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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긴 시간을 손에서 내려놓지 못하고, 빨리 읽고 싶은 마음에 비해서 읽는 속도가 참 안 났던 책이다. 한권을 읽으면서 마치 세권을 읽는 듯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특이한 구성에 처음엔 웃음이 나고 당황했지만 점점 익숙해졌다. 책의 모든 페이지는 세단원으로 나뉘어져 있어서, 첫 단락에는 에세이가, 두 번째 단락에는 그 에세이를 쓴 남자의 이야기가, 세 번째 단락에는 타이핑을 해주는 여자의 시선으로 된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걸 어떤 순서대로 읽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첫 단락에 있는 에세이를 몇 장 읽다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남자의 이야기를 읽다가, 다시 또 처음으로 돌아가 여자의 이야기를 마저 읽곤 했다. 그러다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가 궁금해지면 밑에 있는 두 단락을 쭉 읽어가다가 다시 돌아와 에세이를 읽곤 했다. 아 복잡하다. 밑에 있는 두 남녀의 이야기가 위에 있는 에세이와 연관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있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없다. 특이하고 어렵고 재미있고 많은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아니 에세이다. 아니 소설도 에세이도 아닌 두 가지를 합해 놓은 책이다.
책속에 나오는 에세이는 사실 좀 어려웠다. 정치나 사상이나 또는 문학에 대해서 작가의 생각인지, 책속에 나오는 가상의 인물의 생각인지 구분이 명확하지 않지만, 이해하지 못해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도 많았다. 그래서 책 읽는 속도가 더 느렸던 것도 있다. 자꾸만 연결되지 못하고 툭툭 끊어지는 느낌을 받은 이유도 나의 부족한 점이라 생각한다. 책속에 나오는 에세이처럼 이렇게 어떤 한 가지를 심도 있게 생각해보지 않은 나의 미숙함, 명확하게 사상을 구분지어 이해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한심하게 여기기까지 하면서 읽었다. 하지만 그만큼 생각도 많이 했다. 관심 갖지 못했던 다른 분야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예를 들면 고전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다는 것이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의 책을 다시 한 번 찾아 읽어보리라 마음먹었다.
설명이 너무 장황했나. 하여튼 이 책을 읽어본 사람은 소설도 에세이도 아니라는 말에 공감할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그의 다른 책을 추천받았었다. 비슷한 시기에 한 작가의 책을 두 권 읽을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고 이 책“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를 먼저 읽었는데, 추천받은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라는 “고도를 기다리며”도 얼른 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