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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 박사의 섬
허버트 조지 웰즈 지음, 한동훈 옮김 / 문예출판사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1896년에 쓰여진 공상과학소설로 동물을 상대로 인체실험을 하는 내용이다. 무려 100여 년 전에 써진 과학소설이라고 믿겨지지 않을 만큼 흥미롭고 재미있다.
이 책을 원작으로 1996년에 <닥터 모로의 DNA>라는 영화로도 제작되었다고 하는데 책을 읽고 나니 영화도 찾아보고 싶은 욕구가 잠시 생겼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이유는 책속에 존재하는 인간화된 동물들이 어떤 흉측한 모습을 하고 나올지가 두렵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혼자 머릿속으로 상상한 동물인간들은 그야말로 두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흉측하기만 하다. 상상만으로도 인상이 찌푸려지니 말이다.
이야기는 난파된 배에서 살아남은 한 남자로 시작된다. 구조된 배에서 동물들과 이상하게 생긴 사내를 만나게 되고, 그들이 살고 있는 섬으로 들어가게 된다. 섬에서 만나는 충격적인 일들과 그 안에서 겪는 주인공의 공포와 고독, 그리고 탈출 후에 세상으로 다시 돌아온 후에 겪는 또 다른 공포와 고독을 아주 간결하고 심도 있는 문체로 표현하고 있다.
모로 박사의 섬은 동물을 무서워하는 나에겐 더 없이 공포스러운 섬이었다. 강아지나 고양이는 기본, 요즘엔 특이한 애완동물을 키우는 분들도 많던데, 나는 정작 동물이 무서워서 만지지도 못한다. 강아지도 무섭고 고양이도 무섭고 토끼도 무섭고 안 무서운 짐승이 없다. 나의 이 공포는 어릴 적 사슴과 눈을 마주친 후에 생긴 것 같다. 조용한 동네의 한구석에서 사슴우리에 있는 녀석과 눈을 마주쳤는데, 고요하고 깊게 들여다보는 녀석의 눈에서 공포를 느꼈다. 그 동물들도 나처럼 생각을 하고, 내가 보지 못하는 것까지 꿰뚫어 보고 있다고 생각에서 두려움이 오는 것 같다. 가끔 동물들과 눈을 마주치면 나의 내면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서 움찔할 때가 있다. 이런 내가 만약 모로 박사의 섬에 들어갔다면 어떠했을까.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인간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지는 미래의 일들 중에 외계인들의 침공이나 로봇들에게 지배받는 시대도 무섭지만, 이 책에 나오는 동물들이 인간처럼 말을 하고 행동하면서 우리와 친구로 지내는 상황은 더더욱 무섭다. 제발 이런 실험이 현실에선 일어나지 않기를, 미래의 어느 날 내 주변에 동물들이 두발로 걸어 다니며 나를 보고 손 흔드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본다. 화사한 봄날 상상만으로 공포를 느끼게 해준 즐거운 책읽기 였다.