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59
다자이 오사무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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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창작과 입시를 준비하면서 정말로 놀란 사실이 있다. 세상에 이렇게 죽고 싶어하는 작가 지망생이 이렇게나 많다니. 실기시험장에 가선 더 놀랐다. 다들 고운 피부에 유행하는 동글뱅이 안경을 쓰고 잘 다듬은 손톱을 한 채 기장이 잘 맞는 삼선 트레이닝복을 걸치고 앉아 있었다. 저 사람들이, 다 그렇게 죽고 싶어하는, 밑바닥에서 어둠을 풀어헤친 채 엉금엉금 기는 글을 쓰는 사람들이었다니. 내가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길거리에서 만나는 멋쟁이들이, 사실은 다들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죽고 싶어어쩔 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니.

자기 파멸의 상징인 다자이 오사무는 아마 죽고 싶던 작가중 가장 빠르게 성공을 거두고 또 가장 빨리 스스로를 죽여버린 인물일 것이다. 졸부 집안의 자식. 연인과 동반 자살 기도를 하였으나 혼자 살아남은 젊은이. 마약성 진통제에 중독되어 정신병원에 수감된 환자. ‘사양족이라는 신조어를 낳을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작품을 써낸 소설가. 서른아홉, 생애 다섯 번째 자살 기도에 성공한 사람. 이 모든 것이 다자이 오사무가 살았던 삶이다. 자신의 인생을 소설이나 영화로 여기고 그처럼 만들려는 사람은 살아오며 정말 많이 보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한 발을 쓱 빼고 모른 척 한 채 뒤돌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자이 오사무는 발을 빼지 않던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글에선 진실됨이 묻어나온다. 자신을 그대로 투영시킨 인물이 짜잔 등장한다. 그 유명한 <인간 실격>에선 주인공 자체가, <사양>에선 주인공 가즈코의 남동생 나오지가 그러하다. 방탕하고 피폐한 삶을 즐기는 듯 살지만 그 행동들이 모두 너무나 괴로운 사람.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매일 질문하면서도, 왜 이렇게 살면 안 되는지에 대한 세상의 답이 너무나 천박해 견딜 수 없어 다시 술을 마시고 약을 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 그가 만들어낸, 그가 자신을 투영한 인물들이 몇십년이 지난 지금 다른 국가의 젊은이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많은 사람들의 내면에 조용히 침묵하고 있을 악마를 끄집어낸 까닭일지도 모른다.

다만 현대에 이르러 여성혐오의 혐의를 쓸 수밖에 없게 된 <인간 실격><사양>은 조금 다르다(물론 혐의를 아주 벗을 순 없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사양>의 뒤표지에 언급되는 페미니즘적 작품이라는 광고 문구에 대해선 반발한다. 비극을 여성의 목소리로 썼다고 페미니즘인가요? 제가 봤을 땐 이 작품에서도 역시 남성의 성적 판타지가 구구절절 드러나는 것 같은데요. 화자만 여성일 뿐.). 화자인 가즈코와 어머니 사이의 연대가, 절대 모자 관계에선 나올 수 없는 모녀 관계에서의 애틋함이 두드러지게 표현된다. 남동생인 나오지, 아마도 다자이 오사무가 자신을 투영했을 인물인 나오지는 이 관계에선 크나큰 걸림돌이자 돈 먹는 식충이일 뿐. 기울어진 가세를 어떻게든 살리기 위해 가즈코가 택하는 길은 역시나 뜨악한 방향이지만, 그 길에서도 역시 별 생각도 개념도 없는 남자들과 달리 가즈코는 인간이란 존재를 사랑하고(아기를 낳고 싶어하고) 자신의 삶을 사랑한다(당신이 저를 잊는다 해도, 또한 당신이 술로 목숨을 잃는다 해도, 저는 제 혁명의 완성을 위해 꿋꿋이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낡은 도덕과 끝까지 싸워, 태양처럼 살아갈 작정입니다.).

도덕! 대체 그 관념은 어디서 출발해 어느 길을 걸어 어디에 도달하려 하는 걸까? 시대마다, 장소마다 전혀 다른 색채를 띠고 첨예하게 대립하기도 하는 그 도덕을 어디까지 믿고 살아야 하는 걸까? <사양>은 그런 질문을 툭 던진다. 가즈코는 살기 위해, 또 어머니와 남동생을 잃고도 살아낼 이유를 얻기 위해 그 당시 일본의 도덕을 부순다(이처럼 살기 위한 이유를 어떻게든 만들어내는 가즈코의 생명력은 작가 다자이 오사무나 그 자신을 투영한 나오지와는 전혀 상반되고, <사양>에서는 가즈코의 노력을 아름답게 비춘다). 어쩌면 그 잣대가 너무나도 다양하고 또 다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 것이기에, 세상에서 가장 모호한 것이 그 도덕이란 것일지 모르고 따라서 가즈코의 선택을 그 어느 누구도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미친 거 아냐?’, ‘사람이 할 짓이야?’라는 비난을 듣는 사람들을 돌이켜봤을 때, 그들을 만약, 신분제가 성행하던 저 그리스 로마 시대에, 부모를 버리던 고려 시대에, 또 사람을 파리처럼 죽이던 세계대전 때로 갖다 놓는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상상 또한 그렇게까지 불경한 것은 아닐 것이다.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더 다양한 관점이 있으며 정말로 하나하나가 다 소중한 숨들이 있다. 소설의 큰 기능 중 하나, 다른 사람이 되어 보는, 그 사람의 생각을 해 보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경험을 글을 통해 하는 것, 을 나는 <사양>을 통해 다시 한 번 경험했다. 물리적으로 날 파멸시키긴 힘들지만 자기 파멸의 상징을 통해 경험하기! 그날 본 수많은 죽고 싶은 글쟁이들을 통해 나는 다자이 오사무가 영원히 읽히리라는 것을 알았다. 좋겠다, 죽고 없지만 좋겠다! 10여년만에 입시 결과라는 것을 다시 기다리는 나의 생각은 결국 돌고 돌아 이렇게 정리된다. 발표날짜가 정말로 오긴 올까. 목이 기린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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