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에 가까운 결단 - 전태일열사 탄생 60주년 기념시집 마이노리티 시선 30
백무산.조정환.맹문재 엮음 / 갈무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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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인 지금도 조영래 변호사의 『전태일 평전』은 대학 선배들이 새내기들에게 추천하는 필독서입니다. 제가 대학에 들어갈 때에도 이 책은 ‘새내기 필독서’였습니다.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 중 더러는 1995년에 상영한 박광수 감독의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이 책보다 먼저 접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전태일 평전』이 전해주는 감동은 영화와는 사뭇 다른 것이었습니다. 시각화된 영화가 시대를 격동적으로 표현했다면 책은 시대를 고요하면서도 울림이 깊게 표현했습니다.
『전태일 평전』에는 전태일 열사의 일기가 소개됩니다.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전태일 열사의 일기는 일기라기보다는 한 편의 시(時)로 느껴집니다. 열사의 일기 중 우리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일기는 1970년 8월 9일의 일기입니다. 이 일기는 1970년 11월 13일의 열사의 분신을 예고하는 것 같아 가슴 깊이 서늘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는 이 일기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각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理想)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저는 그의 결단이 자신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이 살기 위한 ‘결단’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본과 권력의 착취를 끊어내기 위한 결단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출간된 『완전에 가까운 결단』(백무산 조정환 맹문재 엮음, 갈무리)은 삶의 현장에서 온몸으로 살아오신 58명의 시인들이 2008년 전태일 열사 회갑을 기념하여 쓰신 시를 모아 출간한 것입니다. 이 시집에는 전태일 열사를 추모하는 시들에서부터 오늘의 노동 현실과 노동자들의 투쟁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한 시인들의 시가 담겨 있습니다. 또한 2008년 가슴을 벅차게 했던 촛불 집회에 관한 시들도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2006년 타계한 故 박영근 시인이 전태일의 삶을 어린이들에게 전하려고 창작했지만 죽음으로 인해 안타깝게 완성하지 못한 동화를 실어 전태일 열사의 삶을 다시금 조명하려고 하였습니다.

이 책의 서문에서 백무산 시인은 전태일 열사를 ‘원초적 혁명시인’이라 부르며, 그와 시의 관계를 강렬하게 글로 새기고 있습니다.

“전태일은 누구인가? 투사인가? 열사인가? 그 어떤 수식도 그를 온전히 표현할 수 없다. 어쩌면 그를 ‘전(前) 단계 혁명시인’이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 온몸으로 시대를 예감하고 몸을 태워 시를 쓴 ‘원초적 혁명시인’이 아닐까?
그를 아직도 현재형으로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그가 몸의 시(詩)로 예감한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온몸으로 세상을 살아낸 전태일의 일기처럼, 온몸으로 세상을 살아낸 시인들의 시들도 치열하고 강렬합니다. 또한 시의 수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우리는 삶의 생동감 있는 다양한 결을 이 시집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시집이 현실을 다시금 새롭게 보고 우리의 나아갈 길을 냉정하게 살펴보며 창조적이고 힘 있는 한 걸음을 내딛는 기회를 제공해줄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한 걸음이 집단화되고 공통화될 때 우리 시대의 새로운 ‘전태일적 결단’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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