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늘 가는 카페에 앉아 랩톱을 열고 쓰다 만 글을 쓰고 있었다. 라떼는 차갑게 식어 거품이 굳어 있었고 오후 해는 느릿느릿 서쪽 하늘을 향해 밀려가고 있었다. 이것저것, 몇 안 되는 조각들을 어떻게든 이어보려고 애를 쓰고 있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음만 먹으면 뭐든 될 것 같은 성급한 예감은 그저 예감의 언저리만을 끝없이 맴도는 현실로 되풀이되고 있었다. 그때였다.
<혹시, 저녁에 공연 보실 수 있으세요?> 외로운 듯 몸을 떤 휴대전화는 간단한 한 줄의 문장을 빛내고 있었다. ‘아니, 이건, 설마.’ 보고 싶었던 공연이 매진되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양도게시판에 간절한 마음의 글을 올려놓은 게 기억이 났다. 하지만 공연 당일이 되도록 게시판에 올려놓은 글에는 어떤 대답도 없었고 익숙한 카페에서 익숙한 듯 성급한 예감의 언저리에서 맴돌기만 하던 그도 그토록 바랐던 공연 당일이라는 사실조차 거의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러니 양도게시판 따위는 이미 안중에도 없었는데 이게 뭔가. 글이 되든 말든, 예감이고 말고 할 것 없이 그는 다시금 문장을 뜯어보며 천천히, 조심스레 답장을 보냈다. <그러니까, 오늘 저녁 그 공연 말입니까?> 보내기 버튼을 누른 그는 메시지가 자신의 휴대전화를 떠나가는 모습을 쳐다보며 질책하듯 중얼거렸다. ‘이런 멍청한, 이 따윌 왜 물어!’ 그래서 곧장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암요, 갈 수 있고 말고요!!!> 평소에 잘 쓰지 않는 느낌표를 세 개씩이나 붙여서! 그때부터 그야말로 시간은 그에게 피부에 닿고 있는 에어컨 바람만큼이나 실질적으로 다가왔다. 거의 촉감적이었다. 그리고 몇 분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네, 일행이 사정이 생겨 한 장이 남네요. 괜찮으시면 공연장 로비에서 표를 드리도록 하죠.>
급하게 집으로 돌아가 랩톱을 던져두고 행여 공연시간에 늦을까 발길을 재촉하던 그는 다소 돌아가는 전철 대신 버스를 택했다. 헌데 이게 뭔가. 아직 본격적인 퇴근 시간이 되기 전인데 길이 왜이리 막히는 것인가. ‘이런 지긋지긋한 도시의 삶이라니!’ 욕설을 내뱉듯 중얼거린 그의 시선 너머로 해가 지고 있었다. 도시를 가까스로 붉게 물들인 고운 빛깔의 해는 어느새 도시의 불빛에 자리를 내주고는 내일을 기약했다. 석양의 흥취에 빠지는 것도 잠시, 이런, 시간이 촉박했다. 하지만 시간의 촉박함과는 아무 상관 없다는 듯 남은 거리는 확연히 줄어들지 않고 있었는데 여차하면 공연 시간을 맞추지 못할 수도 있었다. 답답한 버스 안에서 이리저리 궁리를 한 끝에 그는 가까운 전철역이 있는 정류장에서 내리기로 하고는 거듭 시간을 확인했다.
M역에 전철이 서고, 도어가 열리자마자 그는 걸음을 서둘러 공연장으로 향했다. 가는 길 곳곳에는 오늘의 공연을 알리는 포스터들이 정갈하게 붙어 있었다. ‘드디어, 이제서야, 그녀의 공연을 보게 되다니.’ 공연장으로 오는 버스에서의 안절부절은 이미 그의 것이 아니었고 이제는 공연에 대한 기대만이 그를 온전히 사로잡고 있었다.
공연장 로비에 들어가며, 그는 휴대전화를 꺼내 메시지에 반짝거리며 빛나고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통화연결음이 흐르더니 이내 두툼한 입술을 연상케 하는 목소리의 여성이 전화를 받았다. 검은 원피스에 투명 비닐팩을 들고 있다고 말한 여성을 찾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는 오랜 친구를 만나는 듯한 반가움으로 그 여성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고는 표를 건네받았다. 환한 표정으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양도 받은 표를 바라보며 돌아서는 그는 걸음이 쉬 앞으로 나아가지 않음을 느꼈다. ‘왜 이러지.’ 순간 그는 무언가로 세게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가슴이 저려왔다.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공연을 보게 됐는데 그걸 가능케 해준 분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로 그친 게 마음에 걸린 거였다. ‘공연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 흥분해 고마움을 전할 방법을 미처 생각을 못했군. 아, 이를 어쩌지.’ 속으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빠르게 고민하던 그는 신속하게 돌아서 일행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여성에게 말을 건넸다.
