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하는 여자들 - 한국 근대 여성 지식인의 자기서사
장영은 지음 / 오월의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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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하는여자들 #장영은


25명의 여성 작가들의 삶과 철학을 소개한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를 쓴 장영은 문학연구자님이 이번엔 8명의 한국 근대 여성 지식인들의 이야기를 자기서사라는 관점에서 살펴보는 <변신하는 여자들> 내셨다. 서문에 언급하셨듯이 이 책은 ‘20세기 한국 역사에서 문제적인 여성으로 ‘심판’받았던 이력이 있는’ 여성 지식인들의 이야기들을 들여다본다. 역사적 인물을 다루는 여느 책들과의 차이가 있다면 이들의 생애를 ‘제대로’ 읽기 위한 저자의 고민이 담겨져 있는데, 저자는 단순히 역사적 인물의 생애를 분석하고 명료하게 정리하는 것에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역사적으로 ‘무엇’인가 되어버린 그들에게서 ‘무엇인가 되어가는 과정’을 끌어올린다. ‘무엇’으로 박제된 그들이 아니라 그 ‘무엇’인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변신을 시도한 서사에 주목한 것이다. 직접 쓴 자기서사를 통해 위치와 역할과 같은 외부적 조건의 변화뿐만 아니라 심적 변화를 살펴보며 그의 생애에 좀 더 깊숙이 들어간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이러한 작업이 그들을 닮길 바라거나 덮어놓고 추종하기 위함이 아님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한 인물이 친일행위로 여겨지는 행위를 하게된 서사를 들여다보지만 그것은 그가 왜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됐는지를 들여다보는 것이지 결코 면죄부를 주기 위한 작업이 아닌 것이다. 이것이 <변신하는 여자들>에서 말하는 ‘제대로 읽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일제와 한국전쟁을 지나는 한국의 근대, 그 시대에 주목받았던 여성 지식인들의 생애를 담았다는 이유만으로도 <변신하는 여자들>은 매우 매력적인 책이다. 엄혹했던 시대에 여성으로 태어나 문학가, 정치인, 교육인, 사회운동 등이 되어 살아간 이들의 서사를 담았다는 점에서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뛰어난 재능과 학식에 존경하며 감탄하다가도 여성이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어려움이나 고민들에서 공감과 동질감을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책 속에 등장하는 몇몇 여성들이 종교를 통해 자신을 다잡는 모습을 보면서 여성을 동등하게 대우하지 않았던 시대의 통념을 뛰어넘기 위해 그보다 더 높은 차원으로 종교를 선택했던 것이 아닐까 추측해보기도 했다. 그 누구도 여성 지식인의 자리를 마련해주지 않을 때, 여기까지만 하라고 만류할 때, 그것을 뛰어넘기 위한 어떠한 의지가 필요했고 그것이 종교이지 않았을까. 그들에게 종교는 내가 지금 가는 이 길은 신이 내어주신 길이니 불안하거나 의심하지 말고 휘둘리지 말고 나아가라는 지지를 해줄 수 있는 그 무엇이지 않았을까. 그것들은 여전히 지금을 살아가는 나와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들임을 생각해본다면 그들과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종단의 측면에선 한국 근대 역사와 당시를 살던 인물들을 만날 수 있고 횡단의 측면에선 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여성 선배이자 동료를 만날 수 있는, 그야말로 종횡무진 읽을 수 있다.


그동안 학교를 오래다녔고 이런저런 일터와 프로젝트를 전전하며 지냈다. 그때그때마다 최선의 선택을 하며 살았을 뿐이었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주변인들과 다른 생애주기를 지나고 있었다. 비슷한 삶을 살아가던 또래들은 결혼을 했고 더 빠른 이들은 아이를 낳기도 했다. 결혼과 출산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음에도 어디서 시작됐는지 모를 불안감이 밀려왔다. 그리고 두려웠다. 남들처럼 살지 못하는 삶에 대하여. 그런 생각들을 떨쳐내지 못한 채 살고 있었다. 그런데 <변신하는 여자들>에 담겨 있는 한국 근대 여성 지식인 한 명 한 명의 삶을 만날 때마다 없던 길이 생기고 닫혀 있던 문이 열리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정해져 있는 여성의 덕목만을 강요하는 시대에서 여성 지식인으로서 살아남기 위해 어렵게 고군분투하기도 때로는 문제적인 여성이 되어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하면서 자신의 길을 걸어갔듯이 나 또한 그저 내 길을 걸어가면 된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서 답을 찾게 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생애를 통해 세상에 정해진 답은 없다는 것을 배운 것이다. 이런 깨달음도 저자가 말하는 ‘제대로 읽기’의 결과가 아닐까. 정해진 답이 없다는 답을 던져준 <변신하는 여자들>에 고맙다. 나 또한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끊임 없이 변신을 시도해보려 한다. 그 끝이 무엇이 되었든 ‘변신하는 여자들’이 되어보려 한다. 그렇게 나의 서사를 써 내려가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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