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만한 삶이란 어떤 삶인가 니체의 눈으로 읽는 니체 1
이진경 지음 / 엑스북스(xbooks)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단 책이 이쁩니다. 개인적으로는 깔끔한 속표지가 더 맘에 드네요. 오른쪽의 겉표지는 홀로그램처리가 되어 있어 영롱한 느낌을 줍니다. 이 책은 <니체의 눈으로 읽는 니체> 시리즈의 1권입니다. 2권은 <우리는 왜 끊임없이 곁눈질을 하는가>이니 이어 읽어도 좋겠네요. 


1권은 니체의 <선악의 저편>에 대한 강의를 엮은 것입니다. 제목에서 말하듯 책은 '사랑할 만한 삶은 어떤 삶인가'하는 물음에서 출발하며, '사랑할 만한 삶을 살라'는 메세지로 귀결됩니다. 그 과정에서 의지, 고독, 버림받음, 진리, 철학, 종교, 도덕, 고귀함...에 관한 갖가지 이야기가 곁들여집니다. 읽으면서 '대체 이건 어떻게 리뷰를 써야하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니체의 눈은 세상의 오만 것들을 (어쩌면 세상에 없는 것들에까지) 넘나듭니다.


제가 밑줄 그은 문장들은 대략 이런 것들에 대한 문장이었습니다 : 의지, 저항, 고독과 버림받음, 죄책감과 책임감. 


글을 써야 하는데 관련 자료를 읽어야 한다며 다른 책을 뒤지고 있는 것이 실은, 힘든 걸 알기에 글 쓰는 걸 미루려는 몸의 저항이라는 걸 알아차리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런 문장에 당연히 손이 갔습니다.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가 질리지 않듯이 '글쓰기의 힘듦'에 관한 이야기도 질리지가 않네요. 나만 그런 것이 아니야. 그 위안이 얼마나 필요한 걸까요.


오직 하나에 인생을 걸면 그거 하나만 보이는 깊숙한 골목길로 들어가 다른 모든 것을 보지 못해 망치게 되고, 결국 자신이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는 것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는 겁니다. 그걸 제대로 하려면 자기 몸도, 일정도 관리할 줄 알아야 하고, 만화 그리는 것뿐 아니라 먹고 자는 것을 챙길 수 있어야 하며, 어시스턴트도 관리하고 그가 먹고 생활하는 것, 그가 그리고자 하는 것까지 챙겨 주어야 합니다. 편집자와 소통하고 독자 사인회 같은 마케팅 행사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하는 만화를 지속할 수 있고, 만화를 자기가 갈 수 있는 최고 높이로 끌고 올라갈 수 있습니다. '자기보존'이란 바로 이런 겁니다. 자기보존을 못하고 자기관리를 못하는 사람, 그에 필요한 물자와 일정, 생활,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적절한 관계를 만들고 관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절대로 높이 올라갈 수 없습니다.


이 대목은 양가감정을 들게 만들었습니다. 최근 '자기효능감'에 대해 생각하면서, 저의 자기효능감이란 글과 밀접하게 이어져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거든요. 명상을 하고 요가를 하고 춤을 추고, 밥을 먹고 충분히 잠을 자는 그 일련의 과정이 잘 돌아가는 속에 글이 있을 때에 비로소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런 것들이 무너진 상태에서 아둥바둥 글을 붙잡는다고 써지는 건 아니었어요. 이 단락을 읽으면서 '맞아, 글만 쓴다고 다 되는 건 아니지! 자기보존부터 할 줄 알아야지!' 하면서 글쓰기의 무게를 슬금 덜으려 했습니다. 허나 저자가 말하는 '다른 사람을 챙기고 마케팅도 하고' 하는 건 또 자신이 없었기에 '아니야! 글만 써도 된다고 해줘!' 라는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어떤 삶을 살면, 그 삶을 사랑할 것 같나요? 저는 사실 지금의 삶을 사랑합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근무시간이 너무 길다는 것. 근무를 아예 안하는 건 싫어요. 저는 그동안 '사회에 소속되어 있다 (그러므로 나는 이상한 인간이 아니다)' 라는 느낌을 중요시하며 살았습니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근무하는 것은 저에게 현실에 발 붙이고 현실감각을 잃지 않게 해주는 행위였거든요. 하지만 주3일 근무로 하루에 2-4시간만 하면 좋겠네요 헤헤. 점심을 먹고 퇴근한 뒤 오후에 글을 쓰는 삶이면 정말 완전 러블리할 것 같습니다. 점심은 꼭 회사에서 먹어야 해요. 안 먹고 퇴근하면 안 먹을 거거든요. 그리고 낮술을 하겠죠.


연인이 없는 지금도 행복하지만... 잘 맞는 연인이 있으면 지금보다 삶을 더 사랑하게 되긴 할겁니다. 제가 연인을 갈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때마다 깜짝깜짝 놀랍니다. '버킷리스트 100개 써보기' 같은 걸 하면 50개 이상의 문장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기' 라는 구성을 띄고 있더라고요. (소름..) 오늘은 '내가 뭘 하고 싶지? 뭘 하면 기분이 좋을까?' 하는 주제로 명상을 했는데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잡고 해변을 걷는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네, 좋을 것 같네요...(글쓰기에 관한 명상을 하려고 했던 건데 말이죠. 사랑 역시 '자기 보존'의 일환일까요.)


근무시간을 줄이고 글쓰는 시간을 늘리고 사랑하는 연인이 있다면 사랑할 만한 삶이라는 거군요. 행복이나 성공에 관해서 으레 '돈이 많아야 한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었는데, 막상 적어보거나 생각해보면 그런 건 보이지 않아요. 예전에 최면을 받아본 적이 있습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성공한 삶'을 이룬 60세로 가보겠습니다. 무엇이 보이나요?"라는 최면 속에서 제 앞에 나타난 것은, 바닷가를 걷고 있는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한없이 소박한 모습으로요. 근심 없이 평온한 마음으로 한적한 바닷가를 걷는 것이 저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일인가봐요. 여기저기 바닷가가 등장하네요. 그런데도 저는 자꾸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성공이 제 것인 줄 착각하고 이루지 못했다며 고통스러워 했나봅니다. 돈보다 바닷가를 더 중요시 하는 것 같은데 말이죠...


사랑할 만한 삶을 살고 있어서, 더 사랑할 만한 삶이 다가오고 있어서 감사합니다. 니체가 원한 건 이런 것이 아니었을지라도, 저는 이 책을 이렇게 읽었습니다. 진리란 고정된 것이 아니며 개인이 체득함으로써 각자의 진리를 알아가는 것이라고. 개별의 경험들 속에 공통된 고유성이 있는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니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쬐끔 사라졌어요. 내가 경험하고 있는 이것. 아무도 몰라줄 것 같은 이것. 하지만 어딘가엔 꼭 같은 누군가가 있을 것 같은 느낌. 그 모호하지만 강렬한 예감이 또 오늘 하루를 살게 하고 사랑하게 만드는 힘 아닐까요.





#사랑할만한삶이란어떤삶인가 #우리는왜끊임없이곁눈질을하는가 #니체의눈으로읽는니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