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팅 클럽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2
강영숙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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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은 뭘까. 글쓰기는 뭘까. 뭔데 그것 좀 한다 싶으면 콧대가 그렇게 높아지는 걸까.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게 대단한 일이 된 것일까. 학창 시절 책 좀 읽고 노트에 글 좀 적어본 사람, 여기에 글 잘 쓴다고 선생님께 칭찬까지 받아봤다면 알만한 낯부끄러운 자만심. <라이팅 클럽> 첫 페이지를 열면 만날 수 있는 열일곱 소녀 영인이 그렇다. 독서, 글쓰기 모두를 좋아하고 즐겨야하는 영인. 웬만한 이들은 나를 이해할 수 없고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자기만의 세계를 견고히 쌓은 자신을 멋있다고 생각한다. 남들은 한 줄도 쓰기 어렵다는 글을, 영인은 매일 좋아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감정을 담은 편지를 써 바쳤다. 남들 눈에 어떻게 비춰질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 영인을 보고 있자면 어이 없는 웃음이 픽- 하고 나온다. 때로는 그의 행동에 내가 다 민망하다. 세상 혼자 사는 것 같다. 그렇지만 싫어할 수가 없다. 나는 영인이 왜 그러는지 알 것 같으니까. 영인은 인정 받고 싶었고 사랑 받고 싶었을 거다. 그런데 너무 두려워서 책이라는 세계로 도망쳤을 거다. 너무 외로워서 글을 썼을 거다. 내가 그랬으니까. 자만심은 내가 세운 성의 성벽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다. 나는 아직도 그 마음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쓴다. 글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싶은 적이 있었다. 언제적이었더라. 직업에 대한 개념이 없을 때였던 것 같으니 그리 거창한 건 아니었다. 그냥...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는 마음 정도가 아니었을까. 좀 더 들여다 보자면, 그냥 글쓰는 게 제일 좋았던 것 같다. 외로움을 달래주기도 했지만 상상했던 걸 마음대로 적을 수 있었던 것도 좋았고 적기 위해 무언가를 상상해야했던 시간도 좋았다. 쓴 글로 인정 받을 땐 기분이 좋았지만 반응이 좋지 않아도 쓰는 건 포기하지 않았다. 못쓴 글은.. 그냥 안보여주면 되니까. 보여주지 않아도 글은 쓸 수 있으니까. 생각과 감정들은 문장으로 떠올랐다. 나에게 글쓰기는 그 문장들을 옮겨적는 일이었다. 그만큼 글쓰기는 나에게 거창한 게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와서 보니 그렇다고 믿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라이팅 클럽>을 읽으면서 작가가 될만큼 잘쓰진 못하면서도 계속 쓰는 영인을 보며 안타까웠고 작가라 불리지만 주류로 인정 받지 못하는 영인의 엄마인 김작가를 보면서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이건 무슨 감정이었을까. 돌아보니 그건 성공한 주류만 인정하는 우스운 자만심 그리고 나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열등감과 두려움이었다. 거창한 게 아니라고, 그냥 쓰는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자만심은 여전히 단단한 성벽으로 나를 감싸고 있었던 거다. 영인에게서 나를 봤다. 그래서 영인이 안타깝다 느껴지면서도 다른 한편에선 비참해지는 기분이 들었던 거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영인은 나와 달랐다. 영인은 어느 순간부터 어떤 상황이 닥쳐도 글쓰기를 벗어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자만과 열등감 그리고 두려움을 내려 놓고 쓰기 시작했다. 그만큼 ‘쓴다는 것’에 집중했다. 그런 영인의 모습을 보며 나는 다시 생각했다. 나에게 글쓰기란 무엇일까. 나도 영인이 처럼 단단한 성벽을 나와 진짜 나를 위한 글쓰기를 하고 싶어졌다. 다짐하듯 마음을 고쳐 먹어 본다. 꼭 인정 받아야만 글을 쓸 수 있나.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해도 노래를 부르고 싶으면 부르면 된다. 나에게 글쓰기는 그런 것이다! 라고.


 <라이팅 클럽>이라는 책 한 권은 영인의 글쓰기 인생이다. 그의 인생을 읽으며 글쓰기란 무엇인지, 쓰는 삶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때로는 나의 지적 허영을 채워주기도, 때로는 그 누구에게도 하지 못할 말을 들어주기도 하는 글쓰기. 쓰기 위해 사는 삶도 있겠지만, 살기 위해 쓰는 삶도 있다. <라이팅 클럽>은 그런 삶들을 보여주며 글쓰기가 가진 의미는 사는 삶마다 다를 수 있다고 말한다. 자신만의 글쓰기 의미를 갖는 사람들, 그런 이들이 여기 라이팅 클럽에 모여있다. 나를 포함하여 이 책을 읽은 독자 대부분이 라이팅 클럽에 가입하고 싶다고 감상을 남기는데, 결국 이 책을 통해 자신만의 글쓰기 의미를 찾은 게 아닐까. 내게 비참한 기분을 안겨주었던 <라이팅 클럽>, 그 기분의 이유를 찬찬히 들여다 볼수 있도록 기다려준 <라이팅 클럽>, 그 기분에서 빠져 나오니 내 어깨를 감싸 안아주며 괜찮다고 토닥여준다. 내가 아무리 자만심이 가득해도 이길 재간이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글을 쓰나 보다. 이러다 또 자만심이 가득해져 절망에 빠지게 될 때마다, 글쓰기의 의미를 잊을 때마다 꺼내 읽어야겠다. 그런 의미로 <라이팅 클럽>에 평생 회원으로 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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