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글쓰기 - 당신의 노동을 쓰는 나의 노동에 관하여
희정 지음 / 오월의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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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노동을 기록하는 글쓰기 <두 번째 글쓰기>


<두 번째 글쓰기>의 저자 희정님은 기록노동자이다. 부끄럽게도 나는 기록이라면 거시적인 역사, 박물관 이런 것들만 떠올리는 수준이어서 기록노동자를 문자 그대로 기록하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해왔다. 좀 더 생각했더라면 사회과학방법론에서 쓰이는 구술생애사나 면접조사와 같은 형태정도로 이해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만큼 무지했다. 그나마 기록의 중요성은 공감하고 있었다. 기록을 통해 시간과 시간, 공간과 공간, 사건과 사건,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고 그 연결을 통해 이해의 가능성이 생겨난다고 여겼다. 기록의 의의. 딱 그정도만 생각했던 것 같다. 하나의 현장 그리고 그곳에 함께하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이해하는 과정을 거쳐 읽는 이를 위한 텍스트 구조로 재구성하고 다듬는 것이 기록이었음을, 덧붙여 읽는 이가 미처 다다르지 못할까 우려되어 함께 생각해봐야할 지점도 꼼꼼히 챙기는 것이 기록노동자가 하는 일이었음을 이제서야 깨닫는다.


이 책은 다양한 현장의 이야기들을 기록하는 작업을 해오면서 생겨난 이야기 조각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어떤 조각은 출간된 책에 미처 다 담지 못한 내용이 담겨 있고 어떤 조각은 기록을 대하는 희정님의 규범(?) 또는 다짐(?)과 같은 마음이, 어떤 조각은 기록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에피소드와 그에 대한 고민 지점이 담겨있다. 그렇다고해서 단순히 비하인드와 같은 책은 아니다. 내 멋대로 이해해보자면 이 글은 기록노동자의 노동을 담은, 기록에 대한 기록이 아닐까 생각한다. 누군가 알려주지 않으면 오늘 내가 먹은 밥 한끼에 담긴 노동을 깨닫기 어렵다. 기록노동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당신의 노동을 쓰는 나의 노동에 관하여’라는 부제처럼 수많은 현장 기록에 담겨 있던, 알지 못했던 기록노동을 기록한 이야기이다. 그동안 희정님이 써오신 다른 기록과 차이가 있다면, 기록되는 사람과 기록하는 사람이 동일하다보니 기록되는 사람의 생각과 경험을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본다.


덕분에 기록되는 사람에게는 조금 가혹할 수 있지만 기록하는 과정의 괴로움이나 ‘망친 인터뷰’와 같은 내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는데, 그 괴로움과 망침 속에서 생겨난 깨달음이 참 값지다. 예를 들자면 한국으로 이주한 이주민과의 ‘망친 인터뷰’를 끝낸 후 희정님은 ‘‘지금 이 상태로’ 그와 나는 우리가 될 수 없음을 인정하고, 꼭 우리가 되어야 하는지를 묻고, 그가 원하는 것이 정말 우리인지를 묻고, 그리고 우리가 우리일 수 없는(사람이 사람일 수 없는, 삶이 삶일 수 없는) 세상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는(64p)’것이 필요했음을 깨닫는데, 이러한 깨달음은 ‘타인을 ‘대상화하지 말자’라는 말은 너무도 옳은 나머지 쉽게 입에서 나오곤 했지만,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몰랐(61p)’고, ‘내가 모르는 저들을 ‘어떤 이들’이라고 규정하고 싶었던 나의 욕망을 본 것이다(63p)’라는 성찰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희정님의 책을 읽을 때마다 매번 드는 생각이지만 희정님의 아픈 성찰과 통찰력 깊은 깨달음을 이렇게 편히 앉아 얻어가도 되나 싶다. 물론 내 것으로 온전히 소화해야 얻는 것이고 그럴 수 있을지는 미정이지만. 무튼 이러한 값진 깨달음은 기록되는 사람의 용기와 기록하는 사람의 능력 덕분이라 생각한다. 이 모든 것을 해낸 희정님께 경의를 표한다.


기록노동을 가까이 들여다보니 쉽지 않은 과정이다. 기록하는 이는 ‘만나는 이’가 되어야 하고 ‘듣는 이’가 되어야 하며, 마지막에는 ‘쓰는 이’까지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매력이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후 그와 나눈 이야기를 찬찬히 들여다본다. 어떤 사건을 중심으로 들여다보기도 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들여다보기도 한다. 때로는 기록하는 ‘나’까지 소환하여 그를 본다. 어떻게 애정이 생기지 않을 수 있을까. 설령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이 생기더라도 버리지 못할 마음이다. <두 번째 글쓰기>를 통해 만난 기록노동은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줄 여유조차 없는 바쁜 삶 속에서 누군가를 존재 그 자체로 온전히 바라보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마음을 내어주는 일이었다. 그만큼 쉽지 않은 과정이겠지만, 또 그 만큼 나의 세계가 넓어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래서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 같다. 얼마나 매력이 있게 다가왔는지, 글쓰는 일을 좋아하지 않음에도 누군가를 기록하는 일은 한 번 해보고 싶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때가 된다면 <두 번째 글쓰기>를 교재삼아 작업해보리라. 그리고 나서 나의 ‘두 번째 글쓰기’도 해보리라. 문제는…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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