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터 쿠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42
이혜미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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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서 도려내져서 동그랗고 커다란, 상처 자체가 된 반죽들은

상처로서 아름다워지기 위해 뜨거운 열기 속을 견딜 각오를 안고 낯선 생을 한 번 더 살아내기를 선택한다. 그렇게 상처들은 쿠키라는 이름의 흉터로 굳는다.

자신의 한 뭉텅이를 상실한 남겨진 반죽 잔해들은 차마 쿠키라고 불리지도 못하고 덩그러니.

그들도 쿠키라고 불러주고 싶어지고 만다. (흉터 쿠키인용, 스크래치인용)

 

상실과 상처와 불완전한 회복을 노래하는 시집.

그 모든 과정을 가만히 지켜봐주는 따스한 시선을 포착한 문장들.

 

시인은 다정하게 슬퍼하는 관찰자이자 증인이다.

 

계속 얼음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녹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녹아가며 그들의 마음의 겉면에서 흐르는 투명하고 아름다운, 맑고 슬픈 액체를 그저 지긋이 바라본다. (원테이크인용)

스스로도 역시 납작해져야지, 조금씩 흩어지다 흔적으로만 남아야지다짐하며, 조용히 우리를 슬퍼한다. (침대에서 후렌치파이인용)

 

참았던 오열을 쏟아내는 여름 꽃의 목격자가 될 만큼 섬세한 눈빛을 보낸다.

각자의 기울어짐을 볼 줄 알아서 비슷한 각도로 기울 수 있다면 좋겠다고 소망하며 무너지는 사람들의 세계와 기꺼이 같아지려 한다. (인용)

 

순간을 놓치지 않음으로써 내가 너를 계속 보았노라 위로한다.

여린 식물의 개화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우리에게도 말을 건넨다.

우리 본 적 없지만 기꺼이 너그러이 마음을 내어줄게 자기야 작약이 세계를 찢으며 터져 나오는 순간이야 하나의 장면이 태어나고 마는 기쁨으로 그러니 스스로의 무게에 놀라 고개를 떨구더라도 아름답기를 포기하지 말자 이른 낮잠처럼 자장자장 다독이며 사라지려는 꿈을 애써 덧대며 마음을 멈추지 말자 꼭 쥔 주먹을 조금씩 펼쳐내는 힘으로 휘몰아치는 작약에게 속삭이지 네가 나였으면 좋겠어 저기에서 자기까지 단숨에 피어나도록” (하필이면 여름)

 

시인의 눈에는 안쓰럽지 않은 것이 없다.

사랑을 하기 때문이다.

가장 차가운 것도 기꺼이 어루만지며 뭉쳐있는 슬픔들을 발견한다.

사랑을 하기 때문이다.

눈사람은 점점 더 뚱뚱해지지. 무뎌진 생각을 뭉쳐 만든 소용돌이의 힘으로, 세상 흰 슬픔들을 다 먹어치운 육체로 ...... 몰려온 빛의 무리들을 그러모았다. 빌려온 체온에는 되새길 시간이 필요하니까.” (ㅇㅇ)

 

시인이야말로 뭘 잃어버렸니? 물어오는 다정한 언니이다. (스파클 다이브인용)

그래서 가장 기초에 깔려 있던 단어와 형태소와 낱말 사이를 샅샅이 살핀다. 그 사이에 숨어있던 튼튼한 재료들을 그러모아서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런 재료들이 있노라고. 이런 것으로 너의 마음을 지켜주겠다고. “감정에도 거처를 지어주려 한다. (인용)

 

늦겨울에 심장을 꺼낸 동백을 가엾이 보며 꽃이 피었다고 편지를 쓰다가도

동백꽃이 나무를 찢고 태어나 피 흘리는 걸 발견하고 꽃은 피였다고 알아챈다. (동백 독백인용)

웃음과 울음을 계이름 삼아 곡하는 인간의 눈물을 곡이라고 부르며 음악을 지어준다. (슈슈인용)

사랑과 사라짐 사이의 가까운 거리 탓에 끝나지 않는 애도를 이해해준다. (비문 사이로인용)

 

시인은 작은 지붕과 굴뚝처럼 생긴 글자인 로 영혼의 집을 지어줬다.

환하게 비추는 조명으로부터 조금 빗겨 서 있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는 또 다른 들에게.

(흰 페이지를 열고 무대 위로 나아가인용)

 

나는 이렇게 다정한 건축가를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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