“저기, 괜찮으시면 커피 한 잔 대접하고 싶은데요.”
“괜찮습니다. 낮에 커피를 마셨거든요.”
“그래도 너무 고마워서 그런데, 그럼 커피 아닌 다른 음료는 어떠세요?”
“아니요. 정말 괜찮습니다. 공연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는걸요.”
여성은 웃으며 대답을 했지만 그는 자신의 보답이 이미 늦었고 너무 약소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괴로움마저 스미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공연 시간이 거의 다 됐기에 더는 얘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입장이 시작되고, 여성의 일행 자리에 앉게 된 바람에 여성과 나란히 앉게 된 그는 거듭 밀려드는, 이제는 미안해진 마음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하지만 공연 도중에 말을 거는 건 실례라고 생각되어 그토록 보고 싶었던 공연을 보면서도 어떻게 사과(그는 이미 미안해진 마음은 우선 사과로 풀어야 한다고 굳게 믿었기에)를 하고 보답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만 골몰히 생각했다. 귀로는 어떤 소리도 감지되지 않았다. 자신이 공연장에 앉아 있는 건지, 어두컴컴한 다락방에 처박혀 있는 건지 구분도 되지 않았다. 그저 단 한 가지. 이토록 불편한 마음을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 이런 마음 앞에 무의미하기만 한 이놈의 공연은 대체 언제 끝나는지에 대해서만 조급하게 신경을 썼다. ‘우선 공연이 끝나면 사과를 먼저 하자. 너무 무례했다고. 고마움에 대한 보답을 미처 생각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그런 다음 어떻게 해 드리면 좋을지 물어보자.’
그의 안절부절못하는 이러한 모습을 옆자리에 앉은 여성이 흘끗흘끗 보는 것으로 보아 여성 또한 그 못지않게 공연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잠시 공연이 중단된 사이, 참지 못한 그는 소근대는 목소리로 여성에게 말을 했다.
“저기,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미처 보답할 생각을 못해서요. 하마터면 공연에 늦을 뻔해서 미리 생각을 못했습니다. 정말 죄송해요.”
여성은 뜬금없는 그의 사과에 당황한 듯 표정이 굳어졌다. 그러고는 말했다.
“정말 괜찮다니까 왜 자꾸 그러세요. 공연에 집중이 안 되잖아요.”
한없이 어렵고 무뚝뚝한 직장 상사에게서나 볼 법한 그런 표정이었다. 여성의 그러한 표정을 보게 된 그는 여성보다 더 당황해 하며 이제는 보답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고 어떻게 하면 여성이 사과를 받아들일까, 에 대해서만 궁리했다. ‘이런 내 실수가 분명하군. 여성이 기분이 상했을 게 분명해. 이를 어쩐담.’ 하지만 이내 시작된 공연 때문에 더 말을 걸지 못한 그는 사뭇 심각한 표정으로 오로지 ‘사과'에 대해서만 생각을 했다. 어찌나 ‘사과'에 대한 생각에 집중을 했던지 어느새 그의 이마엔 땀이 맺히고 얼굴은 창백해졌다.
공연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던 그는 어느새 이마에 줄줄 흐르는 땀을 훔치며 의자에 달린 팔걸이를 꽉 붙잡고 있었다. 드디어 공연이 끝나고, 그는 이제는 힘껏 용기를 내어 여성을 보며 말을 했다.
“저기, 불쾌하게 해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우선 제 사과를 받아주시면..”
그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의자에서 일어서던 여성은 짜증스런 표정으로 그를 보며 말했다.
“아니, 정말 괜찮다는데 자꾸 그러시는 이유를 모르겠네요. 그쪽 때문에 공연에 집중하지도 못했잖아요. 뭡니까 대체 이게.”
그는 여성의 말을 듣자 어지러움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서려다 그만 기절하고 말았다. 깨어나니 어느 병원 응급실이었고 그런 그를 보며 괜찮으냐고 묻는 간호사는 검은 원피스를 입은 여성이 전해주라고 했다며 하얀 메모지를 건넸다. 메모지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정말 이상한 분이시네요. 어차피 버리게 된 표를 드린 것뿐인데 그게 그렇게 고맙다면 그저 행운이라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누구도 행운에 보답을 할 순 없으니까요. 그럼.>
메모를 읽은 그는 고통스러운 듯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눈을 감았고, 감은 눈 사이로는 기다렸다는 듯 투명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2014. 6. 15. 계동, 더블컵커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