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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베트남 - 느리게 소박하게 소도시 탐독 ㅣ 여행을 생각하다 6
소율 지음 / 씽크스마트 / 2022년 10월
평점 :
팬데믹으로 인한 3년이란 시간은 우리가 당연하게 누렸던 것에게서
고마움을 알게 했다. 그 중 하나가 여행이란 일상이다. 요즘 한국인들의 최고의 여행지로 사랑받는 베트남은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보내는겨울의 여행지로 최고의 장소가 되고 있다. 지은이 소율은 주부에서 여행자, 여행자에서 여행작가, 여행작가애서 강사로 변신을 거듭하며 여행이 취미이자 일이 되었다. 어느 여행기에서 읽었던 호이안 이야기에 이끌려 시작된 작은 소도시 여행은 그냥 그곳에 조용히 스며들고 싶었다고 한다. 같은 나라를 두 번 가는 경우’는 매우 드물지만 베트남은 예외로 여러 번 여행하며 테마 ‘혼자 하는 베트남 소도시 여행’을 기획하고 북부의 하이퐁, 깟바 섬, 닌빈, 빈을 거쳐 중부의 동허이, 다낭, 남부의 달랏, 호찌민, 빈롱, 껀터까지.남북으로 기다란 베트남을 위에서 아래로 여행한 것을 책에서 소개한다. 여행 이세이를 읽는 목적은 정보를 취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작가로부터 얻는 간접 경험은 나만의 여행의 세계에 조금씩 살을 붙이는 과정이다. 저자의 여행에서 나의 여행에 색을 입히며 왜 베트남에 가야 하는지’에 대한 당위성을 찾게 되었다. “현지에서 뭐가 제일 좋았어?”라고 책에서 질문하듯이 나에게 묻는다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현지에서 먹는 베트남 쌀국수라고 말하게 될 것 같다. 나 또한 하노이 여행 때 현지의 로컬 식당에서 먹었던 쌀국수를 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저자의 표현대로 국물이 담백하고 싱겁지만 맛은 담담하면서도 깊은 맛이 난다. 한국에서 절대 먹을 수 없는 맛이어서 저자의 1일 1 쌀국수를 먹어야 한다는 글에 가장 크게 공감이 되는 부분이다. 그녀는 자신이 절대 미각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노점에서 목욕탕 의자처럼 낮은 의자에 앉아 현지인들과 섞여 함께 먹는 쌀국수야말로 참다운 여행의 맛이 아닐까 생각했다.
“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그들의 ’진짜 삶에‘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면 관광에 불과할 뿐,
여행은 아닐 것이다.”
“내 지론은 이렇다.
1일 1쌀국수를 먹지 않는다면
베트남 여행자가 아니다.”
저자가 말하는 신선놀음은 하롱베이에서 맛본 카약 뱃놀이와 강을 따라 늘어선 석회산 바위산을 보며 노 젓는 배 안에서 채색한 동양화 속에 신선처럼 풍덩 빠지는 닌빈의 땀꼭과 짱안 투어. 500여 개의 계단을 올라 항무아의 정상에서 자연에 몸을 맡기는 일이다. 마치 저자의 표현대로 패러글라이딩을 하며 세상의 주인이 된 듯한 느낌이다. 항무아는 땀꼭 인근의 석회암의 바위산이다. 전망대 위의 용 석상이 보인다. 용이란 상상의 동물과 함께 하는 무릉도원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여행자들은 일상의 중력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삶을 관조하리라.
“위로 오직 하늘뿐이었다. 바람이 불어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이마에
흐르는 땀은 어느새 멈추었다.
용의 에너지를 받는 걸까.
나는 용의 날개를 부여잡고
바람과 하늘과 경치를 만끽했다.”
’파란 하늘 때문에’ ‘행복해지는 곳’이라 들었다는 저자는 뿌연 하늘과 공기에 찌든 몸과 마음을 파란 하늘을 통해 정화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12월 한가운데 2주나 할애한 달랏은 높디높은 하늘과 새하얀 구름이 그림보다 아름다워야 할 시기에 2주 절반이 흐리고 비가 왔다고 한다.
달랏의 12월은 우리에게 볕 좋은 가을날이라 여행객들에게 겨울을 따뜻하게 나기에 최적의 장소로 유명하다. ‘서베리아’라는 신조어가 생기는 한국에서 탈출해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겨울을 나는 일은 꿈이 아닌 현실이 되었다. 나트랑이나 호아빈에서 거치는 작은 소도시가 아닌 커피가 있고 와인이 있고 겨울을 나기에 최적의 날씨의 고산지대는 태국의 치앙마이처럼 ‘한달살기의 휴양지’로 거듭나고 있다. 베트남의 커피 중 80%를 생산하는 지역답게 달랏에는 카페가 널려있다. 가히 1골목 1카페라고 할 수 있다. 예전부터 현지인의 신혼여행지로 우리의 제주도와 비견된다.그래서인지 카페도 많지만 특이한 건 골목마다 있는 로컬 카페였다. 관광객들 말고 동네 사람이 모이는 사랑방이었다. 특이한 것은 보통 카페는 여자들로 붐비는 것이 일반적이라면 이곳은 카페란 당연히 남자들의 사교장이란다. 시골로 들어갈수록 카페에서 ‘금녀의 법칙’은 유효하다. 베트남의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의 사고방식은 아직도 버젓이 통용되고 있다. 예전의 우리나라를 보는 것 같아 만감이 교차했다. 여행을 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저자의 경우는 ‘시간이 많아서’라고 에둘러 말하지만 글에서 사람을 참 좋아하는 분이라는 걸 알게 된다.
현지인 뿐만 아니라 여행자들과도 격이 없이 친근하게 다가가는 모습에서 사람과 함께 한 기억이여행지의 추억을 꽉 채우는 정신의 자양분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우리의 여행은 현지인의 일상과 맞닿아 서로의 세계를 내어주는 일이며 그래서 우리는 여행지에서 사람을 만나야
할지도 모르겠다.
“현지인의 삶에 방해하지 말고
살짝 끼어들었다가 빠져나오라’
그런 게 여행자의 본분 아닌가.
손님이 주인이 되고 현지인은
들러리가 되는 여행지를 만나면
나는 여지없이 속이 불편했다.
외지인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현지인의 삶이 내쳐진 곳들을
발견할 때는 더없이 쓸쓸하다.”
여행은 잠시 일상을 떠나 누리는 ‘걷는 독서‘인지 모른다. 여행지에서 하는 산책이나 호수를 마주하고 마시는 커피, 현지인들의 일상의 경계에서 엿보는 관음증은 새로움이란 이름으로 타성에 젖은 우리를 깨운다. 물가도 저렴하고 치안도 좋으며 사람들 또한 친절해 여행지로 참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음 겨울에 달랏에서 따뜻하게 겨울을 보내고 싶다고 생각하며 베트남의 쌀국수를 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