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계절에 비켜서 있을 수는 없어요. 봄이나 가을이라면 더욱 그렇죠.


K의 편지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모든 게 어긋나 버립니다. 길게 쓴다는 게 과연 쓸모 있는 일인지에 대해 며칠 고민을 했습니다. 짧게 쓰겠습니다.  


전철역으로 걸어가던 그는 바로 앞에 걷고 있는 남성의 털이 수북한 종아리를 보며 흠칫 놀랐다. 아직 아래위 모두 짧은 옷을 입기엔 이른 날씨지만 어느새 계절이 봄의 한가운데로 깊숙이 진입해 있다는 걸 실감했기 때문이었다. 무심코 그는 자신의 옷차림을 살펴보았다. 계절에 구애받지 않은 운동화에 색이 빠질 대로 빠진 진, 얇은 긴팔 두 겹. 그러고 보니 집을 나설 때 무의식적으로 되뇌기도 했다. ‘오늘은 조금 더운걸.’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계절을 실감하는 걸까. 그는 늘 궁금했지만 스치는 사람 어느 누구에게도 차마 물어보지 못한 채 입안에 계속 머무르고 있는 말을 혼자 중얼거렸다.


봄입니까?


주변을 수놓았던 꽃들이 모두 지고 녹음이 돋아나는 듯싶더니 어느새 늘 다니던 길이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무성하게 나무를 뒤덮었습니다. 생명은 태어났고 마음껏 제 색을 발휘하기 시작했지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봄이 새 생명이 활짝 피어오르는 계절이라 하더라도, 그래서 주변이 온갖 희망찬 신호들로 가득하더라도 이번 봄은 결코 그렇지가 않습니다. 우리의 흐릿한 두 눈은 무엇을 보고 무엇에 분노하며 무엇을 찾아 헤매야 할까요? 이토록 계절을 실감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우린 깊디깊은 침묵을 강요받고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완연한 봄이라 믿고 말하고 쓰기엔 뭔가 마땅찮은 분위기가 있었다. 쓰러지듯 쏟아지는 햇살과 가벼이 불어대는 산들바람과는 대조적인 무언가 있었다. 그는 대체 그것의 근원이 무엇일까, 이토록 거부할 수 없는 봄인데도 봄이라고 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이것은 대체 무엇일까, 한참을 생각하고 두리번거린 끝에 가까스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계절과 옷차림과는 다르게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반쯤 숙이고 있었고 겨우 들여다볼 수 있는 그들의 표정은 침울하기 그지없었다. 그래, 그것이었다. 그것 때문이었다. 그는 이제는 꽃이 다 져버린 벚나무 사이를 지나며 거칠게 떠올랐던 생각들을 다듬어본다. 그러고는 다시금 되뇐다.  


봄입니까?


눈앞에 어른거리는 환영들을 하나둘 붙들고 나지막히 물어봅니다. 대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너는 대답을 알고 있지 않느냐고. 대답이 없습니다. 그렇게 아무것 하지 못하고 응어리진 시간들이 점점 커져 이제는 저 거대한 나무와 같아졌습니다. 생명으로만 보이던 그것 역시 응어리진, 한맺힌 시간들에 불과합니다.


어딘선가 희미하게 노래 선율이 들려온다. 차츰 스미는 듯하던 그 선율은 어느새 손에 잡힐 듯 가까워지더니 곧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신사모자를 쓴,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 한 분이 카세트데크가 매달린 손수레를 끌며 추억의 명곡이 담긴 팝시디 모음집을 팔기 위해 그가 타고 있는 칸으로 이동해 온 것이다.


