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발걸음 - 풍경, 정체성, 기억 사이를 흐르는 아일랜드 여행
리베카 솔닛 지음, 김정아 옮김 / 반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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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솔닛북클럽


 이 책은 리베카 솔닛의 아일랜드 여행기로 알려져 있다. 표지에도 하늘색 바탕에 하얀 길 위로 ‘풍경, 정체성, 기억 사이를 흐르는 아일랜드 여행’이 적혀 있다. 그러나 리베카 솔닛에게 아일랜드는 단순한 여행지라기보단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일랜드계 미국인 3세대쯤 되는 이에게 어느 날 던져진 국적, ‘내가 잘 모르는 내 나라’다. 내가 잘 모르는 내 나라. 익숙했다면 모든 것이 당연했을 장소, 낯설었다면 모든 것이 이벤트였을 장소. 그러나 ‘내가 잘 모르는 내 나라’는 live와 tour 그 사이의 어딘가에 놓인 ‘공간’이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하며 책장을 펼쳤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풍경은 찰나의 순간이다. 아름답기로 유명하다는 정보만으로 만나 그날의 그순간을 눈에 담고 끝이난다. 반면 <마음의 발걸음> 아일랜드의 풍경의 찰나만을 묘사하지 않는다. 리베카 솔닛은 자신의 기원을 찾듯이 자신 앞에 놓여진 풍경의 기원을 찾아 찾아 그 이면에 오래도록 깊숙이 담겨 있었던 이야기를 꺼낸다. 그곳을 딛고 살았던 이들의 겹겹이 쌓인 이야기들. 그 이야기들을 따라 걷다보면 아일랜드는 찰나 풍경에서 과거와 미래가 이어진 연속적인 공간이 된다. 그제서야 깨닫는다. 그동안 무수한 여행을 다니며 마주쳤던 장소들에 매몰된 사람의 이야기들을. 솔닛은 사람이 살았던, 살아가고 있는 그리고 살아갈 공간임을사람 이야기를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사람의 이야기는 역사이기도 하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책을 읽는 여정이 분명 쉽지는 않다. 매 편마다 잘 알지 못하는 아일랜드의 역사적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그 등장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솔닛과 함께 걷던 길이 어느 새 1900년대의 길이 될 때도 있었다. 역사를 오가는 쉽지 않은 여정이기 때문에 표면적인 풍경만 눈으로 담는쉬운교감과는 차원이 다르게 느겨졌다. 아니, 정말 (역사적)차원이 다른 걸지도! 아일랜드 역사와 대화하며 걷는, 흔하지 않는 발걸음이 참 묘했다.


 그 중에서도 자연사박물관에서 ‘로저 케이스먼트 경이 자연사박물관을 위해 수집한 남아메리카 나비’를 보며 케이스먼트의 삶을 떠올렸던 ‘나비 수집가’장이 기억에 남는다. 노예를 끔찍하게 고문하던 실상을 기록으로 남겨 세상에 알렸지만, 동성과의 성애를 자세히 묘사한 일기로 매장당했던 케이스먼트. 그의 이야기를 통해 솔닛은 ‘남성성은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인종이나 제국이라는 요소보다 훨씬 중요했다는 것, 남성성 개념을 흔들어놓을 수 있다면 다른 모든 것에 대한 재정의가 가능하리라는 것(117p)’을 읽어낸다. 지금과 얼마나 달라져있는지, 가늠할 수 있을 만큼의 차이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더 아일랜드 나비 수집가의 비극이 마음에 남는지도 모르겠다.


 리베카 솔닛의 책에서 그랬듯 차원이 다른 여정 곳곳에는 잠언과 같은 삶의 지혜도 담겨 있다. 주옥같은 문장들이 많아 필사하는데 즐거웠다. 솔닛의 통찰력, 묘사와 은유는 놀랍다. ‘이야기 중에는 여행 이야기가 많고, 삶은 여행이 비로소 이야기가 된다. 여행은 우리에게 그토록 깊은 충족감을 주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우리가 삶을 여행에 비유해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딘가로 가고 있을 때는 시간이 버려진다는 느낌보다는 시간이 채워진다는 느낌, 시간의 흐름이 공간의 리듬을 타고 있단느 느낌이 든다. 만약에 우리가 삶을 여행에 비유하지 않았다면, 예컨대 나무가 자라는 과정에 비유했다면, 길에서 운명을 느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157p)’ 삶을 여행이라 비유하지만 그런 비유를 했을까 생각하지 않았던 나의 짧은 사고에 솔닛은 통찰력을 더하여 폭을 넓혀주었다. 리베카 솔닛과의 두 번째 만남. 그가 하는 이야기가 조금은 어렵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것은 사유의 폭이 그만큼 겹겹이 쌓여있어 읽어내야할 부분이 두껍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평평한 아일랜드 땅에서 솔닛은 마치 마법사처럼 사람들의 이야기를 끌어 올린다. <마음의 발걸음>은 어쩌면 그 사람들의 마음으로 걷는 발걸음이 아닐까. 비록 코로나19로 인해 발이 묶였지만, 언젠가 아일랜드를 걷게 되는 날, 그 마음의 발걸음으로 내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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