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스크로 가는 기차 (양장)
프리츠 오르트만 지음, 안병률 옮김, 최규석 그림 / 북인더갭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이 원한 것이 곧 그의 운명이고, 운명은 곧 그 사람이 원한 것이랍니다. 그 모든 순간마다 당신은 당신의 운명을 선택한 것이지요.

 

이 문장을 두고 긴 말은 필요없다. 일상 속에서 우리가 무수히도 탓하곤 하는 우리 대부분의 삶은 어쨌거나 만들어진 것이지 이미 만들어져 있었던 건 아니다. 루쉰도 말하지 않았던가, 길은 원래부터 있는 게 아니라 걸으며 만들어지는 거라고. 그러면서도, 이 뻔한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마치 무의식적으로 토요일이 되면 로또를 사는 것처럼 우리는 '운명'을 마치 이제는 내 차례라도 되는 것마냥 어색한 희망으로 기다린다. '운명'을 말이다. 


로또를 한 번도 사본 적 없는 나 역시 비슷한 희망으로 일상을 영위하고 있고, 일상을 탓하고 있으며 나 자신의 무기력을 이제는 거부할 수 없는 내 것인양 질질 끌고 다니며 거리를 방황하고 있다. '운명'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어리석었던 것이다. 어리석었던 나는 내 선택의 결과를 끝내 부정하고 있었고, 언젠가 우연히 아주 급진적으로 내 삶이 송두리째 바뀔 것이라고, 그러한 날이 반드시 올 거라고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 이제는 오래된 상태로 이 책을 만나게 되었는데, 저 문장을 읽자마자 나는 책장을 잠시 덮고 뜨거워진 눈시울을 다독이며 생을 반추하였다. 나는 어리석었던 것이다. 


현재가 내 생의 일부이기를 거부해왔던 나는 이 책을 만난 이후 비로소 보잘것없게만 여겨졌던 지금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이를 온전히 의식하며 언젠가의 내 앞에 펼쳐질 순수한 풍경을 고대하며 작은 집을 짓는 마음으로 생을 대하고 있다. 쓸쓸하고 높고 의젓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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