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엔 돌아오렴 -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
416 세월호 참사 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엮음 / 창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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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가까이에서, 아니 더 가까울 수 없는 거리에서의 간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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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 이오덕과 권정생의 아름다운 편지
이오덕.권정생 지음 / 양철북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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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살아가는 따뜻함을 여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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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일기
다니엘 페나크 지음, 조현실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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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최고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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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늘 가는 카페에 앉아 랩톱을 열고 쓰다 만 글을 쓰고 있었다. 라떼는 차갑게 식어 거품이 굳어 있었고 오후 해는 느릿느릿 서쪽 하늘을 향해 밀려가고 있었다. 이것저것, 몇 안 되는 조각들을 어떻게든 이어보려고 애를 쓰고 있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음만 먹으면 뭐든 될 것 같은 성급한 예감은 그저 예감의 언저리만을 끝없이 맴도는 현실로 되풀이되고 있었다. 그때였다.

<혹시, 저녁에 공연 보실 수 있으세요?> 외로운 듯 몸을 떤 휴대전화는 간단한 한 줄의 문장을 빛내고 있었다. ‘아니, 이건, 설마.’ 보고 싶었던 공연이 매진되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양도게시판에 간절한 마음의 글을 올려놓은 게 기억이 났다. 하지만 공연 당일이 되도록 게시판에 올려놓은 글에는 어떤 대답도 없었고 익숙한 카페에서 익숙한 듯 성급한 예감의 언저리에서 맴돌기만 하던 그도 그토록 바랐던 공연 당일이라는 사실조차 거의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러니 양도게시판 따위는 이미 안중에도 없었는데 이게 뭔가. 글이 되든 말든, 예감이고 말고 할 것 없이 그는 다시금 문장을 뜯어보며 천천히, 조심스레 답장을 보냈다. <그러니까, 오늘 저녁 그 공연 말입니까?> 보내기 버튼을 누른 그는 메시지가 자신의 휴대전화를 떠나가는 모습을 쳐다보며 질책하듯 중얼거렸다. ‘이런 멍청한, 이 따윌 왜 물어!’ 그래서 곧장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암요, 갈 수 있고 말고요!!!> 평소에 잘 쓰지 않는 느낌표를 세 개씩이나 붙여서! 그때부터 그야말로 시간은 그에게 피부에 닿고 있는 에어컨 바람만큼이나 실질적으로 다가왔다. 거의 촉감적이었다. 그리고 몇 분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네, 일행이 사정이 생겨 한 장이 남네요. 괜찮으시면 공연장 로비에서 표를 드리도록 하죠.>

급하게 집으로 돌아가 랩톱을 던져두고 행여 공연시간에 늦을까 발길을 재촉하던 그는 다소 돌아가는 전철 대신 버스를 택했다. 헌데 이게 뭔가. 아직 본격적인 퇴근 시간이 되기 전인데 길이 왜이리 막히는 것인가. ‘이런 지긋지긋한 도시의 삶이라니!’ 욕설을 내뱉듯 중얼거린 그의 시선 너머로 해가 지고 있었다. 도시를 가까스로 붉게 물들인 고운 빛깔의 해는 어느새 도시의 불빛에 자리를 내주고는 내일을 기약했다. 석양의 흥취에 빠지는 것도 잠시, 이런, 시간이 촉박했다. 하지만 시간의 촉박함과는 아무 상관 없다는 듯 남은 거리는 확연히 줄어들지 않고 있었는데 여차하면 공연 시간을 맞추지 못할 수도 있었다. 답답한 버스 안에서 이리저리 궁리를 한 끝에 그는 가까운 전철역이 있는 정류장에서 내리기로 하고는 거듭 시간을 확인했다.

M역에 전철이 서고, 도어가 열리자마자 그는 걸음을 서둘러 공연장으로 향했다. 가는 길 곳곳에는 오늘의 공연을 알리는 포스터들이 정갈하게 붙어 있었다. ‘드디어, 이제서야, 그녀의 공연을 보게 되다니.’ 공연장으로 오는 버스에서의 안절부절은 이미 그의 것이 아니었고 이제는 공연에 대한 기대만이 그를 온전히 사로잡고 있었다.

