어야겠다고 결심했었던 작가님이시니까..



김병윤은 물론 인물도 좋고, 훤칠한 남자이기는 하다.
하지만 첫인상은 좀 맹해보였고, 변변한 경제활동도 않으며,
신체도 불편하여 같이 살아봤자 짐만 될 남자로 보였다.
서해리가 절세미녀는 아니지만
늘씬한 몸매와 쿨한 성격은 많은 남자들의 시선을 받기에 충분한데 왜 저 남자를 택했을까.
-- 남자여자 모두까기 --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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