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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평 반의 우주 - 솔직당당 90년생의 웃프지만 현실적인 독립 에세이
김슬 지음 / 북라이프 / 2019년 11월
평점 :
절판
나랑 참 많은 게 닮았던 작가였어. 스무살에 서울에 온 서울 사람이 아니었던 사람. 스물세 살에는 친구들과 함께 살았고 지금은 30대가 되어버린. (물론 우린 년생의 앞자리는 다르지만)
나도 스무살에 서울에 왔고 스물세 살즈음 그때의 나는 언니 2명과 방 세칸짜리 2층 집에 살았어. 드라마 속의 집처럼 좋은 집은 아니었고 내가 내는 월세는 고작 십만원이었던 아주 작은 방이었어. 그래서였을까 나는 내 방보다 언니들의 방에서 지내길 좋아했었지. 언니들 방에서 웃고 떠들며 즐거웠는데 말야. 잊고 살았던 그립고 소중한 추억이 떠올랐어.
작가처럼 단짝이라고 말할만큼의 친구가 나에게도 없고, 엄마가 전화로 사촌 언니가 내 집에서 잠깐 지내도 되냐는 질문을 했고 그 질문에 대한 내 대답에 사촌 언니는 내가 사는 오피스텔 복층에서 지냈던 적이 있었지. 그러한 일들을 보면서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쭈욱 살았던 사람이 아니라면 이만큼은 서로 닮아있는 걸까, 나도 나도를 외치며 공감할 수 있는 게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걸까.
168p 우리는 종종 이런 순간을 보고 듣고 겪는다. 이별을 말하는 이와 통보받는 이의 타이밍이 어긋나는 불행한 순간. 정도의 차이일 뿐, 우리의 타이밍은 대부분 딱 들어맞지 않는다. 기대란 놈은 눈에 보이지 않는데도 너무 힘이 세서 배반한 사람과 배반당한 사람 모두에게 큰 상처를 남긴다.
나는 고양이를 키우지 않지만 내가 너무 사랑하는 치치와 동거 중이고, 나 역시 이것만은 못참아 하는 더러움의 포인트가 있고, 동네 친구 같은 건 없지.
사람은 원래 서로 닮아 있고 몇가지의 상황이 비슷하면 더더욱 닮아 보이는 걸까. 물론 더 내밀한 내면을 들여다 보면 너무나도 다르겠지. 표면만을 보고 착각하는 거라도 괜찮으니 나랑 닮은 사람이 있다는 게, 그러한 삶들을 공유한다는 게 어쩐지 따뜻하게 느껴져.(이건 내가 그냥 꽤나 외로운 사람이라서 일지도)
191p 감정은 되감기를 할 수 없으니 지나간 사람은 지나간 대로 두는 게 가장 좋은 엔딩일지도 모른다.
197p '여행지에서만 행복한 나'는 이제 지긋지긋했다. 그 행복의 순간을 일상으로 가져올 수는 없을까?
현실 도피성 여행을 갈 때가 있어. 사실 여행지에서 무한정 행복하지는 않아. 다시 한국 땅을 밟은 후에 기억이 추억이 되는 시점 나는 그때 행복했었는데, 라는 착각에 빠지며 또 여행을 꿈꿀 뿐. 작가는 온전히 행복했을까. (답은 경주 여행에 나오지)
나 역시도 지나간 사람이 있고, 완전히 놓아버릴 수는 없었어. 전화 번호도 지우고 카톡에서도 지웠는데 인스타그램의 팔로우만큼은 취소를 할 수가 없었지. 지금도 용기는 없어. 아직은 조금 더 붙들고 있으려고. 삭제 버튼을 누를 수 있는 용기가 있었던 작가에게 박수를. 이미 지나간 사람이고 그들에게는 내가 없는 삶이 더 익숙해져서 이제는 나라는 존재는 필요없다는 걸 잘 알지만 쉽지가 않아.
고작 5평, 이 작은 공간에서 꾸역꾸역 사는 나지만 나도 나라는 우주 안에서 좀 더 나은 나를 만들어 좀 더 나은 삶을 살게 하고 싶어. 작가는 행복하기를 빌어주었지만 행복은 사치라는 걸 이제는 조금 알겠으니 무탈하고 무던한 매일이 지속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