공연장 로비에 들어가며, 그는 휴대전화를 꺼내 메시지에 반짝거리며 빛나고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통화연결음이 흐르더니 이내 두툼한 입술을 연상케 하는 목소리의 여성이 전화를 받았다. 검은 원피스에 투명 비닐팩을 들고 있다고 말한 여성을 찾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는 오랜 친구를 만나는 듯한 반가움으로 그 여성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고는 표를 건네받았다. 환한 표정으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양도 받은 표를 바라보며 돌아서는 그는 걸음이 쉬 앞으로 나아가지 않음을 느꼈다. ‘왜 이러지.’ 순간 그는 무언가로 세게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가슴이 저려왔다.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공연을 보게 됐는데 그걸 가능케 해준 분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로 그친 게 마음에 걸린 거였다. ‘공연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 흥분해 고마움을 전할 방법을 미처 생각을 못했군. 아, 이를 어쩌지.’ 속으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빠르게 고민하던 그는 신속하게 돌아서 일행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여성에게 말을 건넸다.

“저기, 괜찮으시면 커피 한 잔 대접하고 싶은데요.”

“괜찮습니다. 낮에 커피를 마셨거든요.”

“그래도 너무 고마워서 그런데, 그럼 커피 아닌 다른 음료는 어떠세요?”

“아니요. 정말 괜찮습니다. 공연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는걸요.”

여성은 웃으며 대답을 했지만 그는 자신의 보답이 이미 늦었고 너무 약소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괴로움마저 스미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공연 시간이 거의 다 됐기에 더는 얘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입장이 시작되고, 여성의 일행 자리에 앉게 된 바람에 여성과 나란히 앉게 된 그는 거듭 밀려드는, 이제는 미안해진 마음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하지만 공연 도중에 말을 거는 건 실례라고 생각되어 그토록 보고 싶었던 공연을 보면서도 어떻게 사과(그는 이미 미안해진 마음은 우선 사과로 풀어야 한다고 굳게 믿었기에)를 하고 보답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만 골몰히 생각했다. 귀로는 어떤 소리도 감지되지 않았다. 자신이 공연장에 앉아 있는 건지, 어두컴컴한 다락방에 처박혀 있는 건지 구분도 되지 않았다. 그저 단 한 가지. 이토록 불편한 마음을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 이런 마음 앞에 무의미하기만 한 이놈의 공연은 대체 언제 끝나는지에 대해서만 조급하게 신경을 썼다. ‘우선 공연이 끝나면 사과를 먼저 하자. 너무 무례했다고. 고마움에 대한 보답을 미처 생각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그런 다음 어떻게 해 드리면 좋을지 물어보자.’

그의 안절부절못하는 이러한 모습을 옆자리에 앉은 여성이 흘끗흘끗 보는 것으로 보아 여성 또한 그 못지않게 공연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잠시 공연이 중단된 사이, 참지 못한 그는 소근대는 목소리로 여성에게 말을 했다.

“저기,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미처 보답할 생각을 못해서요. 하마터면 공연에 늦을 뻔해서 미리 생각을 못했습니다. 정말 죄송해요.”

여성은 뜬금없는 그의 사과에 당황한 듯 표정이 굳어졌다. 그러고는 말했다.

“정말 괜찮다니까 왜 자꾸 그러세요. 공연에 집중이 안 되잖아요.”

한없이 어렵고 무뚝뚝한 직장 상사에게서나 볼 법한 그런 표정이었다. 여성의 그러한 표정을 보게 된 그는 여성보다 더 당황해 하며 이제는 보답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고 어떻게 하면 여성이 사과를 받아들일까, 에 대해서만 궁리했다. ‘이런 내 실수가 분명하군. 여성이 기분이 상했을 게 분명해. 이를 어쩐담.’ 하지만 이내 시작된 공연 때문에 더 말을 걸지 못한 그는 사뭇 심각한 표정으로 오로지 ‘사과'에 대해서만 생각을 했다. 어찌나 ‘사과'에 대한 생각에 집중을 했던지 어느새 그의 이마엔 땀이 맺히고 얼굴은 창백해졌다.

공연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던 그는 어느새 이마에 줄줄 흐르는 땀을 훔치며 의자에 달린 팔걸이를 꽉 붙잡고 있었다. 드디어 공연이 끝나고, 그는 이제는 힘껏 용기를 내어 여성을 보며 말을 했다.

“저기, 불쾌하게 해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우선 제 사과를 받아주시면..”

그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의자에서 일어서던 여성은 짜증스런 표정으로 그를 보며 말했다.

“아니, 정말 괜찮다는데 자꾸 그러시는 이유를 모르겠네요. 그쪽 때문에 공연에 집중하지도 못했잖아요. 뭡니까 대체 이게.”  

