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버씨의 죽음 - 갈아넣고 쥐어짜고 태우는 일터는 어떻게 사회적 살인의 장소가 되는가
김영선 지음 / 오월의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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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에서 첫 번째로 읽은 책은 <존버씨의 죽음(김영선 지음)>이다. ‘갈아넣고 쥐어짜고 태우는 일터는 어떻게 사회적 살인의 장소가 되는가’라는 부제처럼 이 책은 과로죽음에 대해 다룬다. 과로죽음이라고 하면 흔히 과로사를 떠올리지만 책에서는 과로와 실적압박 등 업무적 부담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과로자살도 과로죽음에 포함하고 있다. 크런치 모드(게임 출시 전 몇 주에서 몇 달에 이르기까지 야근+밤샘근무 기간), 반프리(정규직/프리랜서 이중계약 형태), 화출화착(콜센터 노동자가 화장실로 출발하고 나올 때마다 메신저로 보고하는 상황), 디졸브(오늘과 내일의 경계가 없을 정도로 장시간 밤샘촬영하는 것), 겸배(집배노동 중 결원이 생기면 그 구역을 동료가 분담해 배달해야하는 상황), 따당(부산-서울 같은 장거리 구간을 하루 만에 왕복 운행해야하는 상황), 클로프닝(밤늦게까지 일하다가 매장 문을 닫고 몇 시간 뒤 새벽에 다시 출근해 문을 열어야 하는 상황) 등 노동자들의 과로노동의 일상을 보여주는 은어다. 대부분 처음 들어봤다. 책에서는 더 많은 용어와 사례가 나오는데 과로의 일상이 은어가 되어 웃픈 용어로 노동자들 사이를 떠돌기까지 얼마나 많은 괴로움이 있었을지 감히 가늠하기 어렵다. 오늘도 너무도 당연하게 일어나고 있을 일들이다.


과로죽음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으로 왜 그렇게 될 때까지 버틴건지, 왜 그만두지 못했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면서 망자의 정신상태나 성격, 의지력 같은 개인특성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저자는 그런 관점들은 ‘죽음과 과로의 연결고리를 최대한 은폐하거나 또는 망자 탓으로 전가(8p)’한다고 지적하며 망자들의 죽음을 ‘더 이상은 이렇게 살 수 없다’는 분노 그리고 탈출행위 혹은 저항행위로 읽어내며 과로죽음을 들여다본다. 이미 수많은 노동자들이 과로로 및 지나친 성과주의, 직장 내 괴롭힘 등의 이유로 죽음을 택하고 있다. 아직 죽음의 단계까지 가진 않았지만 정신적 고통을 토로하는 노동자들은 더 많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는 여전히 정신질환에 대한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만 축소하려는 경향이 있어 문제는 해결되지 못한 채 이유를 알 수 없는 개인의 죽음이 계속된다. 여전히 정신질환이 산재인정을 받으려면 무수한 관문을 거쳐야한다. 업무와의 인과관계가 수학공식처럼 드러날정도로 완전무결해야 일정정도의 승인 가능성이 있는정도다. 기존에 정신질환 진료 경력이 있다면 그 가능성은 더 낮아진다. 우울증을 앓은 적이 있다면 과도한 업무가 주어졌을 때 그 압박으로 질환이 급격히 악화되어도 주된 원인은 기존에 앓고 있던 우울증이 되는 것이다. 우리 또한 그런 결론을 당연하게 생각하진 않았나. 그런데 함께 모임을 하고 있는 숨님께서 원래 허리가 좋지 않아 치료한 전적이 있어도 과중한 업무로 인해 악화되었을 시에도 산재로 인정하는 판례가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그 이야기를 듣고나니 자본주의의 착취 방식은 계속 변형되어가고 있고 그에 따라 노동자들이 겪는 산재 또한 변해가고 있음에도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정신질환은 자본주의적 착취의 변형이라는 맥락에서 출현하는 소외 문제로 독해해야 한다(64p)’는 저자의 관점이 더욱 의미 있게 느껴진다. 사고의 전환이 필요함을 배운다.


과로와 죽음의 연관성을 ‘통상적인’이라는 잣대로 판가름하는 문제에 대한 지적도 인상 깊었다. 예를 들어 업무가 ‘통상적인 수준’이었다거나 ‘자살을 유발할 정도의 업무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보기 어렵다’, ‘00년 차에 극복할 수 없을 정도의 과중한 업무는 아니었다’(233p)는 식의 판단으로 업무와의 연관성이 낮다고 결론내리는 것이다. ‘통상’은 책에서도 설명되어 있듯이 ‘특별하지 않고 늘 예사로 있는 일이나 상태’를 뜻한다고 한다. 이정도의 과로는 특별하지 않다는 기준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 분명한건 ‘통상’은 과로 업무를 해내지 못한 사람을 이상하거나 유별난 존재로 만든다는 것이다. 특별한 과로가 되어야만 업무와의 연관성이 설명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특별한 과로는 무엇인가. 우리도 ‘통상’에 관한 얘길 나눴다. 숨님은 법에서 ‘통상’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며, 그들이 살아온 삶에서의 ‘통상’이 과연 정말 통상적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저자 또한 ‘심히 주관적일 수 있는 ‘통상적’이라는 표현 그 자체는 금지되어야 한다’고 비판한다.


어떻게 과로사회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저자는 시간의 민주화를 통해 시간구조를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단순히 업무시간 축소를 넘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시간체제를 구성해나가자는 것이다. 과로를 벗어나 더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노동시간/휴식시간은 어느정도가 적당한가,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일터는 어떤 모습인가 등 그동안 기업의 이윤창출 관점으로만 만들어져온 조건들을 뒤집어 상상해보는 것이다. 물론 낮은 노조조직률, 반노동적인 사회분위기 등 쉽지 않은 일이다. 과로죽음을 구조적으로 읽어내고 사회적 죽음으로 드러내는데 동참하는 것부터라도 시작해야 한다. 누군가에겐 일터가 사회적 살인의 장소임을 선명하게 드러내야 한다. 그렇게 존버씨의 죽음, 뉴스 한 줄로 무심하게 지나쳤던 너무 많은 과로죽음들 기억해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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