starry, starry night

paint your palette blue and gray  

look out on a summer’s day

with eyes that know the darkness in my soul…

now i think i know

what you tried to say to me

and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and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they would not listen, they’re not listening still

perhaps they never will


노래가 끝이 나고, 한참이 지난 듯한 잠깐 동안 그는 가벼운 몽상에 빠졌다. 지금처럼 햇살이 좋았던 어느 날이었다. K가 물었다. 고흐의 그림 중 어느 것을 좋아하느냐고. 그때 그는 고흐의 수많은 그림들을 떠올렸었다. 그리고 그 중 단 한 장의 그림을 자신의 방에 걸어둘 수 있다면, 이라는 그물을 치고 거기에 최종적으로 걸리는 단 한 점의 그림을 건져올렸다. <Almond blossom>이라고. 고흐의 유명한 그림만 알고 있는 이라면 잘 모를 그런 그림이었다. 하지만 그는 어쩐지 그 그림이 마음에 들었다. 그밖에 고흐의 다른 꽃 그림들도 좋았지만 유독 그 그림이 그는 좋았다. 눈을 떴다. 그런데 이상했다. 검은 신사모자를 쓴 할아버지는 시디를 팔 생각은 않고 노약자석에 바른 자세로 가만히 앉아 계셨다. 노래도 더는 흐르지 않았고, 고요한 가운데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전철 소리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정거장에서 전철이 멈춰서고, 문이 열리자 검은 신사모자를 쓴 할아버지는 조용히 일어서 손수레를 끌고는 세상 밖으로, 마치 그곳이 그가 오랫동안 기다려온 종착역이라도 되는 듯 유유히 사라졌다. 꿈이었을까.


어제는 거리에 나가 보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더군요. 시끄럽게 무언가 큰 소리로 한참을 외치더니 거리 행진을 시작하였습니다. 멀뚱히 쳐다만 보다 행렬을 좇아 걷기 시작했습니다. 대열에 합류해 걸으며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래도 저래도 결국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곳에서 모든 게 변할 것만 같은 세상은 결코 그렇게 호락호락한 게 아니다, 그렇게 쉽게 바뀔 리 없다, 라는 생각이 먼저 들더군요. 그건 경험이었고 과거였습니다. 먼 과거로부터 이어온 역사의 반복인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이상하다고, 사람들은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여 걸으면서도 희한할 정도로 자신들이 가는 길을 제대로 찾아가는 듯보였다고, 그는 전철에 오르기 전의 사람들 모습을 떠올리며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에 대해 생각이 미치자 순간 가볍게 몸이 떨림을 느낀다. 지긋지긋하고 꽉 막힌 듯보이는 일상이 끌고 가는 힘의 엄중함이 새삼스러운 건 아니었지만 그는 여전히 떨리는 몸을 추스르며 ‘그래도 현실, 현실이지..’ 라고 거듭 혼잣말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거리로 뛰쳐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거리에서 호흡을 해야 합니다. 한 불행했던 시인은 이렇게 말을 했지요. ‘거리의 상상력은 고통이었고 나는 그 고통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잠언이 자연 속에 있음을 지금도 나는 믿는다.’ 라고. 그를 ‘불행했던' 시인이라고 말한 건 지금 이 시대가 시인에게 주는 사랑이 그가 살았던 때보다 더욱 크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행복하여야 합니다. 죽은 뒤 아무리 큰 사랑을 받은들 무엇합니까? 지금 이 순간 행복하여야 합니다.


그의 주머니 속엔 K의 편지가 들어있었다. K의 편지는 모호함으로 가득했지만 그는 그러한 모호함이 일종의 방향 표시라도 되는 듯 편지를 읽자마자 전철을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모든 건 그대로였다. 외투를 벗어던지듯, 그렇게 계절이 바뀌고 바람이 스치듯 시간이 지나가면 금방이라도 세상이 바뀔 듯한 떠들썩함도 금세 수그러들고 말 것이다. 이제껏 그래왔듯. ‘이것 또한 지나가 버리고 말 거야, 그건 시간이 늘상 해 오던 말이지, 아주 오랫동안. 그리고 계절이 돌아오듯 다시 이맘때가 되면 잠시 모두에게 침묵이 강요되겠지, 그뿐이다, 그게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다.’ 그렇게 그가 세상을 체념하는 사이 어느새 전철은 종착역을 향해 가고 있었다.


거리로 뛰쳐나와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다름 아닌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각자는 존엄성을 지닌, 서로 의지하며 더불어 살아가야 할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인간의 존엄성을 배척하거나 외면한다면 그 칼날은 결국 우리 자신에게로 되돌아올 것입니다. 더는 다른 이유가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로서 우리를 위해 우리답게 살기 위하여 거리로 뛰쳐나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그곳에서 K가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2014. 5. 26. 당신의 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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