그는 여성의 말을 듣자 어지러움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서려다 그만 기절하고 말았다. 깨어나니 어느 병원 응급실이었고 그런 그를 보며 괜찮으냐고 묻는 간호사는 검은 원피스를 입은 여성이 전해주라고 했다며 하얀 메모지를 건넸다. 메모지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정말 이상한 분이시네요. 어차피 버리게 된 표를 드린 것뿐인데 그게 그렇게 고맙다면 그저 행운이라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누구도 행운에 보답을 할 순 없으니까요. 그럼.>

메모를 읽은 그는 고통스러운 듯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눈을 감았고, 감은 눈 사이로는 기다렸다는 듯 투명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2014. 6. 15. 계동, 더블컵커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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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계절에 비켜서 있을 수는 없어요. 봄이나 가을이라면 더욱 그렇죠.


K의 편지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모든 게 어긋나 버립니다. 길게 쓴다는 게 과연 쓸모 있는 일인지에 대해 며칠 고민을 했습니다. 짧게 쓰겠습니다.  


전철역으로 걸어가던 그는 바로 앞에 걷고 있는 남성의 털이 수북한 종아리를 보며 흠칫 놀랐다. 아직 아래위 모두 짧은 옷을 입기엔 이른 날씨지만 어느새 계절이 봄의 한가운데로 깊숙이 진입해 있다는 걸 실감했기 때문이었다. 무심코 그는 자신의 옷차림을 살펴보았다. 계절에 구애받지 않은 운동화에 색이 빠질 대로 빠진 진, 얇은 긴팔 두 겹. 그러고 보니 집을 나설 때 무의식적으로 되뇌기도 했다. ‘오늘은 조금 더운걸.’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계절을 실감하는 걸까. 그는 늘 궁금했지만 스치는 사람 어느 누구에게도 차마 물어보지 못한 채 입안에 계속 머무르고 있는 말을 혼자 중얼거렸다.


봄입니까?


주변을 수놓았던 꽃들이 모두 지고 녹음이 돋아나는 듯싶더니 어느새 늘 다니던 길이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무성하게 나무를 뒤덮었습니다. 생명은 태어났고 마음껏 제 색을 발휘하기 시작했지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봄이 새 생명이 활짝 피어오르는 계절이라 하더라도, 그래서 주변이 온갖 희망찬 신호들로 가득하더라도 이번 봄은 결코 그렇지가 않습니다. 우리의 흐릿한 두 눈은 무엇을 보고 무엇에 분노하며 무엇을 찾아 헤매야 할까요? 이토록 계절을 실감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우린 깊디깊은 침묵을 강요받고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완연한 봄이라 믿고 말하고 쓰기엔 뭔가 마땅찮은 분위기가 있었다. 쓰러지듯 쏟아지는 햇살과 가벼이 불어대는 산들바람과는 대조적인 무언가 있었다. 그는 대체 그것의 근원이 무엇일까, 이토록 거부할 수 없는 봄인데도 봄이라고 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이것은 대체 무엇일까, 한참을 생각하고 두리번거린 끝에 가까스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계절과 옷차림과는 다르게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반쯤 숙이고 있었고 겨우 들여다볼 수 있는 그들의 표정은 침울하기 그지없었다. 그래, 그것이었다. 그것 때문이었다. 그는 이제는 꽃이 다 져버린 벚나무 사이를 지나며 거칠게 떠올랐던 생각들을 다듬어본다. 그러고는 다시금 되뇐다.  


봄입니까?


눈앞에 어른거리는 환영들을 하나둘 붙들고 나지막히 물어봅니다. 대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너는 대답을 알고 있지 않느냐고. 대답이 없습니다. 그렇게 아무것 하지 못하고 응어리진 시간들이 점점 커져 이제는 저 거대한 나무와 같아졌습니다. 생명으로만 보이던 그것 역시 응어리진, 한맺힌 시간들에 불과합니다.


어딘선가 희미하게 노래 선율이 들려온다. 차츰 스미는 듯하던 그 선율은 어느새 손에 잡힐 듯 가까워지더니 곧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신사모자를 쓴,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 한 분이 카세트데크가 매달린 손수레를 끌며 추억의 명곡이 담긴 팝시디 모음집을 팔기 위해 그가 타고 있는 칸으로 이동해 온 것이다.


