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플라이트 오늘의 젊은 작가 20
박민정 지음 / 민음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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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에 비해 장편에서 훨씬 돌직구를 던지는 작가들이 있다. 지금 당장은 단편 <호수-다른 사람>에서 장편 <다른 사람>으로 펄쩍 뛰던 강화길 작가 정도가 떠오른다. 그것에 대해 문학비평적으로 아쉬움을 가지고 접근한 사람들도 물론 많았지만(이른바 평론계에선 강화길의 단편들을 훨씬 높이 친다 카더라), 나처럼,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았을까, 자신도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공부를 했으니 무엇이 잘 써 보이는지뻔히 알 텐데 그걸 다 버릴 만큼의 의지와 열망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 독자들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박민정 작가의 이번 장편 또한 그러해 보인다(첫 장편이다). 그간의 소설집 두 권이나, 가장 유명할 단편 <세실, 주희>(2018 젊은작가상 대상)의 지독하게 섬세했던 결을 과감히 버리고 대신 작가는 화염병을 들었다. 나약해진 우리 세대가 감내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이전 세대가 주장하는 어그러짐과 부당함을 최대한 많이 넓게 토해내기 위해 앞뒤 가리지 않고 칼을 갈았다(이는 마지막 장의 작가의 말을 통해 여실히 확인된 감상이기도 했다). 누군가는 해야 한다고 여기면서도 누구나 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무언가를 과감히 버리면서까지 돌진하는 그녀들의 뒷모습은 언제나 비장하다. 그리고 그렇게 쓰는 그녀들이 이 땅에 점점 늘어난다는 사실이 방증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기본적인 서사는 기대보다 촘촘하다. 자살한 항공사 승무원 유나가 왜 죽었는지를 추적하는 아버지 정근(나는 모든 부녀 서사에 대해 극심한 알러지가 있는 사람이지만), 왜 이제 와서 아버지 노릇을 하려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어머니 지숙, 표면적으로그리고 권력이 의도한대로유나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보여지는 유부남 부기장 영훈,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영훈의 부인 혜진, 뭔가를 알고 있는 두 친구 주한과 철용 등 열쇠를 가진 인물의 숫자는 꽤나 많다. 하고 싶은 이야기도 엄청나다. 인간의 계급을 가르고 생명을 위협하는 상명하복의 세계. 을 사이의 불신과 질시를 조장하여 권력을 유지하는 갑의 방식. 사람 목숨을 파리의 그것과 비슷하게 취급하는 듯한 자본과 소득의 세계(이 대목에서 아서 밀러의 <모두가 나의 아들>이 떠오를 수밖에 없는데,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서건 이런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글로 쓰인다는 것은 곰곰이 생각해보면 절망적인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가족을 인격체가 아니라 누군가의 소유물로 여기는 폭력적인 가부장적 가치관. 그 모든 것들을 한데 다 녹여 하나의 사건으로 다시 조형하기 위해 공을 기울였을 작가의 노력이 장을 넘길 때마다 드러난다. 그것은 누군가 섣불리 재단하고 단정지어선 안 되는 인간성의 그 무엇이다.

며칠 전 연세가 꽤 많은 누군가와 막걸리를 마시다 그런 이야길 했다. 분명 열아홉 스무살 즈음의 모두는 참 비슷했는데, 십 년의 세월이 흐르고 나니 다시는 섞일 수 없게끔 달라져갔다고. 분명 그땐 모두들 왜 어른들이 이따위로 행동하는지, 세상이 좋은 쪽으로 달음질쳐 가야만 하는 방향을 부러 막고 방해하고 모르는 척 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했는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순응하고 받아들이고 그런 어른이 되어가는 서른 살을 시작하게 된 것 같다고. 그런데 그렇게 되어가는 것 자체가 더 이상 상처받으며 힘들어하고 싶어하지 않는 방어기제의 발동이 아닐까 싶어 밉지는 않고 그냥 슬프다고. 그 분 역시 그렇게 변해간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이를테면 삼십년 간 돌베개의 필자에서 조선일보의 독자로 변화했다고 비유할 수 있겠다) 해 주시기도 했다.

그러다 갑자기 또 떠올렸다. 나는 얼마 전 어느 정치인의 사건으로 인해 엄마에게 큰 소리를 냈는데 그때 나는 당신들은 정말 모른다, 엄마아빤 그 세대가 보기엔 운동권이고 빨갱인진 모르겠지만 결국엔 아무것도 짐작하지 못하고 눈이 먼 기성세대일 뿐이다, 내가 어떤 걸 감내하고 당하지 않은 척하고 말 못하며 살아왔는진 전혀 알지 못한 채 어느 순교자를 향해 이상한 년이라고 뭔가 꿍꿍이가 있는 못된 년이라고 함부로 말하고 있는 것 아니냐 내가 바로 그 년이고 그렇게 매장당할 수 있던 년이다, 라고 소리를 속으로만 질렀다. 내가 입을 여는 순간 어떤 옛날의 사실들은 순진하리만치 멍청했던 어른들에게 생채기를 낼 수 있겠단 생각이 말을 멈추게 했다.

결국에 귀를 쫑긋 세운 채 권력과 자본이 딛는 곳마다 몸을 뉘어 즈려밟고 가시옵소서를 외칠만한 눈치를 가지지 못한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세상으로부터 팽 당할 수 있는 것이다. 뼛속까지 군인이었던 정근의 딸 유나가 항공사의 갑질에 못 이겨 목숨을 끊은 것처럼 말이다. 어느 한쪽을 온전한 피해자로 두는 쉬운 길을 택하지 않고 피해자와 가해자의 위치를, 갑과 을의 위치를 계속 전복시키며 소설을 직조한 박민정 작가가 자신이 쓰는 글에 난자당해 얼마나 큰 내상을 입었을지 나는 무리해서라도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러면서까지 쓰려 했단 것을 말이다.

박민정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내가 끝내 포기할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고 이야기했다. 뒤집어 나는 그녀가 무언가 포기하면서까지 남겨둬 쓰고 싶었던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진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그녀가 쓰는 단편들의 내용으로 미루어 짐작했을 때 그녀는 어떤 것을 비평가들이 환영하고 잘 썼다 해 주는지에 대해 능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것들을 버리면서까지 대놓고 이야기하고 싶은 부조리들이 있었던 것이다.

어떤 것을 내려놓아 버리는 사람의 이야기는 소중할 수밖에 없다. 그 모두는 내려놓지 않는 다수가 짐작할 수조차 없는 용기의 발현이다. 그러니 제발, 제발 들어야 한다. 누가 당신더러 내려놓으라고 했나. 듣기라도 해달란 말이다, 라고 읍소할 수밖에 없다. 그게 안 되면, 이제 짱돌을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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