starry, starry night

paint your palette blue and gray  

look out on a summer’s day

with eyes that know the darkness in my soul…

now i think i know

what you tried to say to me

and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and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they would not listen, they’re not listening still

perhaps they never will


노래가 끝이 나고, 한참이 지난 듯한 잠깐 동안 그는 가벼운 몽상에 빠졌다. 지금처럼 햇살이 좋았던 어느 날이었다. K가 물었다. 고흐의 그림 중 어느 것을 좋아하느냐고. 그때 그는 고흐의 수많은 그림들을 떠올렸었다. 그리고 그 중 단 한 장의 그림을 자신의 방에 걸어둘 수 있다면, 이라는 그물을 치고 거기에 최종적으로 걸리는 단 한 점의 그림을 건져올렸다. <Almond blossom>이라고. 고흐의 유명한 그림만 알고 있는 이라면 잘 모를 그런 그림이었다. 하지만 그는 어쩐지 그 그림이 마음에 들었다. 그밖에 고흐의 다른 꽃 그림들도 좋았지만 유독 그 그림이 그는 좋았다. 눈을 떴다. 그런데 이상했다. 검은 신사모자를 쓴 할아버지는 시디를 팔 생각은 않고 노약자석에 바른 자세로 가만히 앉아 계셨다. 노래도 더는 흐르지 않았고, 고요한 가운데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전철 소리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정거장에서 전철이 멈춰서고, 문이 열리자 검은 신사모자를 쓴 할아버지는 조용히 일어서 손수레를 끌고는 세상 밖으로, 마치 그곳이 그가 오랫동안 기다려온 종착역이라도 되는 듯 유유히 사라졌다. 꿈이었을까.


어제는 거리에 나가 보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더군요. 시끄럽게 무언가 큰 소리로 한참을 외치더니 거리 행진을 시작하였습니다. 멀뚱히 쳐다만 보다 행렬을 좇아 걷기 시작했습니다. 대열에 합류해 걸으며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래도 저래도 결국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곳에서 모든 게 변할 것만 같은 세상은 결코 그렇게 호락호락한 게 아니다, 그렇게 쉽게 바뀔 리 없다, 라는 생각이 먼저 들더군요. 그건 경험이었고 과거였습니다. 먼 과거로부터 이어온 역사의 반복인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이상하다고, 사람들은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여 걸으면서도 희한할 정도로 자신들이 가는 길을 제대로 찾아가는 듯보였다고, 그는 전철에 오르기 전의 사람들 모습을 떠올리며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에 대해 생각이 미치자 순간 가볍게 몸이 떨림을 느낀다. 지긋지긋하고 꽉 막힌 듯보이는 일상이 끌고 가는 힘의 엄중함이 새삼스러운 건 아니었지만 그는 여전히 떨리는 몸을 추스르며 ‘그래도 현실, 현실이지..’ 라고 거듭 혼잣말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거리로 뛰쳐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거리에서 호흡을 해야 합니다. 한 불행했던 시인은 이렇게 말을 했지요. ‘거리의 상상력은 고통이었고 나는 그 고통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잠언이 자연 속에 있음을 지금도 나는 믿는다.’ 라고. 그를 ‘불행했던' 시인이라고 말한 건 지금 이 시대가 시인에게 주는 사랑이 그가 살았던 때보다 더욱 크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행복하여야 합니다. 죽은 뒤 아무리 큰 사랑을 받은들 무엇합니까? 지금 이 순간 행복하여야 합니다.


그의 주머니 속엔 K의 편지가 들어있었다. K의 편지는 모호함으로 가득했지만 그는 그러한 모호함이 일종의 방향 표시라도 되는 듯 편지를 읽자마자 전철을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모든 건 그대로였다. 외투를 벗어던지듯, 그렇게 계절이 바뀌고 바람이 스치듯 시간이 지나가면 금방이라도 세상이 바뀔 듯한 떠들썩함도 금세 수그러들고 말 것이다. 이제껏 그래왔듯. ‘이것 또한 지나가 버리고 말 거야, 그건 시간이 늘상 해 오던 말이지, 아주 오랫동안. 그리고 계절이 돌아오듯 다시 이맘때가 되면 잠시 모두에게 침묵이 강요되겠지, 그뿐이다, 그게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다.’ 그렇게 그가 세상을 체념하는 사이 어느새 전철은 종착역을 향해 가고 있었다.


거리로 뛰쳐나와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다름 아닌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각자는 존엄성을 지닌, 서로 의지하며 더불어 살아가야 할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인간의 존엄성을 배척하거나 외면한다면 그 칼날은 결국 우리 자신에게로 되돌아올 것입니다. 더는 다른 이유가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로서 우리를 위해 우리답게 살기 위하여 거리로 뛰쳐나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그곳에서 K가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2014. 5. 26. 당신의 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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